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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May 14. 2024

이불정리와 주도성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자주 몸이 아팠다.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됐다. 어떤 날은 먹은 것을 전부 토해냈다. 생리전증후군으로 생각해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는 피임약을 처방해주었다.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점점 더 생리 주기와 무관하게 아픈 날이 많아졌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내과에서는 경미한 역류성식도염 외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신경과에서는 뇌에 공급되는 혈류량이 급작스럽게 증가했기 때문에 두통이 발생하는 것이며 그 원인은 스트레스라고했다. 신경과에서 지어준 두통예방약을 먹는 동안에는 두통 횟수가 좀 줄었으나 순식간에 8kg 이 불었다. 살이 찌자 자신감이 없어졌고 그렇게 좋아하던 발레를 그만두었다. 발레복을 입고 전신거울 앞에 서는 것이 짜증났다. 약을 끊고 이번에는 한의원을 찾아갔다. 그곳에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스트레스.


 객관적으로 내가 스트레스 받을 상황은 없었다.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다주는 남편,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평가받는 아들. 나는 적당히 집안일을 하고 내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어떤 문제도 없었다.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면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8년 넘게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데 최선을 다했지만 거기서 내가 어떤 성장을 이뤘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월급이나 진급, 하다못해 100점짜리 성적표도 없었다. 문제는 자존감이었다.


 때로는 거대한 목표보다 작은 목표들이 모여 삶을 바꾼다.


 당장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어려우니 작은 목표들을 적었다. 거대한 목표는 미래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작은 목표는 현재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루어낸 작은 성공경험이 쌓이면 자존감이 회복된다는 말을 믿었다.



"이불정리는 자기한테 주는 선물이에요."


 마침 유퀴즈에 출연한 김희애가 이불정리는 자기한테 주는 선물이라는 말에 꽂혔다.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아이를 낳고 육아에 찌들어 지내던 우리 부부는 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박에 50만원이 넘는 호캉스를 간 적이 있었다. 호텔의 근사한 조식, 아이를 위한 키즈카페, 수영장, 프라이빗 비치가 있던 산책로 그 어느 것 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주름 하나없이 정돈된 침대였다. 그곳에 누워있으니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너는 소중하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한참을 침대에 누워있었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휴식이었다.


 그 감촉을 잊지 못해 호텔 침구라는 광고가 붙어있는 이불을 구입하기도 했었는데 그때의 그 포근함을 느낄 수 없었다. 유퀴즈를 보며 그 때 우리가 바란건 고급 침구가 아니라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동안 수고한 나를 위로해주고 밤새 변안한 휴식을 취하고 내일 하루도 힘을 내라고 나에게 응원해주는 것. 매일 밤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에 몸을 눕히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주는 선물이 확실하다.


엉망이 된 이부자리에 다시 몸을 눕히는 것과 정돈된 침대에 몸을 눕히는 것. 어느 것이 진짜 휴식일까?


 이불정리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하루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아침은 이부자리에서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루의 시작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성취로 시작하는 사람과 누군가에게 억지로 끌려가듯 세면대로 향하는 사람 중 누구의 하루가 더 활기차고 주도적일 수 있을까.


 이런 이유로 나는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난 침구를 정리하고 내가 좋아하는 향의 섬유탈취제도 뿌려준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다짐한다.  '오늘 하루도 활기차게 주도적인 하루를 보낼 수있기를''


 미라클모닝은 반드시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 아침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것으로도 기적의 아침을 만날 수 있다.


제주에서 사 온 아로마 스프레이로 이불정리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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