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 구획

반지하 파라다이스

by 한 율

쿰쿰한 곰팡내가 올라오는 무채색 공간.


단순한 직선들이 얽힌 공간 속 밖의 풍경이 스미는 작은 쪽창.


반지하.


그럼에도 아직 파라다이스를 꿈꾸는가?


지나치게 현실적인 공간은 환상이 침투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꿈을 차단한 공간에서 시작하는 하루. 절반의 기능을 지닌 창문 안으로 들어오려는 불투명한 햇살.


반으로 잘린 하루의 시작. 파편 같은 기억이 흐려지듯 멀어지며 눈앞에 들어오는 회색 공간. 벽지 뒤 갈라진 균열처럼 시간의 공백을 가늠해 본다. 무슨 꿈을 꿨는지는 종잡을 수조차 없다.


한시적 탈출.


'나가야만 한다.' 불현듯 밀려 올라오는 생각에 떠밀리듯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 엉성하게 묶인 신발끈. 대충 발을 넣고 구겨 신은 뒤 문을 박차고 나온다. 오후의 햇살이 제법 따갑다.

때가 탄 컨버스를 질질 끌며 도착한 버스정류장. 4분여 남은 애매한 기다림. 머릿속으로 어림잡아 본 PC방의 잔여시간은 대략 두 시간 반가량 남짓. 늘상 그렇듯 그저 죽치듯 허비하기엔 오늘은 날이 아니다. 그늘이 없는 땡볕 한가운데에서 고개를 휙 내젓는다.


변화가 필요하다.


일상을 송두리째 뒤바꿀법한 획기적인 무언가 말이다. 영화처럼 모종의 단서라도 존재하는 듯이 괜스레 주머니 안을 뒤젹여본다. 구겨진 종이 영수증만이 몇개 잡힐 뿐 별다른 건 보이지 않는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모든 것 속에서 잘게 찢긴 영수증 조각들이 휴지통 위로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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