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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10. 2024

사소한 실수

  기영은 손이 축축해지도록 땀이 나서 바지춤에라도 손을 닦고 싶었다. 그랬다가 혜영이 자신의 거짓말을 확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영은 의식적으로 손을 반듯하게 탁자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거나 콧잔등을 찌푸리지는 않을까 신경이 곤두섰다. 혜영이 말한 결정적인 증거라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 증거가 나왔다면 그건 뭘까? 기영은 머릿속으로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이 뭐였는지 되짚어봤다. 그날밤 소영의 목을 누를 때 봤던 소영의 눈빛, 그것 말고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혜영에게 섣불리 틈을 보여서는 안 되는 일이다. 혜영이 자신을 떠보기 위해 던진 말이라면 기영은 잡아떼는 것만이 답이다. 혜영의 휴대폰이 울렸다. 혜영은 짧게 통화를 끝냈다. 통화를 끝내고 기영을 보는 혜영의 눈을 기영은 마주 보지 않았다.

 "선생님이 저한테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우린 아주 잠깐 만나다 헤어졌을 뿐입니다. 소영은 제가 유부남이라는 것을 알고 바로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헤어지고 말 것도 없었어요. 몇 달 만난 사인데 제가 좀 오버했죠. 처음에는 소영이랑 헤어지는 게 용납이 안 돼서 전화도 하고 매달렸는데 소영이 확실하게 선을 그었어요. 그게 다예요."

 "몇 달 가볍게 만난 사이에 반지를 선물했다고요. 그걸 믿으라는 거예요."

 반지 얘기가 나오자 기영은 속으로 움찔했다. 반지를 혜영이 어떻게 알았을까? 소영이 반지를 버리지 않고 갖고 있었다면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 기영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소영이 헤어지고 나서도 자기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건.. 그래요. 반지를 선물한 건 사실입니다. 사실 소영이를 정말 좋아했지만 가정을 포기할 마음은 없었어요. 다른 의미로 아내도 사랑했으니까요. 아내는 제가 반지를 빼는 것을 싫어했어요. 아내가 직접 디자인한 결혼반지라 애정이 컸나 봐요.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소영이를 만날 때 반지를 뺐는데 자꾸 까먹어서 같은 디자인을 주문해서 소영에게 커플반지처럼 선물했어요. 반지 디자인이 독특해서 소영이는 결혼반지라고 생각 못하더군요. 제가 아끼는 반지라고 말하고 선물했더니 좋아했어요. 그러고 나니 반지를 빼고 만날 필요도 없고 편하더군요. 사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오버했어요. 결혼반지라는 것을 소영은 의심조차 안 했거든요. 언젠가는 들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최대한 오래 소영이를 만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좋아했어요. 소영이랑 있으면 둘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아내도 딸도 그 순간에는 잊겠더라고요. 사실 아내가 의심하거나 알게 되는 것이 무서웠지 소영은 걱정도 안 했어요. 걸릴 일도 없다고 생각했고 걸려도 사랑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소영이 정말 저를 벌레 보듯 하더군요."

 "그래서 죽였나요?"

 "네? 그런 거 아닙니다. 증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지 마세요. 선생님."

 "증거가 있다면요?"

 "그랬다면 경찰이 먼저 찾아왔겠죠."

 "증거는 내가 가지고 있어요. 나는 당신이 법의 심판을 받기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선생님 이제 그만하세요. 저는 아닙니다. 무슨 증거가 있는지 모르지만 저는 아니에요. 경찰에도 말했지만 그때 이미 소영이는 다른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정리했어요."

 "다른 사람이 있었다고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계속 우리 언니 주변을 맴돌았던 거 아니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소영이 말했어요. 다른 사람 생겼다고. 그러니까 연락하지 말라고. 집에도 데려다주고 그 남자 만나면서 소영이 밝아졌어요. 머리도 짧게 자르고. 그래서 저도 완전히 마음 접었어요."

 혜영은 기영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소영은 머리를 자르고 집으로 왔다가 살해당했다. 기영은 분명 그 모습을 본 것이다. 그렇다면 기영은 소영을 미행했거나 집 근처에서 지환과 함께 오는 소영을 봤을 것이다.

 "박기영 씨. 이제 확실하게 알겠어요. 당신이 언니를 죽였어요. 이제 그만 일어나죠. 나는 이제 당신과 할 말이 없어요."

 혜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영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혜영을 당황해서 보고 있었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차분히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혜영이 경찰서로 간다면 자신은 끝이라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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