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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27. 2024

무덤을 품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마음에 무덤을 품고 산다. 아침에 눈을 뜨고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는 순간에도 무덤의 주인을 생각한다. 매일 순간마다 지금은 옆에 있지 않은 사람은 생각한다. 가족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은 그 고통에 매 순간 살이 아프다. 매 순간이 죄스럽다. 이렇게 잠을 자고 아침을 맞이해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커피를 마시면서 그 향기에 잠시 마음을 빼앗겨도 되는지 미안하다. 뛰쳐나가서 온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향해 다그친다. 나가서 밤낮으로 찾으라고. 누구의 손에 내 피 같은 가족이 죽었는지, 왜 그래야 했는지 찾아서 무덤 앞에 데려다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묻지 않은 아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아침에는 평온함이 없다. 그렇게 그들은 매일 무덤 앞에 선다. 자식을 잃은 어미는 그대로 무덤이 된다. 심장에 구더기가 끼고 살이 썩어도 울지 못한다. 살아서 살이 아픈 것도 자식 앞에 죄짓는 것이다. 소리 내서 울지 말고 속으로 썩고 문드러져야 한다. 그런다고 그 어미가 아픈 것이 나아지지 않는다. 죽어야 사라지는 아픔이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고통이다. 현숙은 그렇게 무덤이 되었다. 혜영은 현숙 앞에 매일 아침 추모하듯 섰다.


 범인은 잡지 못했다. 지환을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 경찰은 끝내 지환의 혐의를 밝히지 못했다. 지환과 소영이 CCTV에서 사라지고 다시 지환이 혼자 나타났을 때의 시간이 도저히 살인을 저지를만한 시간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지환은 2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CCTV앞에 나타났다. 그 시간은 소영의 집까지 올라갔다가 바로 내려오기도 힘든 시간이다. 한동안 열의를 가지고 소영의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더 이상의 용의자를 찾지 못했다. 혜영은 매일 경찰서를 찾아갔다. 어떻게 한 사람이 자신의 집에서 살해됐는데 증거도 증인도, 용의자조차도 찾아내지 못하는지 혜영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집 앞까지 비추는 카메라가 없었고, 주변에 수상한 사람의 움직임이 없었다고 경찰은 말했다. 혜영은 한 달 전에 헤어졌다는 유부남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그에게 별다른 혐의가 없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소영이 살해되는 시간 전후로 카메라에 찍힌 사진이 없었다. 핸드폰 기지국을 추적했을 때 기영은 은행 근처에 있는 것으로 나왔다. 경찰이 손을 뗀 사건, 혜영은 무기력한 자신에게 화를 냈다. 경찰보다 자신이 더 원망스러웠다. 매일 무너지는 현숙과 같이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매일밤 참아냈다. 이대로 죽으면 정말 모든 것이 끝난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살인범은 자유로운 삶을 선물 받는 것이다. 혜영도 현숙도 어차피 덤으로 사는 인생이었다. 살아서 매일 저주하고 기도했다. 그 사람이 웃지 않게 해달라고.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게 해달라고 매일 혜영은 기도했다. 그 기도는 혜영과 현숙도 무너지게 했다. 두 사람은 웃지 못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과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범인을 상상하며 매일이 고통이었다.



약국에서 연고와 밴드를 사서 다친 손을 대충 치료하고 혜영은 카페로 들어가 커피 한잔을 시켰다. 어차피 병원은 못 갈 것이다. 집에도 들어가기 힘들게 됐다. 카페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도 있고, 마스크를 벗고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혜영은 마스크를 쓴 채 주문한 커피에는 입도 대지 않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쉴 곳이 어디인지 생각했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었다. 병원 침대일지라도 엄마옆에 눕고 싶었다. 무덤처럼 건조한 엄마라고 해도 아직은 온기가 있는 품에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숙을 만질 수도 그 옆에 누울 수도 없었다. 죄수처럼 투명한 칸막이 너머로 현숙을 만나고 온 날 혜영은 자신도 현숙도 감옥에 갇힌 죄수라는 것을 알았다. 지독한 기억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세상도 감옥과 다를 게 없었다. 엄마 손을 꼭 잡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숙이 있는 요양병원은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이 많아 대면 면회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혜영은 세상이 자신에게 금지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이제는 집에서 누워 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 혜영은 마스크에 가려져 아무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분노를 질러댔다. 마음속에 커다란 분노가 불처럼 일었다.

 

 혜영의 카톡알림음이 울렸다. 은주였다. 다정한 안부를 묻는 내용이다. 혜영은 답을 하지 않았다. 만나자는 은주의 톡을 혜영은 무시했다.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달래듯 톡을 보내는 은주의 수작이 같잖았다. 전화벨이 울렸다. 받지 않고 무시했다. 집요하게 계속 울렸다. 또 집으로 오겠다는 톡이 왔다. 집으로 오겠다고? 혜영의 집을 빼앗아 가고 이제 와서 집으로 오겠다는 은주였다. 혜영은 카페 위치를 톡으로 보냈다. 삼십 분도 되지 않아 은주가 카페로 들어왔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은주는 당당하게 커피를 시키고 혜영의 앞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

 "그냥요. 선생님 괜찮나 해서요."

 혜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 우리 아빠 왜 만나신 거예요?"

 "은주야 나는 좀 쉬어야겠어. 먼저 갈게."

 일어나는 혜영을 따라 은주도 일어났다. 밖으로 나온 혜영은 근처 모텔로 들어갔다. 은주도 따라 들어왔다. 혜영은 말없이 은주와 방으로 들어갔다. 락스 냄새가 심하게 풍겨오는 침대에 그대로 혜영은 누웠다. 바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은주는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혜영은 누워서 잠들려고 애를 썼다. 죽을 듯이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았다. 잠시 후에 은주가 술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 왔다. 테이블이 있는데도 은주는 바닥에 앉아 맥주캔을 따서 마셨다. 시원하게 맥주를 삼키는 소리를 듣자 혜영은 일어나 맨주캔을 들었다. 망설임 없이 맥주캔을 들이켰다. 은주는 혜영에게 캔을 들어 건배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맥주만 마시고 있었다. 마치 너무 오래된 친구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이.


 "선생님 가족이 자살하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그대로 멈춰버려요. 그 후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매 순간 생각해요. 이유가 뭘까? 내가 힘들게 해서 그랬나? 나 때문인가? 엄마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매일 아빠를 생각하고 울고 후회하고 미안하고 아팠을 거예요. 가족이 자살을 한다는 것은 남은 사람들을 그 시간에 가두는 거예요. 우리는 그 시간에 갇혔어요. 엄마는 엄청 열심히 살아요. 매일 늦게까지 일하고 승진하고 잘 나가고. 그러면 뭐해요. 여전히 아빠가 자살한 그날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하는데. 마치 어제 아빠가 출장이라도 간 것처럼 굴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마치 내일쯤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올 것처럼 매일 아빠가 좋아하는 저녁을 차리면서."

 혜영은 말없이 은주의 말을 들었다. 오랜만에 마신 맥주 탓인지 암 때문에 약해진 탓인지 기운 없이 몸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낮은 의식 속에서도 은주의 무덤이 보였다. 은주도 자신처럼 마음에 큰 무덤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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