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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쿠 Nov 29. 2023

100원의 무한 가치

"이웃님들! 물건 사고 난 후 꼭 영수증 받으세요. 오늘 편의점에서 물건 사고 어쩌다 확인한 영수증에서 틀린 것을 보고 그동안 몇 번이나 틀렸을지, 얼마나 손해를 봤을지 추측이 안 되네요. 자주 가던 곳이라 더 짜증 나네요."

얼마 전 맘카페에 들어갔다 본 글 내용이다. 분을 삭이기 힘들다며 동네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이래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 글에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댓글로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나도 계산이 틀린 적이 몇 번 있어 글을 읽는 내내 찔렸다. 변명하자면 고의가 아니라 실수였다. 그 실수를 손님이 먼저 알아채 주면 정말 감사하다.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정상적으로 계산을 마무리하면 실수에 대한 부끄러움보다는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안도감이 먼저 든다. 가장 최악은 틀린 계산을 나중에야 알아차렸는데 단골도 아니고, 회원 등록도 없고, 이 동네 거주자도 아닌 경우로 내가 사기 친 것만 같아 찝찝한 마음이 하루 종일 일을 방해한다. 신원미상의 그 손님이 우리 가게에서 액땜한 덕에  좋은 하루로 마무리하기를 바랄 뿐이다.


나도 맘카페의 글쓴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계산 착오의 대상이 편의점이나 대형마트가 아닌 우리에게 물건을 주는 거래처였을 뿐 글쓴이가 느끼는 황당함, 분노, 배신감은 똑같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으로 마트를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되자 일은 곧 익숙해졌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초심은 곧 사라지고 대충대충의 안일함으로 하루를 넘겼다. 일배 (매일 배달되는 우유, 두부, 콩나물 등 신선식품) 거래처가 오면 영수증의 품목과 숫자만 확인하였다. 본래는 매입 단가 확인이 기본이었지만 매일 단가 확인이 번거롭고 귀찮아 생략한 지 한참 되었다. 어느 주말 오후, 한가한 시간이 계속되자 그동안 미뤄두었던 거래처 파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작위로 손끝에 닿는 파일 하나를 꺼내어 영수증의 품목 바코드를 찍었는데 시작부터 포스기에 입력된 매입 단가와 영수증의 매입 단가가 달랐다. 일배 제품은 마진율이 15% 내외로 쓰레기봉투와 담배 다음으로 낮다. 그래서 50원 100원 차이로도 마진율 차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마트와 거래처가 100원이라도 서로 더 벌기 위해 협상으로 제시되는 금액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입 단가가 100원 200원뿐 아니라 품목에 따라서는 500원까지 차이가 나니 내가 뭘 잘못 보았나 내눈 의심되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어쩌다 실수였겠지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나의 추측과 달리 틀린 부분을 표시하는 빨간펜 자국은 품목이 늘어날수록 날짜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광범위해졌다. 남편에게 화가 났다. 그동안 이런 것도 확인 안 하고 뭐 했냐며 당장이라도 따지려고 전화를 들었다가 도로 제자리에 두었다. 그럼 나는 그동안 뭘 했던 거니? 누구를 탓하기에는 모두가 안일한 공범이었다. 올 때마다 순박한 웃음을 짓던 거래처 담당자에게는 분노를 넘은 배신감이 들었다. 파일 속 몇 달간의 모든 영수증을 전수검사했고 날짜별 틀린 품목과 단가를 정리하여 남편에게 현 상황을 전했다. 주말임에도 거래처에 연락해 해명을 요청함과 동시에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우리 나름대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특히나 숫자와 돈에 예민한 남편은 더더욱 난리였다. 확인된 영수증만 이러하니 버린 이전 영수증은 확인할 길도 없고 손해가 얼마인지 감이 안 왔다.


월요일이 되었다. 담당자는 죄인이 되어 어두운 낯빛으로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예고도 없이 매입 단가가 매번 이렇게 널을 뛰는 이유를 물었다. 마트 매출 규모에 따라 다른 단가를 적용하는데 전산이 잘못되어 다른 마트 단가와 섞였다는 대답이었다. 매출 규모에 따른 차등 단가야 업체의 권한이니 따질 이유가 못 된다. 하지만 그 자료가 섞였다는 말은 납득하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원인 파악을 위해 옥신각신하기보다는 어떻게 그동안의 손해를 보상할지 정확한 대답을 듣는 게 중요했다. 다행히 아니 당연히 업체는 그동안의 손실을 빠르게 보상해 주었고 앞으로 예고 없는 단가 변동은 없는 것을 약속으로 큰소리 없이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 사건으로 나는  충격을 받았다. 게으름의 대가가 사람에 대한 신뢰 상실이라는 교훈을 얻고 그 이후부터는 모든 입고 제품의 매입 단가를 그 자리에서 확인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본래 업체들은 단가가 인상되면 인상되는 제품만 따로 표시해서 알려주는데 이제는 무조건 전수검사로 바꾸었다. 월초가 되면 하루에도 5~6개 업체가 다녀간다. 한 회사별로 몇십 개의 품목이 들어오니 몇백 개가 된다. 검수 후 손님 계산하랴 단가 확인하랴 바쁘지만, 소홀히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 이전 것까지 다시 살펴야 하니 그 또한 꽤 피곤한 작업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단가를 철저하게 확인했는데도 최근에 또 다른 문제로 한바탕 소란이 났다. 물건 검수를 하고 단가도 살펴서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는데 이번엔 파일에 쓰인 최종금액이 업체와 달랐다. 다시 영수증을 하나하나 대조하고 반품과 입고를 확인하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찾아야 했다. 월초라 업체 직원도 나도 바쁜 시간이지만 어쩔 수 없다. 따로 확인하고 나중에 맞춰보자는 업체 직원을 "10분만"을 외치며 붙잡았다. 모든 것은 현장에서 확인해야 수고가 덜하다. 서로의 장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큰소리가 오가자 계산하는 손님과 진열하던 다른 거래처 직원들까지 우리의 눈치를 보았다. 최종금액을 맞추고서야 서로 민망한 웃음이 나왔다. 우리의 고성은 물건 진열 중이던 다른 업체들도 덩달아 자신들의 영수증을 한 번씩 더 살피는 눈치만렙 직장인의 모습을 야기했다.


또 다른 경우로 틀리는 업체도 있다. 대리점 운영 경력이 나의 나이를 능가하는, 60대 이상의 업체 사장님들은 욕심 없이 소소하게 몇 개의 슈퍼를 관리하며 생활비 벌어 쓴다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 굳이 돈이 드는 투자를 안 하게 되는데 검수용 휴대 기기가 그 예이다. 대부분은 휴대용 기기로 박스 바코드만 찍어도 상품명과 개수, 단가가 쓰인 영수증이 출력된다. 한데 이분들은 예전처럼 수기로 작성한다. 먹지 달린 영수증 아시는지? 90년대에나 봤을 법한 그 영수증 종이에 품목부터 단가, 개수, 총액까지 하나하나를 모두 계산기 두드려 작성하니 아무래도 틀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 분은 총액에서 자꾸 틀려 수정하는 횟수가 늘자, 이제는 품목만 적고는 나에게 나머지 일을 맡긴다. 단가부터 총액까지 알아서 적으라는 의미로, 순간 내가 거래처 직원인 줄 착각하게 된다. 재밌는 점은 예전엔 사장님이 틀려 내가 지적했는데 이제는 내가 적다 실수하면 역으로 지적을 당한다. 부끄러운 마음 웃음으로 대신할 수밖에. 처음부터 다시 쓰기에는 엄두가 안 나 틀린 부분을 밑줄 쫙쫙 치고 옆에 써가다 보면 어느새 너덜너덜해져 대충 봐서는 알아보기 힘든, 암호 같은 그 영수증을 찰떡같이 알아보는 우리는 한 장씩 나눠 가지며 작업은 완료된다.     


이렇듯 먹지에 수기로 영수증을 쓰는 업체가 서너 곳 되는데 또 다른 번거로움을 동반한다. 신제품이거나 단가가 인상된 제품 또한 실제 물건을 가져와 계산대에서 하나하나 찍어가며 입력해야 한다. 다른 업체들은 제품 바코드 번호까지 영수증에 표기되어 앉아서 바코드 번호만 입력하면 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해결 방법이 있다. 우리가 따로 휴대용 검수 기계를 사면 된다. 역시 투자하지 않은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일하는 곳이 있네 라는 업체의 놀림을 받는다. 그러니 수기로 작성하는 업체나 일일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우리나 도긴개긴으로 90년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누구를 탓할 수 없다. 그저 옛날 방식으로 눈이 빠져라, 숫자놀이를 할 수밖에.


열심히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하느라 남은 중요한 일을 생략한다면 그 또한 낭패로 이어진다. 그 책임은 온전히 내가 져야 하고 욕받이는 당연하고 손님과의 신뢰가 뚝 떨어지는 문제라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신제품의 가격표를 뽑아 제품 앞에 꽂는 것을 깜빡하는 건 그나마 후폭풍은 없다. 하지만 제품의 판매가가 인상되었는데 깜빡하고 가격표를 고치지 않았다면, 예를 들어 분명 진열대에는 1,500원이라고 쓰여있던 커피가 계산대에서 2,000원으로 찍히면 나는 일순간에 장사치, 저급한 상술로 딱 오해받기 십상으로 낯부끄러운 순간이 된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다.

"내가 그동안 믿고 샀는데 이럴 수 있어요? 사람을 속여도 유분수지. 동네 장사 이따위로 하는 거 아냐!"

결국 일이 돌고 돌아 맘카페 글의 원점으로 돌아왔다 손님이 맘카페의 글쓴이와 같은 심정으로 비슷한 말을 하는 사이사이 무한사과와 깊은 반성을 통해서만 겨우 신뢰를 회복하니 자나 깨나 단가 조심!! 가격 조심!! 친구끼리는 줘도 안 가질 100원, 요즈음은 잔돈 100원도 귀찮다며 마다하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하찮은 100원이지만 사회에서는 특히나 장사에서는 그 값어치가 무한정이다. 나와 상대방 신용의 척도, 기준의 첫 단위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돈 100원 = 신뢰, 신용이라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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