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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20. 2024

자판기 커피

 조사를 마치고 빈소에서 소영을 마주하는 혜영은 지금도 모든 것이 꿈같았다. 꾸고 싶지 않은 악몽에서 깨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그런 혜영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영정사진 속 소영은 웃고 있었다. 그 앞에서 울고 있는 엄마 현숙을 보는 혜영의 눈빛은 건조하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하고 온 것이 혜영에게 눈물을 흘릴 여유를 주지 않았다. 한참을 서 있던 혜영이 향에 불을 붙이고 향로에 꽂았다. 비로소 울컥 목구멍을 타고 눈물이 올라왔다. 목을 한 대 맞은 것처럼 아팠다. 혜영은 가슴을 뜯으면서 울고 있는 현숙을 말없이 안았다. 현숙이 혜영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자신의 눈물을 쏟아냈다. 


 혜영의 이모가 혜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불렀다. 혜영을 일으켜 식당으로 데려가서 자리에 앉혔다. 따뜻한 육개장과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이모가 뭐라도 먹으라고 숟가락을 혜영의 손에 쥐어주었다. 혜영은 숟가락을 쥔 채 그저 앉아있었다. 

 "조사받느라고 고생했어. 어서 먹어. 어젯밤부터 굶었잖아."

 "이모 나랑 언니랑 어땠어?"

 "응?"

 "나랑 언니랑 사이가 좋아 보였어?"

 "너희 자매야 둘도 없는 사이였지. 왜 그런 걸 물어?"

 "경찰이 나한테 물었어. 언니랑 사이는 어땠냐고?"

 "그냥 조사하는 거야. 니가 처음 봤으니까. 에고 고생했네."

 "이모."

 "응?"

 혜영은 말을 삼켰다. 소영이 자살할 이유가 있었는지, 내가 언니를 해할 이유가 있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 언니를 해할 이유가 있었는지 혜영은 경찰이 말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했다. 어떤 가능성도 소영을 죽게 만든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소영은 생각했다. 

 "니네 아빠한테 연락은 했어."

 이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혜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라는 말이 멀게 느껴져서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서 먹어. 먹고 쉬어."

 이모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혜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세포들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낯설고 두려운 공간, 혜영은 자신조차도 낯설어서 지독하게 외로웠다. 조문객들도 다 떠나고 빈소는 썰렁했다. 현숙의 울음도 들리지 않는 곳에 혜영과 현숙, 이모 내외만 남아 꺼지지 않는 밤을 지켰다. 


 소영의 부검이 끝나고 사인이 밝혀지고 나서야 화장터로 향했다. 하늘이 눈부시게 맑았고 바람이 차가웠다. 버스를 타고 화장터로 가는 동안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큰 버스는 대부분이 빈 채로 달렸다. 미경과 직장동료 몇이 함께 화장터로 가는 길에 동행했다. 지환은 오지 않았다. 소영의 사인이 경부압박질식사로 나왔다. 소영의 집으로 가는 길의 편의점 CCTV에 지환과 소영의 모습이 찍혔다. 마지막까지 소영과 함께 있었던 지환은 경찰조사를 받고 있을 것이었다. 미경은 혼란스럽고 두려운 마음과 소영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웠다. 설마 지환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두 사람을 두고 전철을 타러 갔던 자신을 원망했다. 커튼이 쳐진 버스, 혜영이 커튼을 살짝 걷었다. 어느새 버스는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작은 가게들과 가게보다 조금 큰 농협 건물을 지나갔다. 신호 때문인지 버스가 멈췄다. 가게들이 줄지어선 길옆에 커피자판기가 보였다. 전봇대 옆이었다. 오래된 자판기는 색이 바래고 낡은 것이 작동하지 않을 것 같이 보였지만 작동버튼에 불이 켜져 있었다. 순간 혜영은 자판기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 바로 버스에서 내려 한잔 뽑아마시고 싶은 허기와 갈증을 느꼈다. 버스가 출발하고 자판기는 멀어졌다. 혜영은 입속에서 자판기커피 냄새를 맡았다. 역겨웠다. 이 순간에도 허기를 느끼는 자신이, 싼 자판기커피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다. 


 화장을 하고 다시 납골당으로 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혜영의 눈에 커피자판기가 보였다. 혜영은 자신도 모르게 커피를 뽑아 마셨다. 소영이 죽은 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혜영은 빈속으로 내려가는 뜨거운 커피가 날카로운 바늘을 삼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달달한 맛이 입안으로 빠르게 퍼졌다. 한잔을 다 마시고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혜영은 무너지듯 그 자리에 앉았다. 허기가 더 강하게 밀려왔다. 음식맛을 본 뱃속은 더 빈속을 채우고 싶어 했다. 혜영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역한 커피냄새를 풍기면서 먹은 것을 모두 토해냈다. 경부압박질식사. 그래서 소영은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죽어 있었다. 이불로 얼굴을 가린 것으로 봐서 범인은 소영이 아는 사람일 거라고 했다. 언니를 그날밤 데려다줬다는 그 사람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은 범인을 밝히기 위해 애쓰고 있겠지만 혜영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범인이 밝혀지고 감옥에 간다고 해도 소영은 돌아오지 못한다. 남은 사람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다고 해도 소영은 여기에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혜영이 시험이 끝난 홀가분함에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던 그 시간에 소영은 누군가에게 숨을 빼앗겼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고 잠이 오고, 화장실을 가야 한다는 것이 혜영에게 이해하기 힘든 고통을 주었다. 사람의 몸이 이 순간 얼마나 더 추하고 역겨워 질 수 있을까. 주저앉아있던 혜영을 미경이 일으켜서 버스에 태웠다. 다시 버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달렸다. 버스에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소식을 들었으면서도 빈소에 찾아오지 않은 혜영의 아빠 동호에 대한 분노까지 실은 버스는 소영이 이제부터 영원히 쉬게 될 곳으로 무심하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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