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떨어지는 붉은 녹가루. 수도꼭지를 돌리자, 흘러나오는 녹물. 흙탕물과 같은 빛깔의 녹물이 손 위로 쏟아져 내린다. 끼익 쇳소리를 내는 수도꼭지를 반대로 돌려 물을 잠근다.
손을 씻으려 했는데 안 닦느니만 못하게 되었다. 휴지를 꺼내 손을 닦는다. 퍼석한 녹가루의 감촉도 함께 지워진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은 때로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어쩌면 삶은 기계의 부품처럼 그저 낡아가는 것이 아닌가'에 생각이 미칠 때쯤마음속에 슨 붉은 녹이 점차 선명해진다. 생각의 수도꼭지를 틀기도 전에 녹슨 상념은 이미 콸콸 쏟아져 내렸다. 생각의 홍수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머릿속이 흠뻑 젖은 기분이 들어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털어본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생각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그중 대부분은 현실이 되지 못한 기대, 미련과 후회가 뒤죽박죽 엉킨 과거였다. 생각의 폐기물은 머나먼 공터에서 나뒹굴다가도 어느 때가 되면 붉은 녹을 뒤집어쓴 채 다시 돌아와 있었다.
녹덩이 인간. 살아가다 보면 녹덩이 인간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먼저 자신의 녹슨 세월에 대해 열렬히 항변한다.
그러고 나선 아직 녹이 슬지 않은 이들에 대해 핏대를 세워 힐난한다. 그들은 이리저리 재단해 보지만 녹이 슨 아귀가 다른 이들과 잘 들어맞을 리가 없다. 그들과 맞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탄생한다.
불그스름한 분노가 그들 눈동자에 가득 찬다. 날이 선 단어들로 말을 싹둑 자른다. 그러고선 한바탕 붉은 녹가루를 여기저기 흩뿌린다. 한바탕의 소통이 끝나면 쉰 목소리로 마음속 그을음을 힘겹게 되새김질한다.
공허한 침묵으로 마침표를 찍고 발길을 돌릴 이들. 모두에게 그러하듯이 나에 관한 건 결국 나일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