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Apr 01. 2024

신발장

구두 세 켤레, 운동화 다섯 켤레

어렸을 때부터 나는 신발에 대한 욕심은 크게 없었다. 내가 원하는 신발을 여러 켤레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도 했고 중학교를 진학하면서부터는 주로 교복만 입다 보니 다양한 신발을 신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부터 내가 입은 속옷, 신은 양말, 운동화, 실내화를 스스로 빨아 쓰도록 교육시켰다. (가끔 할아버지가 대신해줘서 혼난 적도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더러운 것에서 새것처럼 된 신발이 참 좋았다. 게다가 신발은 빨리 늙지 않는 녀석이었기에 되도록 오래 신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스무 살 서울로 상경한 후 홀로 지내게 되면서 다양한 디자인의 운동화와, 구두들에 눈을 돌렸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많이 산 건 아니고) 지하철 환승할 때 한 코너에서 다양한 구두를 팔고 있는 것을 보고 난생처음 5cm가 넘는 힐을 샀다. 학교 갈 때 한번 신어 볼까 하고선 신었는데 발이 너무 아파 상당히 고역이었다. 아니 이 불편한 신발을 도대체 어떻게 신고 다니는 거지? 고향이 시골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걷는 게 늘 일상인 나에게는 편한 신발이 최고라는 게 기본 입력값이었던 것이다. 그래, 그럼 굽이 좀 낮은 구두는 신을만하지 않을까? 신촌 일대를 구경하며 놀다가 3cm가량의 은색 구두를 샀다. (지금이라면 절대 절대 절대 사지 않을 색상과 디자인) 하지만 굽이 낮다고 해서 편한 건 절대 아니었다. 신으면 아파서 괴로우니까 신발장에서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예뻐 보이지도 않았다.


이십 대 초반, 전문대를 나온 나는 졸업한 해에 바로 취업을 했다. 청소년 교육 복지 전공을 살려 청소년 수련원에서 일을 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일할 그 당시는 잠잘 시간을 빼고는 계속 서 있고 걷고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발이 편한 신발이 가장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소속된 교육팀 내에서 공동구매로 발이 편하면서도 디자인이 예쁜 운동화를 팀화로 구매해 신었다. 이즈음에는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나를 위해 좋은 운동화를 구매해 신고 다녔고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신발을 사지 않고 적은 양의 신발만을 구입해 신었다. 그렇게 많은 신발들을 거쳐 지금 나의 신발장에는 아침마다 뛰기 위해 필요한 러닝화 한 켤레, 빨간색 반스 한 켤레, 발 편한 운동화 두 켤레, 많이 낡은 컨버스 한 켤레(애착 운동화여서 처리하지 못하고 계속 신고 있다)와 차분히 입어야 할 때 필요한 로퍼 한 켤레, 겨울 구두 두 켤레(이 중 한 켤레는 악양에 있는 제로웨이스트 가게에 기부할 예정)가 있다. 이 마저도 많은가 생각하다가도 더 이상 신지 못할 지경에 이르지 않는 한 새로운 신발을 사지 않을 예정이니 적당하다고 스스로 합의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 신발장에는 맨 위칸부터 아랫칸까지 신지 않은, 오래도록 찾지 않은 신발들을 포함해 많은 신발들이 있을 것이다. 가끔은 불필요한 소비를 하면서까지 신발을 구매한 건 아닐까, 이만큼의 신발이 과연 필요한가 한 번씩 생각하며 삶에 적용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전 02화 나의 옷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