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 (異道)

반지하 파라다이스

by 한 율


너무 똑같다고 느끼게 되면 멀리 튕겨져 버린다. 마치 자석처럼 말이다.


이도와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도를 생각할 때면 그 끝은 언제나 빈 공간이었다. 그 공간은 점차 기억 속에서 이도를 밀어내다가 흐릿한 미소만 어렴풋이 남겨두었다. 이럴 때면 우리의 기억은 그저 공허함으로 나아가기 위한 무수한 계단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불분명한 계절의 경계 속에서 점차 뚜렷한 흐름이 느껴질 때쯤 이도는 갑자기 발길을 돌렸다. 겨울의 한기가 어렴풋이 남아있던 어느 날, 때 이른 봄비는 안개처럼 부서졌다. 방 안의 적막함을 깨지 않으려는 듯 이도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난 이곳이 좋아. 여기에 남고 싶어"


그에 대한 대답은 불필요해 보였다. 이도는 언제부터 그렇게 마음을 굳혔을까. 곰곰이 되짚어봐도 마음속에 걸리는 일들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창밖에 부슬비는 소리 없이 내리다 이따금씩 창틀에 부딪힐 때 작고 투명한 소리를 내었다.



어쩌면 이도가 그 장소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도는 언덕 끝자락에 기댄 흰색 담장을 두른 골목집을 사랑하였다. 굽이치는 골목길, 미로 같은 골목 안에서 그녀는 항상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고 있다는 듯 발걸음에 막힘이 없었다.


비록 큰 행복은 없어도 마찬가지로 큰 불행도 없어 보였던 그 장소. 이도는 소박한 풍경에 마음을 사로 잡혔는지 이따금씩 조용히 콧노래를 부르며 자주 웃곤 하였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기억에 남을 법한 큰 추억도 없지만 우리를 괴롭게 했던 큰 불행도 없었다.


다만, 그동안 간과하며 놓친 부분이 하나 있었다. 조금씩 변화하던 동네의 풍경이 이제는 알아보니 힘들 정도로 달라졌다는 점이다. 낮은 높이의 건물들은 점차 사라지고 이가 빠진 골목길 위로 거대한 빌딩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 또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터놓을 때가 되자,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이도는 지금 어느 길 위에 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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