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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May 27. 2024

선물 받지 않는 생일

 3월 3일. 내 생일이다. 어렸을 적에 생일을 어떻게 보냈던가 생각해 보면 가족들과 조촐하게 보냈던 것 같다. 내 기억이 왜곡된 걸 수도 있지만, 친구들을 초대해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케이크에 촛불 꽂아 후- 부는 그런 생일은 보낸 적이 없다. 그럴 정도의 집안 형편이 아니기도 했고 친구가 많은 편도 아니었기에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생일보다 할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먹는 것으로 생일을 축하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지내서 그런지 생일 선물을 받고 주는 일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친구 몇 명에겐 선물을 했지 싶은데 뚜렷하게 기억나는 부분은 없다. (받은 것도 아마 있을 텐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물건에 욕심도 크게 없어서 있는 것으로 잘 가지고 놀고 사용했고 작은 고모나, 큰고모, 작은 엄마가 명절 때면 늘 가방이나, 문구류, 옷들을 사 오셔서 그것으로 잘 쓰고 입고 다녔다.


 내 취향이 조금 뚜렷해지기 시작한 건 중학생 들어서부터였는데 꼬불꼬불한 곱슬머리가 싫어서 용돈 모아 고데기 사고, 체크무늬 운동화가 갖고 싶어서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운동화 사고, 음악 듣는 게 너무 좋아서 작은 고모가 준 CD플레이어와 CD를 수집하는 것에 열성이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한 번씩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혹은 명절 때마다 고모가 가져다주는 CD를 소중히 모았고 아마 스스로 생일 선물이라며 CD 몇 개를 샀던 기억이 있다. (에이브릴 라빈과 The Used 앨범을 샀던 것 같은데...)


 대학 들어가고, 회사 생활 시작했을 땐 친구들과 회사 동료, 선배들에게 생일 선물을 꼬박꼬박 잘 챙겼던 것 같다. 대학 시절엔 함께 살던 언니에게 사기를 당해서 형편이 어려웠지만 좋은 친구들 덕분에 잘 지냈고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없는 형편에도 고마운 마음에 선물을 챙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취업 후 첫 직장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너무 힘들었는데 그때 불건전하게 사회성이 발달하면서 이름 있는 브랜드의 물품을 직장 선배에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그들도 내게 좋은 선물을 해주었지만 지금의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예전의 내 모습이었다. 20대 때 친구들에게 그리고 선배들과 동료들에게 생일 선물을 하면서도 나는 내 생일 선물을 그들에게서 받는 걸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 그때는 어렸을 때부터 커서 잘하고, 은혜 갚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선물을 받고 컸기에 공짜는 결코 없으며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는 건 분명히 대가가 있고, 갚아야 하는 것이었기에 선물 받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 시절엔 그랬다. 내가 원해서 받는 것도 아닌데 이런 부담을 느껴야 한다니. 심지어 어떤 선물을 해야 센스 있는지도 내게는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게 20대의 나에겐 생일 선물은 부담 그 자체였다.


 30대에 들어서면서 나는 생일 선물을 되도록 받지 않으려 했다. (물론 적극적으로 챙겨주는 이들이 소수였지만) 더 어렸을 때는 부담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30대 들어서면서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내 취향이 아닌 물건은 내 공간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들이고 싶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어쩌다 내 취향과 거리가 상당히 먼, 게다가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받으면 매우 곤란했다. 선물 받은 걸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없을뿐더러, 내가 사용하지도 않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생일 선물을 받으면 기쁜 마음보단 속이 비어있고 껍데기만 남은 과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감사한 마음도 분명 있었지만 뭐랄까,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말 한마디로 충분히 내 생의 의미가 빛나고, 이른 아침 방 한쪽에 촛불 켜고 두 손 모아 내 생일을 읊으며 그 복을 누군가에게 비는 마음, 정성 들여 미역국 끓인 것을 먹여주는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


 


 나는 생일 선물을 굳이 받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다. 집 안에 불필요한 물건은 원치 않아서, 그리고 진심으로 내가 존재함을 좋아해 주고 그 탄생일을 축하해 주는 말이 물건 받는 것보다 더 좋아서. 그게 진짜 생일을 축하받는 거라고 생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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