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바닥이 밤 천지야"
"우리 가방에 싹 담아 가자"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온 나는 동네 언니, 동생들과 함께 마을 앞 냇가를 건너고 구불구불한 좁은 길을 걸어 밤나무골에 밤을 주우러 왔다.
고슴도치 같은 가시투성이 껍질이 벌어져 토실토실한 알밤들이 속살을 드러낸 채 지천에 널려 있었다.
주변의 적당한 나뭇가지를 연장 삼아 밤송이 양옆을 발로 살짝 누른 채 밤을 파내면 토실토실 윤기 나는 밤들이 툭툭 떨어져 나오니 오진 마음에 허리 굽히고 알밤 줍기에 열심이었다.
"앗 따가워. 가시에 찔렸다."
"조심해라. 뭐한다고 밤송이를 손에 들고 그러고 있냐?"
설익은 밤송이는 발로 누르고 나뭇가지로 아무리 찔러봐도
잘 벌어지지 않으니 답답함에 손으로 붙잡고 잡아당기다 가시에 찔렸을 것이다.
가시가 연둣빛만이 도는 밤송이는 억지로 밤을 파낸다 한들
밤이 작고 부드러워 먹을 것이 못되었다.
잘 익었다 쳐도 벌레 먹은 것들은 먹을 것이 못되니
가방을 채우려면 부지런히 주워야 한다.
"이제 그만 가자. 어두워지기 시작했어."
"좀만 더 줍자. 난 아직 많이 못 주웠단 말이야."
가방을 다 채우면 무거워 지고 가기도 힘들 텐데
우리는 욕심을 내었고 그 사이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이제 진짜 가야 해 지금도 이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갈라고 그래? 내일 또 오면 되잖아!"
제일 큰언니인 영신 언니의 재촉에 우리는 마지못해 가방을 지며 갈 채비를 하였다.
누가 더 많이 주웠는지 서로의 가방을 들어보며 자랑을 하며 걷는 사이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모퉁이 무덤들이 보였다.
우리 동네와 밤나무골 사이에는 무덤이 여러 개 모여있어 낮에도 혼자 지나가려면 등골이 오싹했다.
밤이 되면 그 무덤이 반으로 갈라지고 귀신이 나와 오가는 사람들을 잡아간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니 지금 무덤 앞을 지나가야 하는 우리는 오금이 저렸다.
"언니. 우리 같이 가. 나 무섭단 말이야"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그래. 다 같이 뭉쳐서 가자"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인지 우리는 양쪽으로 서로의 팔짱을 끼고 일렬로 걸어가기로 했다.
"절대 혼자 먼저 달려가면 안 돼! 꼭 같이 걸어가는 거야"
"하나 둘하나 둘" 발걸음까지 맞춰가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데 아까부터 자꾸 스스슥 스스슥 풀잎이 움직이는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갑자기 푸드덕 거리는 급한 발놀림 소리가 들렸다.
"악!! 귀신이다!! 귀신이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살겠다고 팔짱 낀 손을 빼고서는 뿔뿔이 흩어져 뒤도 안 돌아보고 앞을 향해 뛰었는데 등에 진 밤 가방이 어찌나 무거운지 뛰어도 뛰어도 누가 내 뒷덜미를 잡아 끄는 느낌이었다.
"놔!! 놓으란 말이야!! 엄마!! 살려주세요!!"
너무 무서워 눈물이 찔끔 나고 오줌도 찔끔 쌌다.
에라 모르겠다며 가방을 벗어던지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 앞을 향해 뛰었는데 어두운 밤중에 혼자 달리고 있자니 그것도 무서워 뒤를 돌아보았다.
모두가 또 같은 마음인지 달리다 말고 뒤를 쳐다보고 있었다.
"야!!! 새떼가 날아가는 소리라고!! 기다리라고!!
진짜 다들 배신자들이네. 같이 가자며??
진짜 니네 너무한다."
맨 뒤에서 영신 언니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귀신이 아닌 영신 언니가 다가오는 것에 안심하며 언니 쪽으로 향했다.
"진짜 언니야??"
"니네 진짜 겁 많다. 귀신이 어딨데?"
역시 중학생이라 다르다며 언니를 치켜세우려는데 우릴 향한 언니의 발걸음이 자꾸만 빨라지고 있었다.
언니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지선아. 아무리 무섭다고 가방을 던지고 달리냐.
내일은 안 올라고??"
우리와 가까워지고서야 언니의 목소리는 침착해졌다.
"어. 나 내일 안 와. 앞으로 절대 안 와"
언니와 달리 내 목소리와 다리는 아직도 떨고 있었다.
진짜로 절대 안 갈 것이다. 밤 따다가 또 오줌 싸기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