EP.09 | 메타인지 : 자존감과 성장사이

2024.12월 홀로서기의 시작 9개월 차

by 고서아

홀로서기 9개월차


따뜻한 봄에서 추운 겨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달려오다 힘에 부쳐 잠시 멈췄다.

한 숨을 돌리고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내가 해온 일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부족함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전에 냈던 결과물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예전에는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어설퍼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회사라는 공간에서는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

마케팅팀, 디자인팀, 기획팀...

그리고 그 안에서도 세부적인 업무 분장이 나뉜다.

퍼포먼스 마케팅, 브랜드 마케팅, 콘텐츠 마케팅처럼.

이렇게 세분화된 영역에서 몇년간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영역의 전문가라고 착각하게 된다.


초반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배울 게 많아 긴장감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 패턴이 반복되고 예측 가능해진다.

처음에는 어려웠던 일들이 익숙해지고,

더 넓은 시야, 새로운 방법, 다른 관점을 찾기보다는

이미 익숙한 방식에 안주하게 된다.

업무는 편해지고, 도전은 줄어든다.

자부심과 자만감 사이 어딘가에서 안정적으로 머물게 되는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시키는 일이 아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

내가 흥미를 느끼고 재미를 느끼는 일.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담당했던

오프라인 팝업 프로젝트가 너무 즐거웠고,

더 깊이 오프라인 브랜딩을 경험해보고 싶어 회사를 나왔다.

그런데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보니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그 '일'은 단지 하나의 작은 영역일 뿐이었다.

밖에서는 훨씬 다양한 능력이 필요했다.

배울 수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모든 것이 자극이었다.



새로운 판


'결국, 오프라인'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북토크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프로젝트렌트'라는 회사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여기서 맡은 일은 내가 이전에 하던 업무와는 달랐다.


성수동에서 브랜드의 오프라인

팝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이었다.

책에서 본 다양한 오프라인 팝업 사례들은 일반적인 마케팅의 틀을 벗어난,

신선한 접근법으로 가득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케팅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대표님께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과 경험은 없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 있다고.

감사하게도 팝업 기획 단계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잘하는 일'과 '해보지 못한 일'을 동시에 하게 되었다.

내가 자신 있던 분야는 마케팅 가이드 설정,

팝업 종료 후 정량적 성과 리포트 작성,

팀 교육과 빌딩 문서화 등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쌓은 퍼포먼스 마케팅, 브랜딩, 온사이트 마케팅 경험이 도움이 됐다.



첫 번째 프로젝트


동시에 회사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도 시작했다. GS아트센터 리뉴얼 프로젝트였다.

GS 본사, GS리테일, GS공연 세 부서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면서, GS의 미래 방향성에 맞춰 아트센터를 어떻게 리뉴얼할지 기획해야 했다.


먼저 GS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내부 자료로 파악했다.

시장 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국내외 유사 사례들을 스터디했다.

이 모든 정보를 분석하고, 재조합하고, 그룹화하는 과정은 끝없는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의 약자, 상호배제와 전체포괄)

작업의 연속이었다.


이전 상사에게 배웠던 MECE 사고법이었지만,

습관화되지 않은 접근법을 실전에 적용하려니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부딪히고 좌절했다.



부족함 그리고 떨어지는 자존감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하고 미팅에 들어갔지만,

대표님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여전히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을 받고 일하는데 이 정도밖에 못한다니.' 내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머리를 싸매 고민했음에도,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는 많이 속상했다.

하지만 대표님의 피드백이 납득이 갈 때는 돈이고 시간이고 뭐고 다 잊었다.

더 잘해보고 싶었다. 특별한 극복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그냥 했다.


이 과정에서 내 잘못된 업무 습관과 고집도 발견했다.

부족한 점들이 너무나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해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이를 악물고 잘해내고 싶어서 예전처럼 회사에서 야근하듯이 사무실에서 새벽에 택시타고 가는날도 있었고 집에 와서도 늦게까지 일했다.

좌절감에 많이 울기도 했다.



깨달음의 순간


몇 달이 지나자 어느 정도 접근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전에 내가 컨설팅했던 자료들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때서야 그 자료들의 부족함이 눈에 들어왔다.


역설적이게도, 부족함이 보인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증거였다.

그 당시에는 만족했던 결과물에 지금은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안목과 실력이 높아졌다는 의미니까.


자존심이 상하는 날도 있었지만,

돈을 받으면서 이렇게 부딪히고 배우는 과정이 얼마나 값진 기회인지 깨달았다.

대표님도 나에게 많은 에너지를 쏟아주셨기에, 나 역시 더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

매달 마무리할 때마다 대표님과 저녁식사를 하며

현재 회사의 상황, 내가 부족한 점, 나에게 기대하는 바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서로 맞춰가며 어느덧 약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성장의 기록


내가 회사에만 있었다면 시도도 안 해봤을 일들,

전혀 모르고 살았던 일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정말 많이 성장했다는 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하나의 영역에서의 레벨업만 하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육각형의 모양으로 채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홀로서기를 하면서 기획, 강의, 글쓰기, 논리적 사고, 영상편집 등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내가 배운 건 특정 영역의 스킬이 아니라 일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마케팅' 영역의 전문가라기보다, 그 어떤 일이라도 나에게 주어졌을 때 일을 해결하는 '능력'을 토대로 새로운 나만의 접근법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해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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