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9일
육아휴직의 일상을 보내던 평화로운 어느 날이었다.
나는 휴직 4개월 차에 들어서고 있었고, 어머니와 같이 32개월 된 사랑스러운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휴직을 하며 짧은 동영상을 만들어 SNS에 올리고 있어서 다음 영상은 어떤 내용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최근엔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 올렸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해줘서 한껏 재미를 붙이고 있던 상태였던 것 같다.
오후 3시 즈음이었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경찰서라고 하며 아버지의 보호자가 맞냐고 물으며 아버지의 사진을 확인해 달라고 하더란다. 어머니는 불안해하셨지만 난 속으로 생각했다.
‘어떤 놈이 또 사기를 치려고 하는구나’
그런데 3초 정도 생각하니 이상했다.
'아버지의 사진으로 본인을 확인하는 거로는 아무런 사기를 칠 수 없지 않나?'
난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사진을 확인하는 거로 가능한 사기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10년 정도의 기간 동안 회계법인에서 컨설팅을 했고 스타트업에서 기획일을 했던 나는, 누군가 기상천외한 방법을 발견해서 실행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 어. 어떻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어머니는 핸드폰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화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무엇인가 평소와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난 아이랑 놀아주던 것을 멈추고 어머니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CCTV에 찍힌 듯한 사진에는 엘리베이터에 타는 아버지가 있었다.
‘아..’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난 어떤 일이 일어나 버렸는지 알아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모든 일보다 가장 낯설고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먼저 어머니를 돌봐야 했다. 더 이상 어머니는 경찰이라고 본인을 밝힌 사람과 통화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난 어머니에 핸드폰을 달라고 하고 문자가 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빨리 와서 아버지를 확인해 달라고 했고 난 알겠다 했다. 전화를 끊고 바닥에 앉아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잡았다. 내가 상황을 전하니 어머니는 우시며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아이는 옆으로 다가와 “왜 그래요” “일어나”를 계속 말하다 계속 우는 어머니를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결국 같이 울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아이가 아무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코를 닦다니 감정이 전이된 것일까.
회사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어서 집으로 오라고 했다. 어머니와 아이만 집에 남기고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으나 계속된 경찰의 전화에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에게 마음을 다잡고 아이를 돌보고 있으라 했다. 난 어머니가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아이를 달래는 모습을 확인하며 혼자 외투를 입고 걸어서 10분 거리의 부모님의 집으로 향했다.
유난히 하늘이 하얗기만 한 날이었다.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것 마냥
바닥에서 하늘로 눈이 올라가
하늘에 쌓인 것 같다.
비현실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조금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짧은 거리를 이동하며 이리저리 연락하며 미리 잡혀있던 일정들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몇 주 뒤로 잡혀있던 바디프로필 스튜디오도 있었다. 속으로 ‘이런 거까지 챙기다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친척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들도 도움을 주려면 몇 시간의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부모님 집에 도착하니 현장엔 경찰 2명이 있었다. 경찰들은 이것저것 물었지만 난 막힌 목소리로 예. 아니오. 혹은 짧은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도 이해하는 듯했다. 난 서있기가 힘들어 오른손으로 어딘가를 잡고 앉았다. 머리가 멍하긴 했지만 내가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찰은 아버지를 직접 확인할지를 물었지만 난 안 좋은 기억이 남을 것이라 판단하고 "아니요"라고 했기 때문이다.
정황을 보니 마지막 순간은 고통 없이 가셨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는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경찰 중 한 명은 퇴근시간이 늦어져 불만인 눈치였다. 평소 같았으면 붙잡고 제정신이냐며 따졌겠지만 그때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곧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할 사람이 왔고 아버지는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앞으로 해야만 하는 수많은 의사결정 중 첫 번째는 장례식장을 어느 곳에 잡느냐였다.
‘아빠는 어디를 편하게 생각할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아빠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생각했던 적이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돌아가신 이후의 첫 고민이라니 난 왜 그랬을까.
난 아버지의 모교이기도 하고 계속 진료받으신 곳이기도 했던 분당서울대 병원으로 장례식장을 결정했다. 그리고 나를 도우러 와준 사촌의 차를 타고 경찰서에서 병원으로 출발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