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새 옷이 필요할까?
한 달에 한두 번씩 대청소 겸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한다. 컨디션이 아주 좋은 날은 마음 제대로 먹고 대청소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물건을 꺼내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과 앞으로 필요 없다고 느끼는 물건들을 무료 나눔 할 것, 쓰레기로 배출할 것으로 과감히 분리한다. 어느 시점까지는 물건이 계속 나와서 왜 꾸준히 정리해도 계속 물건들이 나올까 했는데 요즘은 서너 가지 정도 나오거나 정리할 물건이 나오지 않기도 한다.
나는 평소 스스로 생각할 때 나름 물건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리를 하는 날이면 그 생각이 부끄럽다고 느껴질 만큼 왜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쏟아지는가 탄식하곤 한다. 특히 그중 가장 많은 물건은 옷이다. 몇 달 전 대형 옷장을 무리하게 옮기다가 부서져 버리게 된 김에 옷정리를 싹 하고 그것보다 1/6 작은 크기의 4단 패브릭 수납장을 구매했는데 사계절 옷을 다 넣으려니 좀 무리였다. 옷을 모두 펼쳐놓고 천천히 살펴봤는데 아무래도 골고루 다 입는 옷들이었고 가짓수는 적지만 두툼한 겨울 옷도 있다 보니 작은 수납장에 다 수납이 되지 않았다. 수납장을 더 사기는 싫고, 옷들은 또 다 입는 옷들이고 참…. 난감했지만 어디선가 버리는 수납장을 발견하면 구해다 정리해야지 하고선 날을 보냈다. 그러다 마침내! 할머니댁의 20년 된 티브이 받침대를 버리고 새로 구입하게 되면서 그 곁에 있던 작은 수납장을 얻어 정리를 끝냈다. 안성맞춤으로 딱이었다.
키가 가장 큰 옷장에는 겨울 롱 점퍼 두벌, 짧은 점퍼 두벌, 재킷 두벌, 목도리 3개, 겨울 조끼 한벌과 여름 이불이 들어있다. (돌돌 말아 정리해 놓은 10년 가까이 된 유니클로 조끼도 있다.) 아, 회색 겨울 재킷은 사실 손이 자주 가지는 않는데…. 그래도 재킷 입고 단정히 나가야 하는 일이 한 번씩 있기 때문에 잔류. (왠지 두 달 내로 옷장에서 사라질 것 같다.) 4단 패브릭 수납장은 최대한 무겁지 않고 이동이 편리한 것으로 사고 싶어 구비했고 그 안에는 겨울 니트 몇 벌과 셔츠 여러 벌, 여름 반팔, 원피스 세벌, 속옷, 양말, 면생리대가 들어있다. 할머니집에서 구한 수납대에는 계절별 바지와 운동복들로 정리. 분명 다 입는 옷들인데… 그래도 너무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또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속옷, 옷, 모자, 양말… 이 모든 것들은 취향의 영역이다. 다양한 재질과 색상으로 수납장에 채워진 셔츠들만 봐도 나는 셔츠를 극선호하고, 겨울엔 목까지 따뜻한 목티를 즐겨 입으며, 여름엔 파슬파슬 소리 나는 나일론 소재의 바지를 자주 입는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무늬나 브랜드 로고, 그래픽이 최대한 없는 깔끔한 스타일을 사랑하는 나의 취향. 옷가짓수를 계속 줄이고 더 이상의 새로운 옷을 사지 않는 건 내 취향을 죽이는 것에 해당할까? 다른 것들은 취향의 영역과 미니멀리즘의 경계에서 덜 고민하지만 옷은 좀 더 숙고했는데 최근에 내린 결론은 미니멀리즘도 취향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옷으로도 충분히 내 취향을 갖추어 살아갈 수 있고 더불어 새 옷을 사지 않고 더 늘리지 않는 이것 또한 나의 취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나는 더 이상의 새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