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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과 환대

20250125 토요일 군산 하제마을 팽팽문화제

by 일곱째별 Jan 30. 2025


2025년 1월 25일 토요일 팽팽문화제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에게 가는 길은 2023년 1월에 도보 순례했던 구간과 일부 겹친다. 그래서 매번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그때의 심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연산부터 시작한 춥고 황량하고 막막했던 그 길 위에서 논산 지나 강경 성지성당을 만났고, 금강 따라 익산 나바위 성지성당으로 가서, 성당포구 지나 웅포 곰개나루 지나 나포 십자들에서 다리 건너 서천 성당에서 산막골 성지까지 걸어갔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아닌데 성당 찾아가는 성지순례가 좋았다. 당시 천주교 신자도 아니었는데 근처에 집을 구하면 그때 막 신부님이 파견되었던 산막골 성지에서 주일 미사를 드리고 싶었다. 그날의 처연한 기억을 비집고 문득 한 생각이 솟아올랐다.      


‘만약 그곳에 사람들이 오지 않아도 팽나무만을 보러 이렇게 매달 갈 수 있을까?’      


나는 평화바람을 2019년 10월 제주 제2공항 반대 청와대 앞 9일 기도 때 처음 만났다. 2022년 3월 봄바람 순례 때 사흘간 함께했고, 2023년 11월 평화바람 20주년이라고 해서 팽팽문화제에 처음 가봤다. 2024년 7월 제주 제2공항 반대 시위로 세종시 국토부 앞에서 만난 완두의 알림으로 22일부터 새만금 해수유통을 위한 생태계 복원 월요 미사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주 갔다. 특별한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뭔가를 시작하면 웬만해서는 끝을 보는 성실함 때문이었다. 반년의 월요미사가 1월 20일에 끝났다. 그즈음 평화바람은 내 일상에서 학생들 말고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이 되었다. 친한 친구도 일 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하는 내 인간관계에서 독보적으로 많은 횟수였다.      


한 시 반쯤 팽나무 앞에 도착했다. 준비 작업을 좀 도우려고 했는데 벌써 플라스틱 의자들이 행과 열을 맞춰 나란히 놓여있었다. 늘 일찍 와서 준비하는 더덕과 현철 그리고 또 다른 이들 덕분이었다. 햇살은 영상 10도 안팎으로 봄날처럼 안온했다. 팽나무에게 가서 인사하고 한 바퀴 돌아보았다. 벌써 낙엽 위 초록 새싹이 눈에 띄었다.      


팽나무 뒤 새싹


부스가 차려졌다.

옷과 책 나눔이 있었고, 팔레스타인 후원 기금 마련으로 <연대와 환대> 책 판매가 있었다. 팔레스타인 후원을 위해 기꺼이 연대의 명목으로 구매했다.      


잠시 후 문정현 신부님과 평화바람이 도착했다. 월간 수라 포스터와 마스킹테이프와 딸기가 한 땀 한 땀 제작한 패브릭 철새 키링도 함께.

나는 완두로부터 오렌지빛 달콤한 환대를 받았고, 어린이 둘은 신부님과 완두의 세뱃돈을 받았다. 완두는 반짝이는 웃음 말고도 늘 뭔가를 베풀어준다. 팽나무에게도 완두는 긴 인사를 했다. 둘은 진짜 친구로 보였다.

      

팽나무와 완두

    

마흔아홉 번째 팽팽문화제의 프로그램은 다만세 노래방과 새해 떡국.

노래방은 문정현 신부님이 시작하셨다.      

“나이가 드니 노래하는 게 쑥스러워요.”     

2019년 가을, 제주 제2공항 반대 9일 기도회 때 청와대 앞 미사에서 우렁차게 “성산에 평화 일출봉아 사랑해” 노래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신부님은 연말연시에 평화바람이 개사한 많고 많은 가사를 틀리지 않고 잘 부르셨다. 오르간 반주도 아코디언 연주도 하셨던 신부님 아니신가. 연세와 더불어 빠르기는 느려질지 몰라도 음정 박자에 흔들림이 없었다.      


문정현 신부님

  

목포의 눈물, 군산 노인회(마음은 청춘)의 내 나이가 어때서, 꿈꾸는 백마강, 예전 운동가, 자유, 하하하송, 가곡, 비밀번호 486, 잃어버린 우산, 아파트, 판소리      



어린 시절에 집에 손님이 오시면 어른들은 늘 내게 노래를 시키셨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선생님이 비는 시간에 앞에 나와 노래를 부르라고 하셨다. 휴대전화기는 상상도 못 하던 그 시절에는 무반주 노래가 제일 만만한 오락이었다. 무대를 지나 팽나무 쪽으로 가보니 조그마한 사람들이 팽나무 어르신 앞에서 반주기를 틀고 재롱잔치를 벌이는 듯했다.      





팽나무 앞 재롱잔치


팽팽문화제에 몇 번 가보니 다달이 고정 멤버와 특별 멤버가 있어 보인다. 이날은 고창과 미국 워싱턴 D. C. 와 남해에서 오신 분들이 있었다. 그 멀리서 일부러 시간 내서 군산 끄트머리 미군 기지 옆 하제마을까지 오다니 보통 연대가 아니었다.      

화력이 약해 쉬이 끓지 못하는 국물이 끓을 때까지 노래는 계속되었다. 한쪽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이, 한구석에서는 딸기와 오이와 다른 두 명이 바람을 막으며 떡국을 끓였다. 운동가보다 가요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는데 놀랍게도 못 부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은 자발적 흥에 포괄적 음악성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모두 봄 여름 가을 겨울 넬켄라인 댄스를 하며 팽나무를 한 바퀴 돌고 문화제가 마무리되었다.      


넬켄라인 댄스


떡국이 다 익었다. 간이 딱 맞는 떡국을 맛있게 먹으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오후 햇살은 기울어 농익고 있었고, 어느 순간 그 빛을 정면으로 받은 맑은 미소를 보았다. 맞은편 카메라를 향해 짓는 사랑스러운 웃음이었다. 팽나무 앞 모인 사람들 사이에 행복이 넘쳐나고 있었다.

혼자 떡국 먹는 내게 일부러 와서 말 걸어 주는 더덕, 마스킹테이프와 포스터를 사는 내게 지난 호를 덤으로 주는 오이, 헤어질 때쯤 떡국 떡을 챙겨주신 완두, 떡국을 끓여주고도 쑥을 다듬는지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또 누군가를 위한 요리를 준비하는 딸기, 늘 푸근한 웃음으로 반겨주시는 길 위의 문정현 신부님. 다정한 평화바람이 있기에 팽팽문화제가 있다.      


팽팽문화제는 2월에도 셋째 일요일 지난 토요일 오후에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평화바람의 환대를 기대하며 연대하러 가야겠다. 미군 기지로부터 우리땅 지키러.

함께 가실 분?     


제49회 팽팽문화제
팽나무와 흰구름
팽나무와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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