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리
레슨을 받으면서 종종 선생님의 가르침에 의아한 적이 있을 것이다. 딱히 틀리지도 않았는데 왜 다시 하라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속으로만 생각했지 선생님께는 질문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레슨생이 바라보는 것과 선생님이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음악은 소리이다. 듣는 매체이다. 그래서 레슨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소리”이다. 그래서 앞에서 틀리면 수정이 불가하다는 점, 그래서 한음을 칠 때 다음에 올 음을 상상하면서 연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 악보를 보고 읽는 것을 중점으로 배운다. 그래서 때때로 피아노는 그저 보이는 것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걸로 오해를 하기도 해서 악보 보는 법, 기초 이론을 다 안다고 해서 연주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연주는 가능할 수 있지만 잘 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음악은 듣는 매체이기에 진짜 아는 것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연주로 나와야(소리로 표현이 되어야) 한다.
레슨에서의 1순위는 좋은 음악, 좋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게 좋은 음색(tone)을 만들어내라는 뜻이 아니다.(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쉽게 이야기해서 지금 배우는 이 곡을 음악처럼 흘러가게 연주하는 것, 매끄럽게 연주하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뜻이다. 우리가 배우는 별 것 아닌 이 유치하게 지켜야 하는 기초적인 것들 모두 다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래서 레슨은 “소리” 중심으로 돌아간다. 악보를 꼼꼼하게 읽는 것, 손가락의 독립, 손목의 긴장 풀기, 자세, 타건 위치, 팔의 무게, 무게 이동, 손가락 번호, 메트로놈 연습, 리듬 연습 등등을 하는 이유는 소리가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우는 테크닉들이 몸을 잘 사용하기 위함도 있지만 소리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다.
사실 연주하고 있을 때 자신의 소리를 객관적으로 듣기 어렵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면 내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피아노 연주도 막상 녹음해서 들어보면 자신이 쳤을 때의 느낌과는 다르게 들린다. 어떤 구간에서 여기를 이런 느낌으로 이렇게 쳤는데 막상 녹음해서 들어보면 그렇게 내가 생각한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독학을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자신의 소리를 객관적으로 듣기 어렵기에 옆에 채점자가 없는 이상 자신이 한 연주가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초보일 때는 기초적이고 쉬운 내용뿐이라 독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기초일 때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시간이 더 지나면서 작은 눈덩이가 커져서 더 고치기 힘든 면도 있다.
다시 돌아와서 실제 레슨에서 레슨의 목표가 좋은 소리, 좋은 음악(다시 말해 좋은 연주)을 만들어 냄에 있어서 선생님과 레슨생의 관점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레슨을 하면서 많이 경험했는데 그중 기억나는 것을 하나 이야기해 보자면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대회에 보내려고 할 때였다.
필자: 여기 한 번만 다시 해보자.
아이: (연주를 한다.)
필자: 음... 3번만 더 반복해서 쳐보자
아이: 네... (연주)
필자: 음… 음이 익숙하지 않네. 여기 두 마디만 5번 쳐보자
아이: (표정이 좋지 않음. 한숨을 쉬며 연주한다)
필자: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발견하고) 여기가 매끄럽지 않네. 여기 부분을 좀 연습해야 할 것 같아 익숙해질 때까지 부분 연습 숙제 내줄게. 넘어가자.
필자는 왜 아이에게 계속 다시 해보라는 말로 반복연습을 시켰을까? 특정 부분이 연주가 익숙하지 않게 들렸기 때문이다. 손가락 번호나 음도 빠짐없이 다 맞지만 손에 익숙하지 않은 연주로 들렸다. 10번을 연주하면 적어도 7번은 같아야 되는데 그러지 않았다. 음을 손가락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연습을 많이 해야 해결할 수 있기에 반복연습을 시켰다. 익숙하다는 것은 마치 우리가 집을 갈 때 지도앱을 켜서 가지않는다. 그 길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지도앱에서는 나오지 않는 지름길도 안다. 어떻게 가야 더 시간을 단축해서 집에 갈 수 있는지도 안다. 너무 많이 가본 길이기 때문이다. 반면 처음 가보는 곳 또는 많이 가보지 않았던 곳에 가려면 지도앱을 켜서 찾아가야 한다. 익숙하지 않아서 길에서 몇 번이고 확인하면서 가야 한다. 그래야 가려던 곳에 잘 찾아갈 수 있다. 그것처럼 어떤 곡을 익숙하게 만든 다는 것은 반복연습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숙제 검사할 때 숙제를 진짜 했는지 안 했는지도 알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복연습한 곡은 매끄럽다.)
여하튼 필자는 소리가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여러 번 연주하라고 했지만 아이의 관점은 다르다. 아이가 왜 한숨을 쉬었을까? 예시를 초등학생과의 이야기로 들었지만 성인 레슨생들도 다르지 않다. 필자가 몇 년 전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을 때 그러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꾸 연주하라고 하는 것에 화가 놨다. 아무리 계속 연주해도 별반 다르지 않는데 자꾸 해보라는 선생님의 지시가 짜증이 났던 것이다. 아이는 소리를 완성하는 것보다 치는 행동에 더 초점을 두었다. 그래서 필자에게 “몇 번이나 더 해야 돼요?"라는 질문을 했었는데 아마도 그 말 안에 뜻 안에 ‘잘 되지도 않고 내가 보기엔 별로 상관도 없는데 왜 자꾸 하라는 거예요?‘ -라는 말을 숨기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여하튼 필자는 아이의 기분이 상해질까 봐 더 반복연습하는 걸 그만두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배우는 사람에 입장에서는 어쩔 수없이 연주하는 행동에 더 초점을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왜냐면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여야 악보대로 연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소리를 놓칠 수 있다. 그래서 앞에서 소리를 객관적으로 듣기 어렵다는 말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슨생은 이 정도 됐다고, 이 정도면 손가락이 잘 굴러간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 제삼자가 들었을 때는 매끄럽지 않은 연주이거나 실제로 녹음해서 들어보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치는 행동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다. 관점에 차이이다. 치는 행동에 더 초점을 맞춰진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연습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연습을 전혀 안 했는데 반복연습을 한 것에 대해서 투덜대면 그건 피아노가 싫거나 양심이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연습과 고민을 계속했지만 그럼에도 반복연습을 해야 하면 충분히 짜증이 나리라 생각한다. 헬스로 비유하자면 운동하는데 힘이 계속 부치는데도 헬스 트레이너가 더 훈련을 시킨다면 아무리 멋있는 몸을 위해서라도 짜증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서도 생각해야 할 것은 치는 행동에 힘이 들지만 곡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우선순위는 소리, 음악, 다시 말해 예술이라는 최종 목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기초이론문제도 풀고 연습도 매일 하고 테크닉도 배우고 안 되는 부분을 계속 연습하는 이유가 이 우선순위에 있다.
이것이 우선순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지나온 레슨 시간 중 선생님께서 여태껏 가르치신 것 중에 이해가 안 되었던 것들도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