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May 21. 2024

설거지와 휴식

 정성들인 점심먹고 아침 먹은 그릇과 함께 애벌 헹굼 해 식기세척기에 가지런히 그릇을 넣는다. 행주를 빨아 식탁, 인덕션, 커피머신, 정수기, 싱크대 주변을 닦아준다. 행주는 빨지 않고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 저녁 때까지 담가둔다.


 식기세척기가 생긴 후로는 설거지 시간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휴식시간이 생겼다. 그 휴식시간을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배는 부르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따뜻하고 집 안에는 식기세척기 돌아가는 소리만 울릴 때면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콧노래라 하면 자고로 무의식 중에 흘러나오는 것이라 지금 내 마음 상태를 가장 잘 반영한다. 오늘의 콧노래는 쿨의 <해변의 여인>. 햇빛이 쨍쨍한 하늘을 보고 있자니 여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아이가 돌아오기까지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다. 이 시간은 가급적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일에 몰두한다. 귀가한 아이를 위해 간식을 만들거나 우아하게 책을 읽는 일 따위는 미뤄두고 대부분은 유튜브와 함께 한다. 엄마모드로 전환을 앞두고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조금은 과할 정도로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일부러 아무 생각없이 깔깔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보거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거나 산책로를 따라 도서관에 다녀오는 등 에너지가 충전될 만한 일을 찾는다. 그럼 아이를 맞이할 때도 긍정적인 기운이 생긴다.


주방정리를 마친 후 본격 유튜브타임


 국어사전에서 휴식을 찾아보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쉼'이라고 한다. 여기서 '하던 일'이라는 글자를 주목해본다.


 나에게 진정한 휴식이란 해야할 일을 잠시 멈추고 막간을 이용해 여유를 즐기는 것이지 하루 종일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멍하니 시간만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아무리 쉬어도 에너지가 차기는 커녕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점점 더 쳐지고 기운이 없었다.


 평생을 부지런히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살아 온 것처럼 전업주부의 삶도 나만의 루틴과 규칙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한 이후로 나는 살림도 휴식도 더 즐기게 되었다.


 오후의 살림을 위해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이 시간의 달콤함을 좀 더 만끽하기 위해서 오전에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인다. 6시 30분에 일어나 독서를 하고, 아이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아이가 등교할 때 나가 달리기를 하고, 집에 돌아와 씻고 사이버대학 강의를 듣는다. 강의가 끝나면 일주일에 블로그, 브런치, 오마이뉴스 세가지 채널을 돌아가며 글을 쓰고 점심을 차려먹는다. 내실있게 꽉 채워 쓴 오전을 보내고 나면 점심식사 후 아무렇게나 보내는 잠깐의 시간이 아깝지 않다. 오히려 더욱 귀하고 소중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내 스스로 루틴을 만들고 성실하고 단정하게 내 삶을 가꾸어 나가는 모습이 만족스럽다.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려 매일 해야 할 일을 체크하고 소소한 일이라도 성취해나가는 내 자신의 주도적인 모습이 자랑스럽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삶을 잘 살아갈 능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휴식마저도 능동적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