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 소리

반지하 파라다이스

by 한 율


식물이 잘 자라는 곳이 있듯이 반지하에서는 유독 벌레가 잘 생겨난다. 갈라진 쿰쿰한 벽 틈 사이로 사시사철 여러 종류의 벌레가 드나든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풀벌레 소리가 짙어지기 시작한다. 제법 서늘해진 밤공기에 머리맡이 차갑다. 눈을 감자, 점차 커지는 풀벌레 소리. 그런데 오늘따라 소리가 유달리 크고 가깝게 들린다.


좁은 방에서 울리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어둠 속을 헤집는다. 화장실 부근에 이르자, 갑자기 소리가 뚝 끊긴다. '여기 있구나.' 불을 켜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냉기가 감돌뿐 고요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몸을 구부려 안쪽에 있는 파이프까지 샅샅이 찾아본다. 몸이 닿지 않는 파이프라인 구석으로 핸드폰 플래시를 켜자 눈앞으로 검은 무언가가 갑자기 확 튀어나온다.


깜짝 놀라서 몸을 뒤로 휙 빼고 조심스레 주위를 살펴본다. 작은 귀뚜라미가 타일 바닥에 쥐 죽은 듯이 붙어있었다. 휴지를 뽑아 귀뚜라미를 감싸 쥐고 반지하 밖으로 올라온다.


먼 구석으로 귀뚜라미를 던진 뒤 새벽 골목길을 말없이 바라본다. 정적이 감도는 골목 어귀. 골목가에서 길게 늘어진 고성이 이따금씩 파편처럼 흩뿌려졌다. 밤이 깊어지자 풀벌레 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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