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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닻 Feb 02. 2024

나방학교

수차례의 악몽을 기억하는 유일한 뇌.


그해 여름 있었던 일을 기억해?

상가 불빛이 드는 곳이면 어김없이 누덕한 나방들의 사체가 자박자박 깔려있던 그해 여름, 꼭 그처럼 우리의 친구들이 떼죽음을 당한 일 말이야.


작년 이맘때쯤이었지. 아직도 아이들의 책상에는 국화꽃이 한 송이씩, 합쳐서 무려 스물한 개가 놓여 있는데 그 일을 아는 사람이 여전히 우리 둘 뿐이라는 것, 왠지 서럽지 않니. 너는 아니라고 말하겠구나. 너는 특별한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 하지만 결국 이 편지를 보낼 사람이 너밖에는 없었어.


그날 아침 일의 발단이 되었던 아이가 정확히 몇 시 몇 분에 교실로 들어왔었는지 기억이 나. 오전 9시 2분이었어. 선생님이 시험날 지각이냐며 타박했지만 그냥 슥 웃고 마는 얼굴이 귀여웠어. 양 볼에 설핏 파이던 보조개, 꾹 다물어지지 않는 입술 새로 희게 빛나던 건치. 학교 뒷산에서 키우던 토끼를 닮았던 것 같아. 생생하게 기억이 나. 첫 시험이 끝나고, 그 보송하고 말갛던 아이가 아주 딴사람이 된 얼굴로 멍하니 앉았다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버리기까지의 순간도 기억해. 겨우 1, 2 남짓한 시간을 그렇게 우두커니 있었나.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뒷모습이었어.


그래도 두 번째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친 뒤, 조금 늦었지만 아이는 무사히 자리로 돌아왔고, 또다시 약간의 핀잔을 들었지만 웃어넘겼어. 오후 4시가 넘도록 시험이 이어지는 내내 그 아이는, 마치 시간표가 따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꾸 시간 맞춰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거야. 시험이 끝나면 얼빠진 표정으로 교실을 나갔다가, 느지막이 눈치 보며 들어와 시험을 치르는 그게 그 아이 나름의 루틴이었을까? 교실을 나가서는 무얼 하다 돌아왔을까?


하지만 생각해 봐,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겠니. 그게 뭐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이었겠니. 줄줄이 적고 있지만 실은 나, 그 아이를 잘 몰라. 내가 그 아이에 대해 기억하는 게 그날이 전부일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어. 그랬어.


오후 4시 반. 마지막 시험지를 다 고 나서였어. 가채점을 마치기도 전에 기(奇) 현상이 일어났지. 여기서부터는 너도 전해 들은 바 그대로일 거야. 그 아이는 첫 번째 분단 세 번째 자리에서 부스럭대며 시험지와 가채점표를 찢으려고 했는데, 그까짓 종이가 무슨 고무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 질겼던 거야. 그래서 아이는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어. 고무 종이를 허공에 던져버리고는 바로 옆에 있던 벽에 자기 머리를 찧기 시작했어. 말 그대로였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머리를 숙여서 정수리를 그 단단한 벽에 수직으로-쿵. 쿵. 쿵. 뒤에서 앞으로, 쿵. 쿵. 쿵.


그런데 그거 아니. 그 애 머리는 일곱 번 만에 와그작 깨어졌는데, 머리뼈가 너무 약했던 건지 쿵쿵 찧는 소리가 크지도 않더라고. 나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아이들도 그 정도 소리에 머리가 정말로 부서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어. 아이가 머리에 든 것을 모두 쏟으며 죽어갈 때까지. 우린 그럴 줄 몰랐어, 몰랐다니까.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단 말이야. 각자 부지런히 채점표를 완성하느라 바빴지. 모두가 하루이틀, 한두 시간이라도 더 빨리 점수를 알고 싶어 미칠 노릇이었으니까.


그 애가 종잇장처럼 풀썩 엎어지는 동안, 책상 밑에 피가 그렇게 많이 흐르는 줄도 몰랐어. (이건 비밀인데, 나중에는 그게 나무 바닥에 다 스며들어서 다들 청소할 때 그 아일 심하게 욕하더라고. 이 대목은 아무리 너라도 좀 불편할 거야. 끔찍하지.) 더 끔찍한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지만. 그 아이 책상에는 하얀 국화꽃이 놓였잖아. 너도 그걸 발견하고서야 내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물었지. 그때 바로 대답해주지 못했던 것 미안해. 하지만 왜 그랬는지 이제 너는 알지.


국화꽃은 단지 그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만 알려주었지 왜 죽었는지 그 이유까진 알려주지 않았어. 나는 아이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고도 당최 그 이유를 몰라서, 종례가 끝나면 빈 교실에 혼자 오래도록 앉아 있을 때도 있었어. 그 꽃, 입이 제법 무겁더라. 아니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걸까? 생각해 보면 그때 현장에 있던 누구 하나 이유를 밝혀주지 않는 죽음을, 모두가 경악했지만 엄청나게 슬퍼하지는 않았던 죽음을, 그 창백한 꽃이 전부 감당했어야 했는지도 몰라.

 

그다음 시험이 바로 두 달쯤 뒤였지, 아마. 조금은 떨려. 그날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게 말하기 힘들어.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을지 알았더라면 한 명 한 명, 조금 더 주시했을 거야. 그 토끼 같은 아이를 자세히 보았던 것처럼. 그러면 지금도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다 기억날 텐데……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냐만은.


그래,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 막을 수 없었을 거야. 시험 시간 동안 아이들의 상태를 지켜보았어도 불가능했을 테야. 시험을 마치고 가채점표를 받자마자 반 아이들 모두가 우후죽순 일어나서 벽에 머리를 찧기 시작했는 걸. 피할 수 없는 장면이었어. 스무명이 단체로 부딪히는데 정말 미스터리하게도, 쿵쿵하는 소리는 여전히 희미했던 거 있지? 그만치 연약한 머리들이, 핏기 가신 얼굴들이 형체를 잃고 마구 우그러졌어… 감자처럼 으깨져서 바닥에 버려졌어.


그래도 막아야 하지 않았을까. 나도 같이 머리를 부술 게 아니었으니 말이야. 뭉텅이 진 살점들이 떠다니는, 피바다가 된 교실에 무시무시한 정적과 함께 나 혼자 남겨졌을 때에야-어찌나 조용한지. 미약하게나마 소리가 있긴 있었구나, 싶더라니까. 갑자기 모든 게 미친 듯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어. 잔금 한 줄 가지 않고 멀쩡한 교실의 벽이, 시험을 5시간 넘게 치르고선 5분 만에 납작한 시체가 되어버린 교실의 아이들이, 그 한가운데 온전히 살아있는 내가. 눈 밑이 헐거워지도록 울었어. 울어도 울어도, 비린내가 진동하는 핏물은 찰나의 파장도 일지 않더라. 이미 굳어버린 듯이 차갑고, 고요했어. 떨고 있는 내 발목께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은 번뜩 정신을 차리고 곧장 교무실로 달려갔던 거야. 어쩌겠어, 설명해 줄 어른이라고는 죄다 거기 모여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정말 후회해. 내가 단 한 명의 죽음도 막지 못한 것보다 더 후회해.


- 시험이었잖습니까. 애들은 이맘때쯤 다 그렇죠. 네? 제가 교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다 벌어진 일이라고요. 왜 저한테… 전 책임 없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별일이라고.


언성을 높이지 않고도 잔뜩 화가 나 보이는 담임 선생님의 통화 상대가 누구였을지 짐작하지? 별로 언급하고 싶지도, 제대로 알고 싶지도 않아. 이맘때쯤. 책임. 별일... 그런 단어들만 귓구멍에 새된 비명소리처럼 사납게 꽂혔어. 죽은 아이들의 혼이 나를 붙잡고 흔드는  몸이 덜덜 떨렸어.


열린 문틈 속에 서 있던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건 그 사람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 직후였지. 선생님은 한걸음에 다가와서 내가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한 문을 쾅 닫아버렸어. 있잖아,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다시 문만 열어준다면 당장 무릎을 꿇고 빌 수 있었어. 제가 잘못했어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면서 말이야. 믿어져? 너도 분명 고개를 저었던 것 같아. 난감한 표정. 알아, 그렇지만 내 마음은 정말로 그랬어.


'3반 전 과목 평균 10점 하락, 집단 투신'. 일주일 만에 건조한 결론으로 사건은 공중 분해되었지. 우리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던 듯해. 뭐랄까, 국화꽃이 된 것 마냥 저절로 입이 닫혔어. 누가 잘못이나 책임이 있건 아니건, 이유가 어떻게 판명 났건,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믿건 아니건 중요한 건 아이들이 이미 죽었다는 거야. 이 매정한 종결을 인정하는 게 생각보다 별로 어렵지 않았다는 것, 혹시 너도 공감하니.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될 만한 아이들이 아니었다고 항변하는 일 같은 건, 우리의 일이 아니잖아. '별것 아닌 일'에 휩쓸리지 않고 여기 선명히 살아있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니잖아.


- 그렇게 정서가 불안한 아이들과 함께 있었으니 넌 치료를 받아야 해.


상담 시설에 보내진 날, 날 연행하던 그들이 나를 환자가 아니라 공범 취급하더라는 것도 내가 말했니? 모든 기억을 지운 머릿속처럼 온통 새하얗고 윤곽이 없는 상담실에 앉아있을 때, 지구 멸망으로부터 살아남은 최후의 인류를 바라보는 외계 생명체의 것과 같던 시선들에 대해서는?


어느새 너무 길게 써서 기억도 안 나네. 사실 기억나지 않는 게 한두 개가 아니야. 어쩌면 나,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이러다 여기서 쥐도 새도 모르게 다 잊을까 봐, 혹은 잊힐까 봐-이 모든 일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하여조차 말하고 듣는 것이 금지된 이곳에서, 이렇게 용기를 내서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이 편지가 너에게 잘 도착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내가 여기서 멀쩡한 정신으로 걸어 나가기 전에 바깥에서 멋대로 나를 삭제해 버린다면…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아무도 주인을 모를 내 책상에, 네가 국화꽃 한 송이만 놓아줘(책상은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너는 부디 다음 해 여름까지는 나를 잊지 마. 다만 그냥 먼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해 주길. 별일 아니라고, 다들 그러는 것처럼. 최선의 사소함으로 나를 기억해 주길. 뭐, 어려운 일 아니잖아?


그럼, 내년 여름까지 무사히 안녕. 잘 지내.


달리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곤
수차례의 악몽을 기억하는 유일한 뇌
어느새 거기, 철 지난 소품처럼 처박힌
시뻘건 봄
- 이닻,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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