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월 홀로서기의 시작 6개월 차
나는 마치 터널을 뚫고 나가는 경주마처럼
목표가 생기면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렸다.
안 될 이유를 고민하는 대신,
될 방법을 찾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회사에 다닐 때도 그랬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루를 전쟁처럼 시작했고,
밤늦게까지 책상 앞을 지키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시키진 않았지만
스스로를 닦달하고 채찍질하며 달렸다.
그러다 결국,
나는 멈췄다.
몸도, 마음도 바닥을 쳤다.
번아웃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벽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때 다짐했다.
이제는 나를 더 이상 몰아붙이지 말자.
무리하지 말고, 나를 지키자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또다시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 달라진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일의 자유.
어떤 제약도 없이, 하고 싶은 일만 선택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시간의 자유.
아침 9시 출근도, 오후 6시 퇴근도 필요 없었다.
그 자유는 달콤했지만, 동시에 독이었다.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모든 게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었고,
나는 내 욕심껏 손을 뻗었다.
'퇴사하면 시간 많아서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J인 성격상 내 일정표는 빼곡했다.
대략 그동안 큰 것 들만 살펴보자면
5월~ : 프리랜서 매칭 플랫폼을 통해 단기 프로젝트와 지인들의 소개로 이어지는 일들
7월~ : '프로젝트 렌트' 와 장기계약
7월 11일 : 오래 고민했던 슈퍼커브 계약
7월 15일 : 연기학원 홀드
7월 19일 : 고성 집 계약 후 서울과 고성을 오가며 이삿짐과 인테리어 시작
7월 25일 : 책 쓰기 + 출판
8월 2일 : 프리랜서 프로젝트 시작
8월 5일 : 바디프로필 촬영
8월 29일 : 오토바이 1종 보통 면허 취득
8월 말 : 연애의 시작
그리고 9월 : 비상체계 돌입 (가지치기)
손을 뻗은 만큼,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숨 돌릴 틈 없이 다음 일정을 향해 달려야 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모두 소중했다.
그래서 더 욕심냈다.
모든 걸 잘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잡을 수는 없었다.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다.
한 가지 일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는 상황.
일을 끝내는 게 목표가 되어버린 나를 발견했다.
'빠르게 처내기'가 일상이 됐다.
어떤 프로젝트도, 어떤 순간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채
'다음'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회사 다니며 제일 싫었던 게 생각할 시간 없이
일하는 거였는데 회사가 아니더라도 똑같이 이러고 있는 게 싫었다.
평균 수면 시간은 4~5시간으로 줄었고,
머리는 늘 무거웠다.
가끔은 해야 할 일들의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고 운동을 가는 날들도 꽤나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보살피지 않고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나를 구해야 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곧 다시 번아웃이 찾아올 게 뻔했다.
가장 먼저, 취미를 정리했다.
즐겁게 다니던 연기학원을 그만뒀다.
배우려고 알아봤던 수영과 벨리댄스도 뒤로 미뤘다.
'지금은 아니다.'
오직 헬스 하나만, 꾸준히 가기로 했다.
그다음, 일감을 정리했다.
프리랜서 매칭 플랫폼 원포인트에서 들어오는 단기 일은 모두 중단했다.
지인 소개로 들어오는 단기 프로젝트들도 거절했다.
장기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몇몇 클라이언트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모임을 정리했다.
강의 모임, 마케팅 네트워킹, 프리랜서 모임.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지만 이제는 딱 하나만 남겼다.
나에게 진짜 에너지를 주는 모임만.
하나씩 가지를 쳐나가자,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다.
일정표에 작은 여백이 생겼고,
마음에도 다시 빛이 들기 시작했다.
참네.. 이 바쁜 와중에도, 연애를 했다.
작은 책을 쓰기 위해 참여한 클래스에서 사랑 에세이 작가님을 만났고, 그분의 소개로 한 사람을 알게 됐다.
첫 만남부터 말이 잘 통했고 닮은 구석이 많아 마음이 끌렸다. 너무 강렬했던 탓일까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불타올랐고 누구보다 빠르게 식어갔다.
그렇게 헤어질 무렵, 그가 내게 남긴 한마디가 있었다.
"너는 연애도 일처럼 하는 것 같아."
그 말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맞다. 고성과 서울을 오가야 하고
서울에 있을 때는 그마저도 해야 할 일들이 많았으니
목용리 단 하루 그날을 쪼개서 데이트를 해야 했다.
데이트도, 대화도, 일처럼 체크리스트처럼 진행됐던 걸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어쩌면 이런 나의 상황이 그이가 옆에서 보기에는
일도 사랑도 잘하려 부단히 애쓰는 그래서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껴졌을 수 있겠다 싶다.
가지치기를 시작하고 나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오래 긴장했던 어깨에 힘을 뺐고
늘 조급했던 마음을 다독였다.
그래도 하루에 6시간-7시간씩 잠을 자는 날이 늘어났다.
점점 심적인 여유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조급함이 가라앉자 이제 정리가 좀 되가는 느낌이었다.
에너지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돌아오고 있었다.
이번 비상체계에서 많은 것들을 가지치기하며 세 가지를 배웠다.
1. 나에게 친절하자.
무조건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잠깐이라도 쉬어가야 한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2. 미래의 나를 생각하자.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나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하자.
3. 나만의 페이스를 찾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나만의 호흡으로 걸어가자.
프리랜서로 산다는 건, 자유를 얻는 대신,
더 큰 책임을 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책임에는
'나를 지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이제야, 그 사실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