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뜨거운 땡볕이 내리쬐는 오후. 저벅저벅 낡은 신발을 끌며 정류장을 지나쳤다. 왠지 그냥 무작정 걷고 싶었다. 갈 곳은 정하지 않았다. 그저 발길이 이끄는 대로 걸어갈 뿐이다. 정처 없이 헤매는 발걸음. 그렇게 몇십 분을 배회하다 보니, 후덥지근한 열기가 닿는 곳곳에는 진한 땀방울이 맺혔다. 잠시 걸음을 멈춘 뒤 더위를 피할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주택가 사이 작은 주얼리 샵이 눈에 띄었다. 다양한 가격대의 장신구가 진열대에 걸려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조악한 초록빛 원석. 쨍한 빛깔의 원석이 박힌 팔찌엔 만 원 언저리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다들 무언가에 홀린 듯 구매한 경험이 있으리라. 나에겐 그날이 그러하였다. 평소 목걸이나 팔찌를 하고 다니지 않지만 그날은 유독 그 초록빛을 띠는 싸구려 팔지에 시선이 꽂혔다.
무언가에 이끌린 듯 가게로 들어가 팔찌를 가리켰다. 점원은 고개를 숙여 아래쪽에 위치한 팔찌를 꺼내 나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사이즈가 조금 큰 지 손목 위에서 돌아다니는 팔찌. 사이즈를 꼭 맞게 조절해 줄 수 있다고 하였으나 지금 있는 그대로 놔두고 싶었다. "괜찮습니다." 읊조리듯 짧게 대답한 뒤 가게를 나왔다.
햇빛을 받아 싸구려 결정이 반짝거렸다. 나의 결정 또한 싸구려였을까. 문득 이러한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가벼운 팔찌 위에 무거운 시간이 엉겨 붙는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과하게 반짝이는 초록 결정. 그것을 보고 있자니 이질감이 밀려 올라온다. 소매를 내려 팔찌를 감춘다. 싸구려 결정 속에 맺힌 지나간 시간들이 어렴풋이 겹쳐 보여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