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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석 Jul 12. 2024

원베일리를 향한 여정의 시작

목표는 예전 살던 곳에서 사는 것

어느새 우리 집은 반포의 대형 아파트에서 강동의 작은 빌라로 밀려나 있었다.


소득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월 500만 원 이상의 이자가 부담스러웠다. 나도 속이 타들어 갔는데, 우울증을 겪고 계신 어머니는 아마 숨이 턱턱 막히셨을 것 같다. 아파트를 급매로 정리하고 대출을 모두 갚은 뒤 강동의 작은 빌라를 하나 구했다.


투자는 시간과의 싸움인 거 같다. 반드시 현금흐름이 뒷받침할 수 있는 정도로만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이때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리한 대출을 받으면 버티고 싶을 때 버티지 못한다. 당시 우리 집이 매도한 가격이 리먼브라더스 위기 이후의 최저점이었다.


나는 과연 최악의 상황에서 다시 예전 사는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은 조금 분위기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당시 컨설팅은 살인적인 야근이 일상이었다. 아침 8시 30분 정도에 출근해서 항상 새벽에 퇴근했다. 처음에는 업무시간에 너무 졸려서 일하기 힘들었는데, 그것도 적응되니 그냥 '아 졸리는구나'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끔 못 참을 정도가 되면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으며 잠시 자고 다시 돌아와서 일했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돈을 쓸 시간이 없었다. 당시 초봉이 3800만 원이었는데, 나는 회사 내에서도 구두쇠로 소문이 날 만큼 돈을 쓰지 않았다. 한 달 생활비를 30만 원 이내로 지출했는데, 밥값과 경비 지원이 되기 때문에 회사 옆 고시원 비용을 제외한 월급의 70% 정도는 저축에 사용되었다. 사실 돈 쓰는 방법을 잘 몰랐던 거 같다.


그렇게 2년이 지난 뒤 정신을 차려보니 통장에 어느 정도 잔고가 쌓여있었다. 작아 보이는 이 시드는 이후 큰 기회로 가는 통로를 만들어주게 된다.


처음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마곡지구의 오피스텔 분양이었다. 양천향교역에 내려서 컨테이너박스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분양담당자들의 말에 홀려 오피스텔 2개를 계약했다. 하지만 막상 계약금을 내고 나니 잘 산 게 맞는지 엄청난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때부터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나는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부동산 사장님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강의도 들으며 홀린 듯이 투자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언젠가부터 내 별명은 파선생이었다.


아파트를 편의점에서 '파'스퇴르 우유 사 듯 산다고 해서 직장 동료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공덕5차래미안, 염리3구역(마포프레스티지 자이), 광명 철산주공 13단지를 차례로 계약했다. 집을 안 보고 계약한 곳도 있었다. 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아 매도할 수밖에 없었지만, 내가 매수한 직후부터 마포와 광명은 전국에서 가장 많이 오른 지역으로 손꼽히는 지역이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자산도 늘어만 갔지만 그래도 초조했다.


'이 속도가 충분할까?'


충분하지 못했다. 이 속도로는 최종 목표인 예전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더욱이 신반포 3차는 재건축이 점점 가시화되면서 호가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난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투자한 상태였지만 더 할 수 있는 투자가 없을지 고민해 보았다.


하나가 남아있었다.


내 커리어였다. 가장 크게 레버리지 할 수 있는 나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스타트업의 전성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난 초등학교 동창의 추천으로 4번의 면접 끝에 여의도의 한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직한 곳은 여러 스타트업이 모여있는 연합체 같은 곳이었다.


아는 사람을 공감할 것이다. 전략기획팀은 단어가 뭔가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곳은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는 포지션'이다. 엑스배너 제작부터 행사 장소 예약, 행사 장소 청소까지 다 앞장서서 해야 하는 팀이 전략기획팀이다.


회계법인에서 컨설팅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낯선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실무를 하는 매니저는 나밖에 없었고 그 외에는 인턴 한 명과 신입사원 한 명이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적극적으로 일을 주지 않았다. 그곳은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을 찾아야 하는 곳이었다.


특히 개발팀과의 협업은 항상 어려웠다. 기획자들은 모두 한번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아.. 내가 그냥 지금부터 개발을 배우고 말지...'


이직을 한 후에는 초기에 나를 증명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스타트업에서는 런웨이라는 것이 있다. 현재 보유한 현금으로 운영을 지속할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스타트업은 안정적인 현금 창출 능력이 부족한 만큼 퍼포먼스에 대한 압박이 심할 수밖에 없다. 


나의 밥값을 증명해야 하는 곳. 스타트업은 그런 정글이었다. 


한편 투자 영역에서는 생각지도 못 한 새로운 기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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