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욕심

by Kelly

지금 생각해 보니 어떤 계기가 있을 때마다 악기를 구입하거나 업그레이드한 것 같다. 처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강사님이 빌려주신 걸 이용했다. 아이들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어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이어서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 생각했다. 배운 지 1년 만에 교회에 새로 생기는 챔버에 입단하고자 처음으로 연습용 아닌 악기를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강사님께 말했더니 100만 원 정도면 수제 악기를 구매할 수 있다고 했고, 어떤 악기가 좋은 건지 모르는 나는 강사님께 구입을 의뢰했다. 당시 나에게 100만 원은 큰돈이어서 헌금한다고 생각하고 망설이다 구입했다. 그렇게 받은 악기가 어떤 소리였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소리가 크지 않았고, 내가 연주를 잘 못하던 시절이어서 악기 소리가 좋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연습용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 악기로 몇 년 동안 교회 챔버 활동을 했다.


이사를 온 후 한참 바이올린을 쉬다가 동네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게 되면서 악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근처 악기 가게에서 내 악기를 중고로 팔고 새 악기를 할인해 살 수 있는지 물었고, 몇십 만 원을 더해서 수제 악기로 업그레이드했다. 말이 업그레이드이지 별 차이가 없는 바이올린이었다. 그 악기로 2년제 음대를 다니고 졸업했다.


올드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원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올드 악기’란 제작된 지 대략 100년이 넘은 악기를 말하고, 그보다 오래되지 않은 악기는 ‘모던 악기’라 불린다. 올드는 관리가 어려운 반면 소리가 부드럽거나 울림이 좋다. 요즘은 오랫동안 잘 건조된 나무로 잘 만든 새 악기도 올드에 비해 관리 가 쉽다는 이유로 각광받고 있다. 올드 악기의 아름다운 음색을 느낀 나는 저렴한 올드 바이올린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다. 적어도 500만 원 이상은 되어야 프랑스 악기든 독일 악기든 구입이 가능했다. 대학원 학비도 내야 했기에 그렇게 비싼 악기를 살 수가 없어 싸고 좋은 악기(간혹 있다)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그러다 악기 총판(바이올린 계에서는 황학동, 동묘로 불리는 곳) 같은 곳을 발견했는데 문을 여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악기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거의 다 중고 악기였다.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이 줄 서 있는 모습은 아름다움 자체였다.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를 몇 번을 갔는지 모른다. 그때 내가 가지고 있던 악기를 팔고 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워낙 자주 가서 사 오고, 바꾸고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2~300만 원대 올드는 지금 생각하면 제조 과정에 오류가 있거나, 관리가 소홀해 손상된 악기였지만 당시에는 좋은 악기 소리를 별로 들어보지 못해 켜 보는 것마다 가진 것보다는 좋게 느껴졌었다.


대학원에 다니고 동료들이 쓰는 악기를 보면서 다시 욕심이 몽글몽글 생겨나기 시작했다. 누구는 2500만 원짜리, 누구는 3000만 원짜리 악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몇 억, 몇십억 원짜리 악기를 쓰는 사람도 많겠지. 하지만 당시 1000만 원이라는 돈을 나를 위해 쓴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 일이어서 선뜻 악기를 바꾸지 못했지만 마음속 욕심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저기 통장에 흩어져 있던 저금을 긁어모아 친한 선배 언니가 단골인 악기사에 들렀다. 총판점이랑 다르게 악기들이 고급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가격대를 이야기하고 켜 보니 소리가 정말 고급스럽게 느껴졌고, 내가 살 수 없는 금액의 악기는 정말 환상이었다. 그 악기점을 또 몇 번을 들락거리며 악기와 활을 사고 바꾸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사용하는 메인 악기를 그곳에서 구입했다. 악기와 활을 계속 더 비싼 것으로 바꾸다가 결국은 둘을 합쳐 보증서까지 있는 독일 악기로 산 것이다. 우렁차면서도 날카롭지 않은 예쁜 소리를 내는 악기였다.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진 잘 관리된 건강한 악기였는데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사이즈가 표준보다 조금 크다는 것이다. 체구가 그리 크지도, 손가락이 길지도 않은데 그 가격에 그런 소리가 나는 악기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덜컥 샀지만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는 악기다.


메인 악기가 생기고 몇 년을 쓰다가 세컨 악기도 연습용 아닌 괜찮은 것으로 사고 싶어 졌다. 사실 총판에서 샀던 악기는 부전공으로 첼로를 배우면서 첼로로 바꿔 오는 바람에 세컨 악기가 없었다. 세컨 악기는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비 오는 날 연주할 때를 대비해 구비하는 경우가 많다. 바이올린을 춥거나 더운 날 차에 잠시라도 두어야 할 때도 이용한다. 오다가다 보일 때마다 연습하기에는 막 쓰기 좋은 세컨 악기가 하나 있었으면 했다. 그 사이에 연습용 악기는 두 개나 더 구입해 아이들 가르칠 때나 짬 날 때 연습하려고 학교에 갖다 두었었다. 즐겨 가는 바이올린 카페와 중고 카페에서 바이올린을 검색해 수시로 보던 중 15년 전 150만 원에 산 국내산 악기를 60만 원에 판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악기가 너무 예뻐서 돈을 찾아들고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했다. 사실 소리까진 기대하지 않았는데 웬걸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작지 않은 볼륨을 가진 악기였다. 얼른 지불하고 집에 가져와 지금까지도 잘 사용하고 있다. 세컨악기라기 보다는 연습용에 가까워 책장 위에 늘 꺼내 두고 왔다 갔다 하다 눈에 띌 때마다 긋곤 한다. 그런데 메인 악기에 비하면 고급스러운 소리는 아닌지라 거의 집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얼마 전 다시 그 총판을 찾았다. 사실 바이올린을 첼로로 바꿀 때 켜 본 올드 악기가 하나 있는데 그 악기 소리가 너무 좋아 계속 귓가에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하나 더 산다는 게 부담되기도 하고, 적은 금액도 아니어서 내려놓았지만 머릿속에서 자꾸 그 악기가 생각이 나 정근수당을 받은 다음 날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내 생일 선물이라는 핑계로 악기를 다시 보러 갔다. 혹시나 팔릴까 봐 악기들 맨 뒤쪽에 넣어 두었었는데 그때까지도 그대로 있는 걸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줄을 그었더니 어렵지 않게 나는 소리. 연주하기 쉽고 명쾌한 소리가 나는 건강한 악기. 이태리 바이올린처럼 배가 볼록한 체코 악기였다. 저음은 괜찮은데 고음이 조금 날카롭다는 생각이 있긴 했지만 망설이다 현금은 20만 원 더 할인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바로 구입해 가져왔다. 집에서 켜 보니 a와 e현의 특정 음에서 생소리가 느껴졌다. 이런 낭패가 있나. 주인에게 혹시 환불하러 갈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주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월요일에 서초동에 있는 악기 수리점을 찾아갔다. 사운드포스트를 조금 옮겼더니 한결 나아졌다. 주인 분이 꽤 건강한 소리가 나는 악기라고 하셔서 군말 없이 쓰기로 했다. 아마도 너무 오랫동안 켜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어 그랬나 보다. 조만간 사운드포스트와 브릿지를 교체해 더 좋은 소리로 오래 사용하고 싶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악기를 찾아 발품을 판 결과 가격이 비싸다고 무조건 좋은 악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바이올린이라도 소리가 천차만별의 특징을 지닌 것도 알게 되었다. 저렴한 악기 중에서도 좋은 소리 나는 게 있긴 하지만 비싼 악기는 대체적으로 미세한 차이로 표현력이 증대되는데 그 작은 차이가 관람자와 연주자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오늘의 결론, 어떤 악기이든 뛰어난 연주자의 손에서는 훌륭한 음악이 나오겠지만 나쁜 나무로 만든 좋은 악기가 없으므로 악기는 발품을 팔아 매의 눈으로 선별하여 구입하고, 사랑하며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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