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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닻 Feb 05. 2024

어린 왕자(1)

처음부터 사랑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이상하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데

무슨 애가 어린 왕자를 그렇게 좋아했을까.


- 무슨 생각해?


너 어릴 때 생각.

내용은 다 이해하고 좋다고 냐며

비아냥거릴 때마다 너는

별처럼 반짝이며 말했지.

모르면 말을 말아.


- 미안한데, 나 어릴 때는 너도 어릴 때였거든?


그랬지, 그랬겠지.

그런데 그 어린 때부나는 뭘 안다고

네가 좋았을까.

나는 너처럼 반짝일 수 없어 대답은 감추었다.

모르면 말을 말자.


- 그때가 좋았는데.


그렇게 쓸쓸하게 말하지 마.

빈 바람 텅텅 부는 시린 소리가

잠재워 둔 우리의 공허를 펄럭이고 간다.

약하디 약한 먼지 조각들이

들이쉬고 내쉬는 작은 숨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곁을 서성이었다.


부유하는 모든 것들이 상상의 일부 같았다.

그 상상의 세계 밖에 있는 너와 나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 해지는 모습하고 나밖에 좋아하는 게 없었잖아, 너.


아, 너도 알고 있었구나.

달아오르는 새벽의 해처럼 나는 움찔거렸다.

너는 한낱 어린애여서 그런 것은 모르는 줄 알았지.

그 작은 별에서는 수차례 해가 지는 모습과

유리공 속 한 송이의 너만 사랑해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는 것,

그런 것은 모르는 줄 알았지.


- 그 별이어서 가능했던 걸까.


너는 다시 쓸쓸해진다.

나를 향해 오지 않는 물음이 별무리가 되어

밤하늘 깊은 곳을 유영하고 있다.

떠도는 너를 붙잡을 말이 없어서,

나는 최소한의 숨을 입안에서 굴려 먹으며

너를 시선으로 지켰다.


- 언제부터였던 거야.


내가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된 이유를

묻는 것이라면,

네가 장미인 줄 알았더니

바오밥 나무였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모자가 아니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그 별에선 해가 지기만 하고 뜨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 언제쯤 돌아올 거야?


실은 너를 반짝이게 하는 것이 별빛이 아니라

빛 받은 먼지 따위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까지 갖는 지금은, 아니야.

널 다시 사랑할 거냐고 묻는 거라면, 아니야.


오래전, 성장이 멈추지 않는 바오밥 나무와

소화되지 않은 코끼리 때문에 망가져

태양 속으로 사라진 소행성 이야기.

거기 살던 너와 나의 이야기.

우주를 아무리 멀게 떠돌아도 마주칠 수 없는

아주 옛날의 이야기.


지금은 그게 다 동화라는데, 이상하지.

이렇게 들으니 또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고.

벌써 어른이 되어버린 탓일까?


모르겠어. 아무것도.


그래, 처음부터 사랑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
나는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으로는 도무지 사랑이란 것을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
- 이닻, '하다 말게 되는 어떤 종류의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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