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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May 16. 2024

혼밥과 자존감

 남편과 아이를 보내고 어수선한 집안을 정리하고 아침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슬슬 배가 고프다. 내 배꼽시계는 꽤 정확한 편이다. 이 순간이 되면 매일 어김없이 고민한다.


 '귀찮은데 라면 끓일까? 그냥 커피와 빵으로 떼울까?'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많이 먹는 편도 아니라서 혼자 먹는 점심식사는 언제나 고민이다. 배가 고프면 짜증부터 나는 못되먹은 성격은 얼른 메뉴를 고르라며 재촉하고 마음 속에서는 고요하지만 치열한 갈등이 생긴다. 어떤 날은 라면파가 승리하고 가끔은 요리파가 승리한다.


요리파가 승리한 날. 집에서 만든 토마토주스와 피자빵.


 엄마의 점심식사는 하루 중 가장 초라하고 형편없기 쉽상이다. 먹다남은 국을 대충 데워 떼우거나 한두가지 반찬을 통째로 놓고 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라면을 먹더라도 봉지라면도 귀찮아 컵라면을 먹고, 그마저도 귀찮은 날에는 돌아다니는 군것질로 대충 한 끼를 떼우는 날도 많다. 그 날도 아이가 아침에 남긴 반찬을 대충 꺼내놓고 점심을 먹는데 문득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친정엄마는 가족들이 먹고 싶다는 반찬이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실컷 갈비찜을 만들어놓고 '나는 고기는 별로야'라며 밥에 물을 말아 김치를 올려 먹는 것이 더 좋다고 하는 엄마. 집에 손님을 초대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상을 차리고 손님이 돌아가면 그제야 출출하다며 국에 밥을 말던 엄마. 그런 엄마의 궁상스러움이 나를 이만큼 키웠다는 사실이 감사하면서도 가끔은 화가 났다.


 그런데 내가 엄마의 그 모습 그대로를 닮고 있었다. 생선을 구워놓고 정작 나는 가족들이 손대지 않는 반찬을 먹어치우느라 정신이 없는 내 모습. 혼자 먹는 한 끼라도 대충 차려 떼우고 마는 내 모습이 어릴 적 부엌에서 국에 밥을 말아먹던 엄마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딸아, 너는 혼자 먹는다고 대충 먹지 말고 잘 차려놓고 먹어라." 하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혼자 먹어도 제대로 차려놓고 먹기로 한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나는 여기에 한가지 더 덧붙이고 싶다. 내가 차린 식탁이 나의 자존감을 만든다.


 점심식사는 주부에게는 특별한 한끼다. 가족의 선호가 아닌 나의 취향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시간. 그 소중한 점심 한 끼를 정성들여 차려먹는 것은 나의 자존감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온전히 나를 위한 한 끼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지?' , '지금 나는 어떤 음식을 먹고 싶지?' 생각하며 내 마음의 말에 귀 기울여야한다.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 소리가 말하는대로 혼밥이라도 멋들어지게 차려낸다.


 남은 반찬에 식은 밥을 먹더라도 예쁜 그릇에 담아 반드시 따뜻하게 데워먹고, 라면을 끓이더라도 대파와 계란을 넣고 용기에 담아 먹는다. 분식집에서 사 온 김밥 한 줄을 먹더라도 쟁반에 올려 깔끔하게 식탁을 차리고 가끔은 손이 많이 가지 않는 메뉴로 간편하게 요리를 하기도 한다. 나를 위해 잘 차린 점심 한 끼를 든든하게 먹고 나면 위장 속만 아니라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나를 귀하게 여겼다는 마음. 한번 그 기분에 취하고 나면 다음날 점심도 다시 정갈하게 차려낼 기운이 난다.


 근사하지는 않지만 나만을 위한 정갈하고 깔끔한 한 끼.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밥'에 집착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식사하셨어요?'를 인사로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남의 밥은 신경쓰고 챙겨주면서 정작 내가 먹는 내 밥에는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건강하게 차린 밥이 아이와 남편에게 하루를 사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 마음으로 나의 하루에도 원동력이 되어 줄 한 끼를 차려낸다.


먹다남은 떡볶이도 잘 데워 파와 깨를 뿌려 근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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