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밤

반지하 파라다이스

by 한 율


검은 밤, 부러진 감정을 간신히 끌어내어 몰두해 본다. 글로 남지 못한 감정은 며칠이 지나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있을 것이다. 글들 역시 세상에 나가지 못하면 원래의 의미를 잃고 점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작은 골방 안에는 텁텁한 공기가 갇혀 있다. 누릿한 스탠드 조명에서 가느다란 빛이 어둠을 뚫고 책상으로 내려앉는다. 활자 덩어리는 먼지처럼 더깨로 쌓여 사방에 널브러져 있다. 글자들에 엉켜 붙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 그렇게 쌓인 글자들을 보다 보면 글을 쓰는 것이 참으로 미련하게 느껴진다.


그걸 느낀 순간은 꺾일 의지마저 얼마 남지 않았던 때로 기억한다. 유통기한이 없을 것만 같았던 열정을 마구잡이로 퍼담아 쏟아부은 것이 잘못이었을까. 지나간 일은 후회해 본들 그저 지나간 일일 뿐임을. 답답한 마음에 새벽 어스름 창문을 열자, 찬 공기가 방 안에 밀려 들어온다.


소리 없는 고요한 일렁임. 공기의 흐름이 섞이는 길목에 우두커니 멈춰서 있다. 별이 보이지 않는 검은 밤 안에서 떨어뜨리는 희뿌연 시선. 옴짝달싹 못한 채 그저 밤 안에 끼어있는 순간. 느릿느릿 줄지어 새어나가는 상념에 줄을 달아 방 안에서 연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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