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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쿠 Nov 14. 2023

술, 담배 그리고

저녁 6시가 넘어가는 시간. 마트는 저녁거리를 사거나 저녁 식사에 곁들일 반주용 술을 사기 위한 손님들로 붐빈다. 축구나 야구 등 스포츠 중계가 있는 날 저녁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평일 퇴근 시간 또한 꽉 찼던 술 냉장고가 비워지는 훈훈한 풍경이 연출된다. 매출에 대한 기대감으로 광대가 승천하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사정없이 브레이크를 거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가끔 등장하는 청소년들이다. 하루 중 몇 안 되는 바쁜 틈을 노리는 치밀한 계획, 엄마뻘 아주머니와 독대하는 과감한 행동 등 그들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점주들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스스로 노안임을 자신했겠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청소년만의 앳된 분위기는 숨길 수 없다. 잠시 얼굴을 마주한 순간에 미성년자임을 잡아내는 실력은 여러 경험치에서 나오는 학습된 능력이자 타고난 동물적 감각이다.



한 번은 저녁 시간에 주변 편의점을 들른 적이 있다. 역시나 바쁜 시간인 만큼 여러 명이 계산대 앞에 줄을 서고 있었고 내 앞에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큰 키의 청년 둘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쎄 체인지 1mg 주세요."

"신분증 보여주세요."

신분증을 찬찬히 살피던 점주가 물었다.

"생일이 언제예요?"

"네?12월인데요."

"신분증에는 9월이네요?"

"네? 아!"

50대로 보이는 점주의 질문은 급소를 찌르듯 날카롭고 정확했다.

"실제 생일과 주민등록증 생일이 달라요."

재빠른 대처로 점주를 위기로 몰아넣을 법도 한데 순발력을 겸비하기엔 아직 어렸던 두 청년은 대꾸 한마디 하지 못하고 건네주는 신분증을 받아 들었다. 벌게진 얼굴로 서로 먼저 나가고자 문 앞에서 문고리 쟁탈전을 벌이고서야 가까스로 편의점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와 이런 방법도 있구나. 나도 써먹어야지.'


며칠 안 되어 상대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공격을 할 기회가 나에게도 왔다. 미소를 가장한 매의 눈으로 술을 사는 손님들을 관찰하던 그때 두 남자가 눈에 띄었다. 물건을 고르는 내내 속닥속닥 붙어있던 그들은 카운터에 와서는 언제 일행이었냐는 듯 각자의 포지션으로 흩어졌다. 한 명은 카운터에 장바구니를 내려놓았고 다른 한 명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과자들로 채워진 장바구니의 한구석 맥주병이 눈에 띄었다. 맥주를 한 손에 집어 들며 손님의 얼굴을 확인했다. 눈 밑까지 올려 쓴 마스크를 내려달라는 요구를 할 필요도 없을 만큼 어리고 반짝이는 눈빛이었다. 긴장과 경계로 가득한 아이의 눈빛을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어 나의 의무를 행사하기로 했다. 위조된 신분증일지 모르니 철저하게 검증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차! 생일도 꼭 물어봐야지!

"신분증 부탁드립니다."

"네?"

"신분증이요.


분명 들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할 단어인 신분증. 하나 이 아이는 예상하지 못한 듯 어쩌지 못하고 얼음이 되어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기처럼 고개를 도리도리하고는 푹 숙이고 말이 없다. 당황하는 쪽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보통의 아이들은 주머니를 뒤지는 척을 하다 집에 두고 왔으니 가져오겠다 말하고는 급히  달려 나간다. 당연히 돌아오지는 않는다. 혹은 편의점의 그 아이처럼 형이나 언니 신분증이라도 가져오는 성의와 노력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한데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아이는 그 어떤 대안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스스로 벌서고 있다. 하다못해 삼식육계 줄행랑이라도 쳐야 이 상황이 마무리되는데 그저 처량하게 서 있으니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가, 가란 말이야! 어서 도망가라고! 모른 척할 테니 저 문을 박차고 나가라고! 네 친구도 밖에서 기다리잖아?'

괜찮아! 너에게 훈계할 마음 따위 없어! 그러니 어서 나가라고!'

용서와 포용과 기회를 담은 눈빛으로 바라보는데도 고개를 푹 숙인 아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니 이를 어찌하리오. 날카로운 공격은커녕 어쩐지 달래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몇 살이야?"

"고3이요."

"그렇구나. 이 물건은 가져다 제자리에 정리해 줄래?"

"네"

제자리에 맥주를 정리하고서는 과자는 다시 카운터에 내려놓는다. 어라? 보통은 당황해서 과자까지 진열대에 던져두고 나갈 텐데 그 와중에 술만 놓고 오는 걸 보니 실속은 다 차리는 아이였다.

"사장님 정말 죄송해요. 저 오늘 처음 해보는 거예요."

"응. 그래 보여."

"제가 이렇게 어설픈지 몰랐었요. 저 1년 뒤에 술 사러 다시 올게요."

"응. 근데 너 1년 뒤에도 신분증 검사받을 얼굴이야. 꼭 신분증 챙겨 와."

"네. 오늘은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근데 다른 데 가도 걸리니까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그냥 얌전히 1년 기다려."

"네"

스무 살이 되어 다시 온다면 내 돈으로 맥주를 사주고 싶을 만큼 예의 바르던 그 아이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오지 않는 걸 보니 고3도 거짓말이었나 보다.


바쁜 시간에 계산이 밀리다 보면 가끔 매의 눈이 계산대 모니터만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경계심은 오로지 계산이 맞고 틀리는지에만 작동하느라 손님 얼굴을 뒤늦게 확인하게 된다. 카드 단말기에 꽂힌 손님의 카드를 확인하고 난 후, 즉 타이밍을 놓치고서야 마주한 손님이 언뜻 어려 보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늦게라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신분증을 요구한 적이 있는데 손님은 마지못해 신분증을 보여주면서도 나의 허를 찔렀다.

"이미 결제되었는데 뒤늦게 보여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정확히 맞는 말이다. 식은땀이 났다. 20대 초반의 성인이라 다행이었지만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로 10대 후반인지 20대 초반인지 헷갈리면 무조건 신분증 검사를 원칙으로 삼았다.

"사장님. 지금 네 번째 검사하는 건데요?"

"아 정말요? 어쩌죠. 마스크 쓰면 누가 누군지 몰라서... 미안해요. 다음엔 꼭 기억할게요."

오류 난 경각심, 과도한 권리 남발은 결국 몇몇 손님의 짜증으로 돌아오니 이번엔 내 얼굴이 벌게지더라. 이건 학습된 능력도 동물적인 감각도 아닌 그저 영업정지와 벌금에 대한 두려움으로 떠는 어느 자영업자의 몸부림이다.


가끔 소문을 통해 동종업계의 점주들이 벌금이나 영업정지를 당하는 일을 듣곤 하는데 위의 아이들은 그 나이대의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그나마 순진한 아이들이라 말할 수 있다. 막걸릿집을 하는 손님이 있다. 평소대로 샐러드 야채를 고르는 안색이 안 좋아 무슨 일 있느냐 물었더니 한숨을 푹 쉰다. 며칠 전 젊은 여자 몇 명이 왔길래 신분증 검사를 했단다. 모바일 신분증으로 성년임을 확인하고 술과 안주를 팔았는데 계산할 때가 되자 말이 바뀌더란다. 위조된 신분증이었으며 자신들은 미성년자라고. 술값을 안 주겠다고 협박하더란다. 속된 말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협박까지 하는 모습에 화가 나 경찰을 불렀지만, 그 손해는 오롯이 점주의 몫이었다. 영업정지를 당해 당분간 쉰다며 꼭 실제 신분증을 검사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야말로 뉴스에서나 들을 만한 일들이 실제로 내 주변에서 일어나다니. 험한 세상임이 틀림없다. 동네 골목에 자리한 위치상, 청소년이 거의 없는 원룸가 특성상 아직 미성년자 판매에 따른 벌금이나 영업정지로 인한 손실은 없다. 그럼에도 늘 두려움은 있다. 모든 책임은 업주가 감당해야 하므로.


미성년자에게 담배, 술을 판매하다 적발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과 함께 영업정지 당한다. 모든 손해는 점주가 감당하기에 실제로 억울한 사례들도 많다. 위의 막걸릿집처럼 신분증 검사를 했지만, 위조한 신분증까지 철저하게 구분하기는 힘드니 말이다. 그래서 인터넷상에서는 구매자도 같이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다. 한데 구매자도 같이 처벌하면 판매자와 구매자 작당의 모의가 우려된다. 구매자만 처벌을 받기에는 판매자의 부도덕이 염려된다. 그렇다면 우려와 염려를 최소화할 효과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청소년의 호기심이 일탈이 되고 일탈이 비양심과 부도덕으로 확장되는 행위를 제재할 대책은 필요해 보인다. 미성년자라도 자기 행동의 책임을 질 줄 아는 시스템이 단계적으로 필요하다. 반드시 법적제재를 수반하는 책임을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매장의 투명 유리를 불투명으로 바꿔 담배를 가리는 방식의 대책과 판매자 한쪽으로 치우쳐진 처벌을 보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술, 담배를 청소년에게 판매 금지한 목적은 유해한 물질로부터의 청소년 보호다. 얼마 전, 지난 몇 년 사이 청소년의 흡연, 음주로 인한 질병은 크게 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지금껏 해왔던 방식들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일까? 과거부터 성인들의 흡연을 줄이고자 많은 캠페인을 벌여왔다. 가격을 올리고 담뱃갑에 경고 문구를 썼다. 더 나아가 끔찍한 사진들까지 부착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신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서일 테다. 한데 청소년들이라고 쉬울까? 시작을 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작하였다면 중독으로 가는 길을 최소화할 구체적 방안은 무엇일까? 모두가 한 번 더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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