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천년처럼, 천년이 하루처럼 갑니다. 깨어 있으랬는데, 잠이 많아져서 큰일이에요. 잠이 많아지는 것은 우울의 탓이고, 우울은 이방인의 오랜 지병이라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나란히 오전 수업에 늦고 말았던 그 아침.
❝ 아무래도 한국으로 돌아갈까 싶어요. ❞
돌김 몇 봉지를 쥐어주며 말하던 당신은 늘 현관문을 열어두는 이웃이었습니다. 매일 같은 곡조를 연주하는 딸아이의 피아노 소리와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앞다투어 넘어오곤 했습니다. 전화를 붙들고 남편과 언성 높여 다투는 일도 하나의 루틴이었습니다. 나는엿듣지 않으려고 열린 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몸을 한껏 숙여보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집 앞의 좁은 뜰에서 자라난 상록수 이파리가 머리 위를 스쳐 다녔습니다. 조금도 변색 않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뻔뻔한 초록빛이었습니다.
10년 넘게 뿌리를 내리고도 땅을 옮겨 다니는 나무가 있더랬습니다. 한평생 해 드는 땅을 찾아 헤매었을 뿐이라고, 젊음은 한때 당신을 여행가라 이름했지만 실은 겨우내 살아남은 생존자가 아니겠냐고- 워킹팜이라니, 나는 처음에 워킹맘이라고 들었다니까. 당신은 따라 웃을 수도 없는 농담을 자꾸만 합니다.
엄마의 이유에는 온통 가족뿐이어서,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쓰는 8살짜리 어린 딸과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모험하고 싶지 않은 남편뿐이어서, 당신은 늘 멋쩍게 웃었습니다. 나에게는 같은 수업을 듣는 일종의, 친구일 뿐인 당신은. 어떻게 바꾸어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의 주어가 당신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되려 내게 되물어 호도하는 것입니다.
❝ 호주 어때요?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요? ❞
고작 1년으로 정착을 운운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나야말로 이 나라에서 철저히 이방인인걸요. 집이 있고 방이 있고 그 안에 내가 산 물건들이 그득해도, 이 나라 사람들과 같은 언어로 소통하며 같은 곳에서 일을 해도, 같은 해를 쬐고 있는 것 같아도. 내 뿌리는 이곳에 온전히 붙박일 수 없기에 제대로 서있으려면 안간힘을 써야 하는데요. 오래오래 살아남은 드센 눈들을 아직은 조금 더 견뎌내야 하는데요.
당신은 노을이 지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10년을 넘게 살지 않았습니까. 가정을 꾸렸고, 이 나라 사람이 되었고, 이제와 뿌리를 뽑아내기엔 그림자가 제법 많이 길어지지 않았습니까. 당신이야말로 이곳에 남고 싶지 않나요, 그러나 역시나 묵묵부답입니다. 당신은 강의실에서도 의견보다는 질문이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주렁주렁 답을 매달다 보면 삶이 무척이나 무거워질 듯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당신은 결론짓지 못한 질문들을 그만치 잔뜩 업고 있는지도요.
❝ 나는 가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
당신이 질문하지 않고 그렇게나 함축된 평서문을 내어 놓은 것이 실로 흥미로워, 나는 잠자코 다음 말문을 지켜보았습니다. 별안간 미역으로 만든 과자를 괴식 취급하는 나라에서 짭짤한 조미김을 나누어 먹는 종류의 짜릿함이 다녀갔습니다.
❝ 그거 알아요? 나는 한국을 떠난 순간부터 평생 이방인인 거예요. 여기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남의 나라고, 한국은 돌아가기에 너무 오래 떠나 있었어요. 나는 이제 어디서든 이방인이에요. ❞
외람되게도최선의 대답이었겠지요. 삶이란 본디 저마다 친밀하거나 무관한 타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당신은 그 수많은 타인들 중에서도 가장 타인이었습니다. 완연히 친밀하지도 무관하지도 못한, 어중간하고 그래서 아주 외로운 타인들 곁의 타인이었습니다. 더 나은 선택지랄 것이 애당초 모호했을지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으려다 사나워진 눈들을 많이도 보았습니다. 남의 나라에 잘 붙지 않는 두 발을 억척스럽게 박아 넣기 위해 힘껏 독해진 사람들을요. 당신의 질긴 너그러움을 몰랐더라면, 떠도는 타인들의 외피를 붙잡고 기분을 묻는 당신의 오늘을 몰랐더라면, 나 또한 그저 이 병증을 끌어안고 종일 꿈만 꾸었을 텝니다.
아주 낭만적인 꿈을요. 굵직한 밑동을 가진, 아주 멋들어지게 천년만년 묵은 나무가 되는 꿈. 뾰족하고 파릇했던 시절의 낭만이 다 낡고 바래 부스러지기에 이른 계절 어느 기로에, 당신이 서있습니다. 눈썹을 찡그린 채 해가 비쳐 들어오는 방향을 가늠하고 있습니다. 딱딱해진 발등을 비틀고 웅크려 부드러워지면, 이제 당신은 어디로 뻗어 가든지 굳세고 다정한 타인이 되어주세요. 허리를 부여잡고 살아남는 일을 다만 지속해 주세요. 돌고 돌아 마주치는 사람에게 당신 자신을 '어떤 타인'이라고 소개할 만한 말이 몇 자 더 늘어날 수 있도록.
종국에는 환대가 들이치는 곳으로 많이들 모이지 않을까요. 내가 당신의 시간만큼을 따라잡고 나면요. 나는요, 그때쯤에는 누구에게든 가깝고 기꺼운 타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 다만 볕을 향해 꾸역꾸역 나아가는 삶을 살아요, 우리. 밤이고 낮이고 좁은 햇발 속에 몸을 들이밀며, 끊임없는 초록이 되어요. 무어라 이름하기 어려운 이 삶에 목표가 있다면 그런 것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