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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경 Oct 21. 2023

레슨과 가성비

3. 레슨과 가성비


    레슨과 가성비라는 단어를 서로 붙이고 보니 참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알다시피 악기를 배우는 것은 가성비와 거리가 멀다. 돈을 그만큼 냈다고 해서 그 결과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고 단기간에 그럴싸한 성과도 나지 않으니 가성비가 떨어지긴 한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가성비를 챙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연습이다! 

    

또! 연습이다. 아마 지금까지 쓴 글에서 연습이라는 주제가 많이 나왔는데 또 이야기하는 것 그만큼 연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력이라는 것이 연습량이 충분히 쌓여야 나온다. 많이 공부하는 사람이 시험 점수를 잘 맞는 것처럼 말이다.

레슨과 연습에 지름길은 없지만 그래도 가성비를 챙기려고 한다면 연습이 답이다.


    가성비를 챙긴다는 건 결국 선생님의 등골을 빼먹는 것이다. 선생님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다시 말하자면 한정된 시간에 최대한으로 배운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레슨생이 빼먹을 준비가 되어야 있어야 가능하다. 배운 것들을 잘 소화해 내야 다음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한정된 레슨 시간을 좀 더 잘 쓸 수 있도록 음악적인 것 외에 연습 때 어떤 식으로 준비가 되어야 하는지 몇 가지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연습한 티 내기

    보통 레슨의 과정은 이렇다. 

새로운 곡 배움(레슨)→연습→검사, 피드백, 진도 나가기(레슨)→연습→검사(레슨)… (반복) 이런 식으로 곡을 완성해 나가고 그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연습을 하는 이유는 배운 것들을 소화해 내기 위한 과정이다. 그래서 이것을 이만큼 소화해 냈다고 다음 레슨 시간에 가서 검사 맡는다. 그것을 소화해 내면 다음 단계의 배움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사실 검사를 받을 때 엄청 떨린다. “무슨 이야기를 들을까, 오늘도 못 넘어가겠지, 들어가자마자 이실직고해야겠다.” 등등 선생님의 반응을 예상하며 레슨실에 들어가게 된다. 이 검사 맡는 과정에서 이왕이면 우리는 선생님께 좋은 피드백을 듣고 싶지 않은가? 그러려면 우리가 열심히 연습한 티를 내야 한다. 연습한 티를 낸다는 게 무슨 “착한 척” 하는 것 같이 겉치레하는 느낌이 들겠지만 실제로는 어떤 한 부분이라도 나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곡을 배우고 숙제를 받을 때 선생님이 주신 피드백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연습해 오라고 하든지 박자를 정확하게 해오라든지 여러 가지 수정을 요구하신다. 가령 5가지 피드백을 받았다고 한다면 연습한 티를 낸다는 것은 다음 레슨까지 그중 한 가지라도 확실하게 고쳐가는 것이다. 이 과정 중에서 연습은 몇 번 해야 하는지, 몇 시간 해야 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안되었던 부분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종종 연습을 했는데도 연습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피드백을 듣는다면 그것은 지난번 레슨 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선생님께서 말한 수정해야 할 것들이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뜩이나 바쁜 삶에 시간을 내서 연습했는데 그 시간을 효율적이게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요청하시는 것들을 다 수정해 가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때에는 한 가지만이라도 확실하게 고쳐가야 선생님께 연습한 티를 낼 수가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부분 연습이다. 앞에 Part 1에서 완곡(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는 것)을 강조해서 이야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분 연습이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다. 부분 연습이 있어야 완곡이 가능하다. 이 부분 연습을 통해서 세세한 부분들을 파악하고 피드백을 받은 것을 수정해 나가는 방향으로 연습해야 한다. 부분 연습이라고 해서 이것 또한 아무런 목표 없이 횟수만 채운다면 부분 연습의 의미가 조금 없어진다. (필자가 고등학생일 때는 피처폰이어서 그때는 한 손은 연습하고 한 손은 문자 보내는게 가능했었는데 이것처럼 이런 연습이 되면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연습할 때 5가지 피드백 중에 한 가지만 연습해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다른 것들도 당연히 연습해야 한다. 의외로 피드백받은 것에서 몇 가지는 몇 번의 연습으로 쉽게 나아질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로 너무너무 바빠서 연습을 조금밖에 못할 때에는 5가지 피드백받은 것도 당연히 연습해 보고 그중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것을 추천한다. 한 가지라도 나아지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가장 좋은 건 피드백이 다 수정되는 것이다.) 만약 5가지 중에서 모두 다 되어있지 않으면 지난번 레슨의 되풀이, 또는 연습하는 식으로 레슨이 진행될 수 있기에 그러면 레슨 시간의 효율이 떨어지지 않나 싶다.     


2. 피드백을 목록으로 만들기

    한 가지라도 나아지게 한다고 하면 선생님께서 주신 피드백을 잘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현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뭐가 안 돼서 이것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원인을 파악해 봐야 한다. 그래서 혹시 어린아이들이 학원에서 쓰는 진도 카드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어릴 적 학원을 다녔던 레슨생들은 써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진도 카드이다. 진도 카드에는 연습할 곡명과 몇 번 연습해야 할지 적혀 있다. 또는 오른손만 연습하는지, 왼손만 연습하는지, 천천히 연습해야 하는지 적혀있다. 이것처럼 레슨 받고 난 후에 바로 집에 가지 말고 피드백들을 목록으로 적어보는 것과 그 자리에서 몇 번 연습해 보길 추천한다. 그래야 다음 레슨 전까지 일주일 동안 내가 무엇을 수정해야 하는지 또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연습해야 하는지가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피드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서 일주일 내내 어영부영 아무런 목표 없이 몇 번 치기가 된다면 레슨을 받은 것들이 조금 아까워질 수 있다. 레슨 때 어떤 것들을 고쳐야 하는지 피드백이 정리가 잘 안 된다면 레슨 끝날 즈음에 선생님께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면 다음 레슨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실 것이다.     


3. 녹음해서 들어보기

    이것 또한 앞장에서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연주할 때의 느낌과 막상 녹음해서 들었을 때의 느낌은 다르다. 자신이 연주를 하면서 자신의 연주를 잘 듣는 것은 많은 시간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녹음, 녹화해서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래서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처럼 들리는지 확인해 보라. 그러면 자신이 무엇을 좀 더 연습해야 하는지 셀프 피드백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녹음을 하면 좋은 점은 우리가 레슨 때에 선생님 앞에서 연주할 때의 긴장을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녹음해서 남에게 들려줄 것도 아니고 내가 들을 것을 알지만 막상 녹음, 녹화 버튼을 누르고 연주를 시작하면 엄청 떨린다. 혼자서 긴장된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을 연습해 적응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연습 방법은 대회에 나갈 때 많이 사용되는 연습 방법이기도 하다.     


4. 모르는 것이 있으면 꼭 물어보기.

    선생님의 역할은 피아노를 알려주는 역할이다. 레슨을 받았는데 이해가 안되는 것이 있다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꼭 물어보라. 알고 있는데 연주가 안되는 거랑 그냥 몰라서 연주가 안되는 거는 정말 많이 다르다. 알고 있는데 연주가 안되는 것은 어떤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습할 때 스스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알고 연습할 수 있지만 몰라서 연주가 안되는 거면 연습할 때도 방황만 하고 횟수만 채우는 연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러한 연습도 도움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양을 많이 채우는 연습도 당연히 중요하다. 지금은 가성비를 채우는 연습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러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건지 알고 있어야 한다.     


5. 예습다음에 배울 거 2번만 쳐보기.

    사실 예습에 대해서는 선생님마다 또는 지금 레슨생의 현 상황마다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종종 예습을 싫어하시는 선생님들도 계시는데 그 이유는 미리 연주하다가 잘못된 연주가 계속 굳어지면 고치는 게 굉장히 힘들고 또 하나는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다음 것을 보려고 한다는 것은 눈앞에 있는 것을 회피하려거나 아니면 집중할 것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습의 좋은 점은 선생님의 도움 없이 배운 것들을 잘 이해해서 스스로 연주할 수 있는지를 레슨생이 연습해 볼 수 있고 또 레슨 때 진도를 나가게 되면 악보를 딱 펴고 초견으로 바로 연주해야 하는데 그 부담을 조금을 줄일 수가 있다. (초견: 처음 본 악보를 연주하는 것.) 그리고 곡을 파악해 본다는 것이다. 처음 악보를 연주한다는 건 어쨌든 악보를 읽어야 하기 때문에 레슨 시간을 악보를 읽는 것에 시간을 다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레슨생이 악보 보는 것이 어느 정도 된다면 그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게 되어 레슨 시간 내에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많은 것을 배우는 게 부담스럽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 예습을 할 때 중요한 것이 있는데 많이 연습해 보는 것이 아니라 딱 2번만 연주해 보는 것이다. 예습에 많은 시간을 필요도 없고 또 예습한 곡을 완성할 정도로 칠 필요도 없다. 곡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림으로 따진다면 그냥 구조만 잡아보는 러프 스케치일 뿐이다. 중요한 건 지금 당장 배우는 곡이지 다음 곡이 아니기에 연습하다가 지금 배우는 곡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면 예습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6. 최소한의 연습하기.

    연습은 매일 정해진 시간만큼 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연습을 정말 할 시간이 없어서 또는 자신의 게으름에 못 이겨서, 또는 기억이 안 나서 안 하는 경우에 필자가 쓰는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에는 자투리 시간에 악보를 펴고 허공에다가 피아노를 치는 것이다. (피아노를 칠 수 없는 늦은 시간에 활용한 적이 많다.) 이 부분은 이렇게 치는 것이었지. 여기서 손가락 번호가 이렇게 바뀌지- 등등 생각하며 허공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출, 퇴근길에 악보를 핸드폰에 저장해두고 보면서 연습하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뇌>라는 책에서 머릿속으로 피아노 치는 것을 생각하면 뇌가 피아노를 진짜 치는 걸로 착각한다는 내용이 있다.

(필자는 이 책을 보기 이전에 이런 연습을 한 적이 있었고 실제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 이게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게 신기했었다. 이 책은 꽤 최근에 읽었다.) 물론 진짜 연주하는 게 가장 베스트이겠지만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추천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자신의 게으름에 못 이겨서, 또는 기억이 안 나서 안 하는 경우에 필자가 썼던 방법은 피아노 뚜껑 열어두고 보면대 위에 악보를 펼쳐두고 진도 카드도 펼쳐두는 것이다. 해야 하는 것을 머릿속으로 알지만 그 일이 귀찮을 때는 그 행동을 하기 위해 가는 거리를 짧아지게 것이다. 원래대로 라면 닫혀있던 피아노 뚜껑 열고, 악보를 책장에서 꺼내서 피고, 진도 카드 꺼내는 과정이 있겠지만 이 과정을 생략해 버리는 것이다. 이 방법은 피아노가 좀 지저분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피아노에 일단 앉기만 하면 연습 세팅이 되어있으니 연습할 가능성이 늘어날 수도 있다. 또한 집에 와서 피아노 건반과 악보를 보면 숙제가 떠오르고 연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연습을 시작할 때 그 한음 누르기까지가 힘든 거지 막상 그 한음을 시작하고 나면 연습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런 식이 아니더라도 레슨생 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연습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서 연습하게끔 해서 최소한의 연습이라도 할 것을 추천한다.    

 


    레슨에서 가성비를 챙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레슨에서 가성비를 챙긴다는 게 거리가 아주 먼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챙길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다. 가성비를 챙긴다고 해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갑자기 급격한 실력 향상이 되는 건 절대 아니다. 필자가 제시한 방법이 마치 지름길, 빠른 길로 가라는 듯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저렇게 한다고 해서 더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제시한 방법들도 또한 오랜 시간이 쌓여야 실력 향상이 될 수 있다. 이 방법들은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는 이들에게 한정된 시간에 배운 것을 효과적으로 소화해 내고 질 좋은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제시한 연습 방법들이다. 물론 레슨 시간을 최대한으로 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가성비를 챙기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속도대로 연습하고 나아가는 게 더 편하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다. 그저 먼저 피아노를 배운 사람의 경험에 의한 이야기일 뿐이니 어떤 선택을 하든 지금의 연주 실력보다 미래의 연주 실력을 더 나아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레슨에서 가장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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