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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경 Mar 30. 2023

선생님은 마법사가 아니라는 점

2. 취미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기는 오해 (3)

2. 취미라는 울타리에서 생기는 오해


세 번째선생님은 마법사가 아니라는 점.


     레슨을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어떤 내용들을 배울까. 지금은 불가능한 곡도 언젠가는 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감, 소망과 설렘을 가지고 시작한다. 첫 레슨 전날에는 마치 놀이공원 가는 초등학생처럼 이상하게 잠이 안 오기도 한다. 이런 좋은 설렘과 기대감이 계속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지나며 이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피아노 레슨을 받으면 모든 것이 무조건 쉽게 되어야 하는데 되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 선생님의 티칭을 의심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선생님은 마법사가 아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레슨생의 손가락은 선생님이 움직이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레슨생 스스로가 움직이는 것이고 레슨을 받는다는 것은 무조건 저절로 되는게 아니라 되는 과정의 길로 안내해 주는 것뿐이다.     


     선생님을 마법사라고 생각하는 모습들은 초반보다는 피아노에 조금 배운 후에 많이 나타나는데 주로 자신의 한계치에 있는 곡을 배울 때 많이 나타난다. 레슨생이 선생님을 지나치게 의지하기 시작하는데 물론 선생님을 신뢰함으로 따라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의지하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주길 바라는 아기처럼 갑자기 스스로 잘 보던 악보도, 테크닉도 다 놓아 버리고 다 선생님이 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연주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해주는 것이 ‘레슨’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이상적인 레슨에서 멀어지는 꼴이다.     


    이렇게 의지하게 되는 일들이 레슨에서 빈번하게 계속 발생하게 되면 선생님이 계실 때는 연주가 가능하나 혼자 있으면 연주가 이상하게도 불가능하다. 학원에서 배우는 교재는 그래도 꼬박꼬박 치는데 이상하게 다른 악보를 가져오면 못 치는 어린 레슨생들도 있다. 레슨 할 때는 잘했는데 레슨 뒤에는 갑자기 못하거나 학원에서는 잘 되었는데 집에 오니까 갑자기 안된다거나 하는 이런 일들이 생겨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변에서 종종 들었다. 내가 자주 가는 미용실의 원장님 아이가 피아노를 3년이나 배웠고 집에 피아노가 있는데도 악보를 주면 아무것도 치지 못한다고 항상 얘기하신다. 또는 어릴 때 피아노를 체르니 40번까지 배웠지만 지금은 하나도 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면서 피아노 배워봤자 쓸모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물론 이건 그동안에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아서 이지만) 그렇지만 내 친구 중 한 명은 어릴 적 피아노를 3-4년 정도만 배웠지만 지금도 간단한 악보를 보고 연주할 수 있는 친구도 있다.     


이 이야기에서 차이는 레슨생이 배운 것을 스스로가 적용하고 써먹을 수 있냐는 것이다.     


     모든 피아노 선생님들의 중요한 목표로 삼는 것 중 하나는 스스로 연주하는 레슨생이 되길 바란다. 배웠던 내용들이 차곡히 쌓아서 어떤 곡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레슨생, 스스로 악보를 읽고 소리를 낼 수 있는 레슨생, 연주방법을 아는 레슨생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피아노를 그만 배우게 되어도, 선생님이 없어도, 피아노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 피아노라는 악기를 마음껏 즐거워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레슨을 한다. 말이 거창해 보여도 현실적으로 이야기해 본다면 간단하다. 어제 배운 4분음표를 다음날 되어서도 다음 곡에서 4분음표를 한 박으로 잘 연주하는가, 오늘 배운 낮은 G의 자리를 다른 악보에서도 발견했을 때 자리를 잘 찾고 연주할 수 있는가. 뒤로 갈수록 악보가 복잡해져도 배운 내용들을 그 악보에 써먹을 수 있는 취미생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선생님은 레슨 할 때 바로 답을 얘기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 배우는 개념에 대해서는 당연히 답을 바로 얘기해 주시지만 전에 배웠던 내용 중 레슨생 스스로가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힌트를 주며 스스로 찾게끔 한다. 곡의 맨 처음 자리를 찾을 때도 바로 자리를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찾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찾는 순서를 설명한다. 다시 말해 원리를 설명한다. 선생님마다 각각 접근하는 방식을 다르겠지만 핵심은 원리를 알려주기 위해 가이드를 제시한다. 음을 찾을 때 항상 “도 (또는 기준선)부터 찾아보세요.”라고 하는 이유도 보표에서의 규칙(줄-칸-줄-칸)을 잘 이해하고 스스로 음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러한 기초적인 원리, 규칙을 알면 뒤로 갈수록 더 이상 기초적인 것들은 많이 언급하지 않는다. 다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굳이 더 이야기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음악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것들을 배우게 된다. 이 기초적인 원리들을 계속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더 이상 선생님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아서 스스로 알정도로 익숙해지는 연습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선생님의 역할은 음악이라는 큰 바다를 이미 경험한 경험자가 레슨생의 눈높이에 맞게 소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가이드”이다. 어떤 곡을 익히는 데 있어서 어떻게 연습해야 하는지, 곡을 어떻게 완성에 가깝게 할 수 있는지 또 틀린 부분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연습의 방향 등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선생님이다. 근데 선생님은 가이드일 뿐이지 마법을 부려서 저절로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마법사가 아니다. 그렇지만 레슨생이 때때로 마법 같은 일을 바라곤 한다.     

 “선생님 말대로 했는데 왜 이렇게 연주가 안되지? 이렇게 배우는 게 맞아?”     


    필자에게 피아노를 배웠던 초등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에게 어려운 부분에서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알려줬었다. 그러더니 딱 한번 해보더니 “안되잖아요.!!!”라며 필자에게 크게 화를 냈던 학생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한번 해서 어떻게 되겠어~ 여러 번 해야 되지. 그래서 숙제 내주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사실 필자는 이 학생과 같이 이러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필자가 바이올린을 레슨 받으면서 (그것도 얼마 전에)그 학생과 똑같은 모습이 있었다. 물론 필자는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연습했다. 그렇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 아무리 연습해도 안되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며 속으로 짜증을 냈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때 희한하게도 내 안에서 세세하게 하나하나 다-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은 이상한 마음이 생겨났다. 심지어 필자는 악보도 다 볼 수 있고, 지판자리도 어딘지도 알고, 음악의 흐름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놓아버리고 선생님께 더 쉽게 알려달라고 하는 필자의 모습이 있었다. 그때 그 레슨생의 마음을 조금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때 중요한 건 철저히 레슨생의 몫이라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이 나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건 다 알려주셨고 나는 이걸 배워야 내가 원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으며 나의 몫인 기나긴 연습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 한계를 부딪힌 와중에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레슨을 받으면 “저절로, 무조건, 잘 되어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선생님께 지나치게 의지하는 이유도 어려운 그 구간이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레슨은 실력향상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실력은 레슨생이 선생님의 가이드를 듣고 스스로 연습하여 나오는 결과물이 실력인데 이것을 레슨 받기만 하면 저절로 되어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 실력 향상은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이것은 레슨생 본인의 실력이기에 스스로 손가락을 움직여서 얻는 큰 기쁨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어려움 가운데 선생님을 지나치게 의지하고 되고 “저절로, 무조건, 잘” 되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선생님의 티칭을 판단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나름 해결하려고 (아니 해결이라기보다는 회피에 가깝다.) 곡을 다음 곡으로 넘어가자고 하거나 선생님을 바꾸기도 한다. 이 두 가지로 해결되면 좋겠지만 근본적인 부분은 해결되지 않는다. 곡은 넘어간다고 해서 지금 어려워하는 테크닉을 안 만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교재의 뒤로 넘어 갈수록 더 어렵게 변형되어 나오기도 한다. 선생님을 바꾸면 해결될 줄 알겠지만 사실 기초는 물러설 곳이 없기에 접근하는 방식만 다르지 내용은 별반 차이가 없다. 해결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이 답답하기만 한 이 상황을 계속 지속해야 하는가? 정답은 맞다. 버티는 거다. 잘 안되더라도 몇 번 더 시도해 보는 것이다. 물론 연습 중에 안 되는 부분을 계속 연습해야 하는 사실은 마음을 굉장히 불편하게 한다. 매일 연습할 때마다 되지 않아 좌절인 채로 취미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오히려 피아노의 대한 정이 떨어져서 포기할 수도 있다. 피아노를 쳐다보기도 싫을 수 있다. 그렇지만 원래 피아노는 이랬다. 원래 피아노 연습은 이랬다. 취미이든 전공이든 피아노를 잘 연주하려면 이러한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이게 배우는 사람이 당신이라서 또는 선생님이 잘 못 가르쳐서가 아니라 연습은 원래 이랬다. 그러나 기쁜 것은 지금 당장 해결 되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앞에 이야기했듯이 피아노는 단기간에 뭔가가 완성되지 않는다. 이 사실이 우리를 얼마나 편하게 하는가. 그리고 각자가 부딪히는 어려움이 각기 다르겠지만 사실 선생님도 레슨생이 100% 잘 해낼 거라고 생가하지는 않으신다. 레슨생 각자의 마음가짐이 다 다르고 각자가 가진 성향, 장점, 피지컬 다 다르기에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준으로 100% 해내야 한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신다. 그저 지금 있는 실력에서 조금이라도 향상된 모습. 100%는 아니어도 70%만이어도 완성된다면 넘어가기도 한다. 노력했다는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연습하는 어려운 곡이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은 채로 넘어간다고 해서 도망치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테크닉들 중에서는 많은 시간이 있어야만 해결되는 테크닉들도 있다.) 다음에 또 이와 비슷한 곡을 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전보다 수월하게 연주하는 성장한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를 레슨 했는데 그 아이가 왼손이 자리를 옮겼다 하면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하며 잘 되던 오른손도 길을 잃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매번 자리를 확인하는 연습을 몇 번이고 반복했었다. 그럼에도 매끄럽게 연주되지는 않은 채로 곡을 넘어가곤 했었는데 오늘 새로운 곡 레슨을 하다가 어느 순간 왼손의 자리를 매끄럽게 찾아가는 아이를 보자니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기뻤다. 그렇지만 진짜 이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바로 필자의 레슨생이다. 항상 떠듬떠듬하게 연주했던 것이 어느 순간 매끄럽게 변했으니 연주하는 순간에 얼마나 기쁘겠는가!     


     결론을 정리하자면 레슨을 한번 받는다고 해서 판타스틱하고, 드라마틱한 변화는 절대 없다. 어려운 곡을 갑자기 저절로 연주하는 마법 따위 없다. 레슨을 통해서 해결책을 찾을 순 있지만 그것을 자신의 연주에 적용해서 칠 것인가 안 칠 것인가는 레슨생의 몫이다. 어릴 적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만화를 본 적이 있다. 그 만화 속에서 주인공이 이러한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다. “연금술의 기초는 ‘등가교환’. 뭔가를 얻으려면 그것과 동등한 대가가 필요한 뜻이지.” 이 말은 우리 인생에 곳곳에서도 적용할 수도 있듯이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피아노도 스스로 즐길 만한 실력을 얻으려면 그만큼 연습이라는 대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연습을 하다 보면 매일매일 변화가 없어 제자리걸음만 하는 거 아닌지 아니면 전보다 더 못해진 거 아닌지 그런 생각 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절대 그렇지 않음을 스스로 상기시켜야 한다. 꾸준한 연습은 당신을 분명 성장하게 한다. 한층 성장한 당신의 실력을 스스로 기뻐하고 누린다면 당신이 원하는 “취미 피아노” 모습에 알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취미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오해에 대해서 적어보았다. 이것은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으로 적은 글이어서 이것보다 더 많은 오해들, 또는 오해가 아닌 것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그 과정은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는다. 대게 취미이기에 ‘깊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부터 시작해 온 오해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바꿔 말하면 어려우면, 조금만이라도 압박이 있으면 그냥 안 하겠다는 말과 비슷한 뉘앙스로 말하는 레슨생들을 많이 만나봤다. ‘전공하지 않을 건데요.’ 라며 지금의 어려움을 회피하고 쉬운 것만 하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그런 모습들을 보며 많은 답답함을 느꼈다. 취미생과 전공생의 초, 중급단계에서 배우는 내용은 사실 별 차이가 없다. 이 단계에서 뭐 전공이지 취미인지 나눌만한 부분이 거의 없다. 피아노의 기본을 알고 여러 곡을 연주해 보면서 피아노라는 악기를 알아 가고 손가락을 훈련하는 단계이다. 그러다가 점점 흥미와 재능이 있다면 심화 과정(전공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가는 것이다. 레슨에서 어려운 것 다 빼고 설렁설렁하게 배우는 게 취미생이 아니라 어디까지 배우느냐가 취미생인 것이다. 취미생이라고 해서 도가 레가 되는 것도 아니고, 스타카토가 레가토가 되는 것도 아니고, 4분음표가 네 박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초, 중급단계에서는 “취미니까, 전공할 거 아니니까”이러한 이유를 들 필요가 없다.     


    이렇게 무겁게 이야기해도 그럼에도 역시 ‘취미’로 배우는 레슨생들에겐 피아노는 ‘취미’이다. 그래서 우리는 취향 것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배우는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음악이 좋다면 계속 레슨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배우는 과정이 당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레슨을 계속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피아노를 계속하는가? 안 하는가? 에 대해서 너무 무겁게 생각할 필요 없다. 당신의 취향 것 선택하면 된다. 취향이 맞지 않아 피아노가 누군가에겐 별로여도 누군가에겐 취향이 맞아 평생의 좋은 친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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