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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May 20. 2024

냉장고, 식재료를 쌓지 않는다.

 지금의 집으로 들어오면서 세탁기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성능이 나쁘지 않은 중고 제품이 있다면 사야겠다 생각했고 냉장고도 작은 용량이면 충분했다. 서울에서 살 때 (그때는 크리스천이었을 때) 교회 학사에서 여러 명의 동생들과 함께 살 때도 나는 큰 냉장고에 좁은 한두 칸 정도와 냉동실 한 구석(혹은 사용하지 않음) 정도로도 충분했기에 대용량의 냉장고는 필요치 않았다.


 나는 냉장고에 무언가 잔뜩 넣어 두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스트레스받아서 질렀다던지, 세일하는 김에 산 것이라던지, 장 볼 때 식재료를 이것저것 사서 넣어 놓고 먹지도 못하고(혹은 않고) 버리는 것을 특히 선호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습관, 혹은 태도이기도 하고 몇 년 전에 케냐에서 뭉쳐지지 않고 날아다니는 쌀밥에 당근과 감자를 쪄서 소금을 쳐 먹는 친구들을 본 후로 더욱 확고해진 생각이다. 내 삶이 그저 누군가와 달리 풍족한 것이니 누려도 된다는 말은 낭비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넘치게 먹고 마시고 남기고 버려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하고 적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음식을 함부로 남기거나 적당히 준비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게 준비해야 맞다는 판단과 욕심에 넘치게 만들고 고스란히 버리는 식문화가 반갑지 않다. 조금 부족하게 먹더라도 남기지 않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많이 먹어도 이미 아는 맛이며, 이미 아는 맛임에도 계속 먹고 싶은 건 욕심이고 그것은 대부분 태도와 삶의 어떤 부분을 무너뜨리는 명백한 독이다.) 아무튼 이러한 나의 신념으로 나는 작은 용량의 세탁기와 소형 냉장고를 선택했다.



 1인 가구이다 보니 식재료를 쌓아두지 않고 사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게다가 작은 용량의 냉장고이다 보니 많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내가 먹는 음식의 몇 가지는 동일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토마토, 아몬드, 그릭요거트, 계란, 양배추는 늘 구비해 둔다. 이것들은 내가 매일 먹는 것들로 떨어지면 채워 넣는다. 그 외에 냉동실에 블루베리, 파, 땡초가 끝. 그 외의 식재료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장을 보고 대부분 일주일치를 구매한다. 어쩔 땐 장날에 할머니가 사 오신 야채들을 받아 오기도 한다. 그때마다 필요하거나 먹고 싶은 식재료를 사되 조금씩 구비해 둔다. 주로 사는 것은 두부, 두부봉, 자연 치즈, 우유(그릭요거트를 만들기 위한), 오이, 당근, 어쩌다 육류. 그리고 할머니 댁에서 한 번씩 얻어오는 표고버섯과 감자, 상추 등의 야채들 조금. 할머니는 많이 주고 싶어 하지만 냉장고가 작아 조금씩 받아 와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받아와야 썩히지 않고 주어진 것들을 잘 먹을 수 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저 냉장고로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하지만 잘 사용 중이다. 작은 냉장고와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적게 넣고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음식물과 식재료를 쌓지 않고 사는 것이 좋다. 냉장고에서 냄새가 많이 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고, 깔끔하게 사용하고 유지하면서 나름 잘 챙겨 먹어서 좋다. 더 큰 용량의 냉장고가 생긴다 해도 아마 지금의 생활과 비슷하지 않을까? 먹을 만큼만 구비하고 때마다 잘 소비하는 깔끔한 냉장고 사용, 한 번 도전해 보시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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