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닻 Feb 12. 2024

식욕

굶주린 위장 소리처럼, 너를 무참히도 사랑해.


학교 화장실 변기에서 ‘그것’이 발견된 이후, 그 누구도 닫혀있는 변기 뚜껑에 손대려 하지 않았다. 네가 매일같이 수척해지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복도 끝에 비치된 정수기에 물을 뜨러 갔다가, 여자 화장실에서 비척대며 걸어 나오는 너와 마주쳤던 날. 의아한 내 표정이 네 눈동자에 잠시나마 비칠 정도로 오래 대치하고도, 너는 아무 말 없이 달아났고 온종일 나를 피해 다녔다. 반에 찾아가면 네 자리는 줄곧 비어 있었다. 조퇴를 했다던 날도 있었고, 두세 번 더 화장실 앞에서 마주친 적도 있었다. 퀭한 눈이 그늘지게 수그리고 나를 피해 가는 것이 여실히 느껴져서 나는 네가 계속 달아나게 둘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발견된다는 것에 대한 소문은 점점 불어났다. 여자 화장실이라 직접 목격하진 못했지만, 반 아이들이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정체 모를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조금도 가늠할 수 없었고, 그럴듯한 추리를 해내는 아이 또한 없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싶었다. 네가 추레한 몰골로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게 문제라면, 문제 삼을 아이들은 차고 넘쳤다.

 

일주일째 너와 화장실 앞에서 마주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상한 기시감이 번쩍인 것은, 네가 도망갈 힘도 없다는 듯 화장실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 너, 어디 아파? 요즘 왜 그래?   

  

불러 세우자마자 사납게 눈을 치뜨며 돌아보던 너를 기억한다. 그 뾰족한 눈꼬리에 찔린 것처럼 나는 소스라쳤다. 너는 내가 간간이 그렇다 여기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야위어 있었다. 그렇게나 곤죽인 몸이 어떻게 땅에 발을 붙이고 서 있기는 한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입가에 손등을 붙인 채 쌕쌕 창백한 숨을 몰아쉬던 너는, 이내 또다시 스르륵 걸음을 옮겨 가버렸다. 당혹스러운 뒷모습을 두고 여자 화장실 문 앞에 남겨졌다. 제대로 닫히지 않은 문틈 새로 불안감이 스멀스멀 비어져 나왔다. 곧 쉬는 시간은 끝이었고, 복도는 한산했다. 나는 네가 교실 안으로 사라지자마자 화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유리문이 앞뒤로 격하게 덜컹이는 마찰음만 허공을 죽 찢었다. 첫 번째 칸부터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맨 끝의 칸을 제외하고는 변기 뚜껑이 이미 열려 있었고, 상태도 양호했다. 마지막 칸에서는 주저하지 않고 닫혀있는 뚜껑을 홱 열었다.


그 안에는 거무스름한 점액질 덩어리 같은 것이 둥둥 떠 있었다. 다리 없는 커다란 벌레의 몸통 같기도 하고, 흑점토 덩이 같기도 한 '그것'이 새카만 물을 가득 우려내며 거기 들어앉아 있었다. 선뜻 가까이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 헛숨을 들이켜는 순간, 비위를 뒤흔드는 메스꺼운 악취에 온 내장기관이 한꺼번에 울렁거렸다. 뚜껑을 부서져라 덮고 뛰쳐나갔다. 입을 틀어막은 팔목 위로 침방울이 흘렀다. 유리문이 다시 한참 간 흔들렸다.


더 이상 그냥 소문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너를 찾아갔지만 너는 교실에 없었다. 그다음 쉬는 시간에도, 또 그다음에도. 우연이 아님을 알면서도, 네가 여전히 대면을 기피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어떻게든 너를 만나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너는 그걸 알면서도 끈질기게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그날, 하굣길의 공터에서 너는 열흘은 굶은 길고양이처럼 쭈그리고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너밖에 없어, 미안해.     


그런 소리를 하고는 펑펑 울기 시작하는 너에게, 나보고 무얼 어쩌라는 것이냐며 성질을 부릴 뻔했다. 눈가를 문지르는 너의 손목이 네 눈물을 못 이겨 부러질 것 같이 유약해 보였다. 찡그린 눈에서 방울지는 맑은 눈물을 보다가는, 그 괴상한 것이 네 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까 봐 일단 열심히 달래야 했다. 묻고 따지는 일은 네가 내 앞에서 울지 않게 된 다음에야 가능한 일 같았다.


한참 만에 울음을 그치고, 애써 산발이 된 목소리를 빗어 내리며 너는 실토했다. 화근은 배고픔이었다고.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팠다고 했다. 접시째 씹어먹어도 단순히 소화되고 마는 평범한 음식 같은 것으로는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적인 식욕이라고 했다. 몇 날 며칠을 그에 이끌려 닥치는 대로 먹은 것들이 위장에 도달하기도 전에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장면들을 머릿속에 나열하면서 눈높이만은 계속 네게 맞추었다. (너는 내가 의뭉스럽게 듣고 있는 것을 이해한다고 덧붙였지만, 어쩐지 항변하는 투로 들렸다.)


너는 이제 쉽게 목으로 넘기지 못할 것들을 먹을 요량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네가 아끼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먹어치웠다고 했다. 반짝이 나비 장식이 달린 펜, 다섯 번도 더 읽은 시집, 벚꽃잎을 직접 말려 만든 책갈피, 밤사이 거세게 퍼부었다 그치는 장맛비, 그럴 때 듣는 피아노곡 모음 CD 같은 것들을. 다시는 구하지 못할 한정판 캐릭터 인형이라던가, 달리 복사본이 없는-지금의 너를 꼭 빼닮은 어린 시절 사진까지도.


그러나 하나같이 부피가 작은 것들이었으니 그런 것들로 배가 채워질 리 없었다. 고작 그 정도의 소박한 섭취 행위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너는 마침내 증오를 찾아 먹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 먹어버렸으니 남은 것들은 거의 다 증오였다. 잘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 수백 장과 가끔씩 무릎을 부딪히는 네 방의 작은 책상을 집어삼켰다. 약이 다 닳아 불규칙하게 깜박거리는 스탠드 조명을 부숴먹었다.


질 나쁜 증오로 채워지는 속은 며칠을 못 견디고 탈이 나서, 결국 너는 그것들을 도로 게워내는 수밖엔 없었던 것이다. 너도 네가 뱉어낸 것이 몸서리칠 만큼 저주스러웠다고 말했지만, 속을 비워내고 나면 허기는 더욱 심해져 굶주린 짐승처럼 시커먼 증오들을 또다시 분별없이 먹어치우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어 기어코 너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 배고파. 나 지금도 너무 배가 고파.     


네 말을 다 소화하려면 나야말로 탈이 날 것 같았으나, 너는 성급히 말을 끝내고 어린애처럼 자꾸만 보챘다. 이걸 어쩐다. 이런 꼴을 보고도 계속 상한 것으로 배고픔을 채우게 할 수는 없잖아.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잔뜩 울상이 된 너의 눈길이 꽂힌 곳은, 너의 앙상한 손목이었다.     

 

 - 나를 증오해, 이러고 있는 내가 너무 싫어


불시에 네가 입을 벌려 와락 달려들었고,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힘으로 제 손목을 으득으득 씹었다. 그런 너는 정말 한 마리 미친 짐승 같아 나도 모르게 질색하듯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러나 별수 없이 그것은 너였다. 잠시 망설이다 네 머리채를 우악스레 휘어잡았다. 팔목에서 힘껏 떼어내자, 단단한 이빨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흉하게 문드러져 있었다. 너는 시뻘건 입속을 숨기며 으르렁거렸다. 가쁘게 숨을 몰아쉴 때마다 네 여윈 볼살이 였다 돌아왔다 했다. 손 안의 머리채가 께름칙하였다. 네가 괴로움을 빌미로, 사육당하는 동물의 눈빛처럼 나를 원망하는 것 같음이었다.


마음이 누그러슬쩍 놓아주려는 찰나, 이번에는 네가 불쑥 내 팔목을 물어뜯었다. 살갗을 파고들어 단번에 힘줄까지 건드리는 위력에 속수무책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듯, 너는 이빨을 비틀기 전에 짐짓 모든 동작을 일체 멈추었다. 돌연 나를 놓고는 혓바닥으로 제 고른 치열을 연신 훑는다. 검은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떠내려갈 것처럼 둥둥 떠있었다.


단지 비명소리에 놀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제가 벌인 사태에 불현듯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너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뜯기다 만 내 팔목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본다. 나는 애써 어떤 상처가 났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네 표정만 보아그럴 필요가 없었다.     


- 나를 미워해?     


다만 그렇게 물으면서도 네가 혹여나 그렇다고 대답할까 봐 마음 졸였다는 것, 너는 알까. 억세게 고개를 젓는 너를 보며 남몰래 마음 놓았다는 것을. 저릿한 팔목의 상처를 움켜쥐고 맥 풀린 다리로 주저앉자, 네가 달려와 나를 부둥켜안았다.     


-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러면 안 되는데, 나 정말 너밖에 없어.     


너는 또다시 울음을 입 밖으로 끌어내고, 나는 너를 울리지 않고서는 그 말을 들을 수 없는가 싶어 뜻밖에도 웃음이 났다. 다른 편의 손으로 너의 어깨를 토닥이었다. 너의 뜨거운 울음이 내 등줄기를 타고 쏟아져 내린다.     


- 그칠까, 네 배고픔.     


- 글쎄... 모르겠어.

   

- 어느 쪽이든 채워지지 않는다면, 그래도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먹는 편이 낫지 않을까? 큰 것들을 골라 먹다 보면 좋아하는 것들로도 충분히 채워질 거야.

     

더 많은 것을 좋아하면 된다. 더 크게 좋아하는 것을 먹으면 된다. 방법이 있을 거야. 너를 상하게 하지 않는 방법이. 잠자코 너는 내 말을 듣다가, 토닥임맞추어 심장을 움직이다가, 조심스럽게 울음을 감추며,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 그러다 너무 욕심을 낼까 봐 무서워. 너를 남겨두지 못할까 봐.

     

그렇게 말하면서, 너는 눈물 묻은 표정을 내 목덜미에 자꾸만 묻히고, 내가 널 어르던 것을 그만두고 아연해져내내 안겨있는 너처럼 네 독백은 가시지를 않고… 나는 그렇게 너를, 너는 또 나를 한 발짝도 넘어서지 못하고.


잠시나마 상상해 보았다. 너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더 불행일까, 네가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 더 불행일까. 내가 어느 것이어야 네게는 더 좋은 일일까.


이윽고 작아지는 네 숨소리가 목덜미 위에서 따뜻하게 흐드러졌다. 어쩌지, 지금 너를 깨우는 것이 나을까, 조금이나마 망각의 세계 속으로 떠나 있도록 두는 것이 나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깊어졌다. 네 손목에는 아직도 퍼런 핏자국이 넓게 드리워있는데, 나는  이상 아프지도 않았다.     


그대로 멈춘 듯 흘러가는 시간이 권태로울 지경으로 더디고 따뜻했다. 불행히도 네가 잠들어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괴롭지 않았다.    


배를 굽히고 가려도 막을 수 없는 굶주린 위장 소리처럼•••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너를 무참히도 사랑해.
- 이닻, '경우의 수'
이전 07화 어린 왕자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