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정 상하는 볼링 치기.
안 싸우면 다행이야.
지난 연휴 내내 가게에 묶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미안함에 갑작스럽게 볼링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두 달 전쯤 큰 아이가 친구들과 볼링장을 처음 다녀왔다고 자랑하며 다음엔 가족끼리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아들의 말이 생각났거든요.
볼링장에 들어서자마자 큰아이는 경험자답게
처음 와보는 동생에게 신발도 골라주고 공도 이것저것 들어 보이느라 흥분한 모습이었고 그런 큰 아이의 다정함에 잠시 뿌듯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배운 건지 내 맘대로 치는 건지는 몰라도
내던진 공에 핀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질 때면
두 팔을 들어 올리며 환호하는 아이의 모습에 저도 즐거웠지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내 기본기 없는 아들의 실력은
곧 바닥을 보였으니 아이의 볼은 어디든 굴러갈 수 있는 동그란 공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옆으로 계속해서 빠져
전력 질주합니다.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하고 부끄러워 "괜찮아"를 연신 외치며 위로했지만 굴렁쇠 논두렁에 빠지듯 계속해서 옆꼬랑을 굴러가는 볼을 보며 아이의 표정은 굳어졌고 어색한 제스처와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하며 실수를 감추려 하는 모습에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 쳐보는 볼링에 옆으로 빠지면 빠지는 대로
핀을 쓰러뜨리면 쓰러뜨리는 대로 즐겁기만 한 동생과는 달리 큰 아이는 형의 자존심 문제인지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아이 앞에서 전 눈치도 없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나 봅니다.
"아들아. 옆에 형들을 좀 봐봐.
스텝부터 볼을 던질 때 손동작까지..
이리 와 봐. 엄마가 가르쳐줄게"
저도 20년 만에 와 본 볼링장이지만 아이보다는 좀 더 나은 실력에 감히 지도를 하고 싶었었나 봅니다.
하지만 아이는 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대답했지요.
"엄마나 잘 쳐"
중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도 아닌 초딩 열두 살 아들의
예의 바른 대답에 전 순간 빈정이 확 상했습니다.
볼링이고 나발이고 지금 이 아이를 참 교육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그래. 지금 니 기분이 엄마 말을 곱게 들을 기분은 아니겠지.. 엄마도 니 나이 때 그런 적이 있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가벼운 경고로 부모의 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지요.
너의 볼링핀이 앞으로도 꼿꼿이 서서 너를 약 올릴 것이니
그때 복수를 하겠다며 다짐하는 저의 모습을 보며
아이가 누굴 닮았는지 짐작이 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의 예상대로 점점 파국으로 치닫으니 아이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지요.
처참함을 넘어 자존심과 자존감이 땅에 떨어지니
아들의 눈물도 같이 떨어지려 하는 모습에 전 오히려 침착했습니다.
"아들아 여기 보니까 친구들끼리 온 형아들 엄청 많네.
너도 친구들끼리 여기 오려면 연습해서 실력을 좀 키워야겠다.
아무래도 옆 고랑으로 빠지는 친구랑은 같은 팀 하기
싫을 테니까"
그제야 아이는 구세주 보듯 간절한 눈빛으로 예의 바르게 아니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 심정으로 소리치더군요.
"그럼 어떻게 쳐야 하는데?"
또 한 번 빈정이 확 상하는 순간이었지만 주도권은 이미 저에게로 넘어왔으니 같이 화낼 필요 없었지요...
비록 저도 20년 만에 쳐보는 볼링이지만 아이보다는 나은 실력에 족보 없는 스텝과 손목 사용을 자신 있게 알려주었습니다.
반신반의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 없이 배수진을 쳐야 했던 아이는 가르쳐준 대로 연습하니 그 모습이 또 대견하더군요.
네 번째 게임에서야 배운 대로 실전에 임하니 옆꼬랑을 고속도로 달리듯 전력 질주했던 공은 이제 자기 노선을 따라 굴러 목적지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어 주니 아들도 그제야 경쾌한 목소리를 내어 줍니다.
두 팔을 들고 기뻐하는 아들을 보며 복수의 다짐과 좀 전의 서운함도 잊은 채 같이 두 팔 벌리고 얼싸안으니 저는
속도 벨도 없는 엄마였지요.
요즘 한참 빠져있는 포켓몬고 게임보다 볼링이 더 재밌다며
매주 와서 하루 종일 치자는 아이의 속없는 말에도
좀 전의 빈정 상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그토록 즐거웠다는 아이의 말만 가슴에 남아
"그래 그러자" 대답했습니다.
벌써 주말이 다가옵니다.
이번엔 싸우지 않고 즐겁게 다녀올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