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는 살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딸이 걱정되셨는지 나를 대신해 살림살이를 전부 마련해 주셨다. 평생 하루 세끼 차리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 엄마답게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해 준 것은 부엌살림이었다. 그즈음 엄마는 홈쇼핑 채널을 수시로 켜두고 '이거다!' 싶은 것이 있으면 계속해서 나의 신혼집으로 배달을 해주셨다. 실제로 살림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로서는 엄마의 호의가 싫지만은 않았다. 살림 독립을 한지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살림에 대해 이전보다는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고 친정엄마의 손길로 가득한 부엌이 껄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홈쇼핑에서 샀다는 그릇 세트는 알고 보니 영국 고급 브랜드의 디자인을 따라한 것이었고, 사위와 딸이 다정하게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구입한 앞치마는 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것들은 엄마가 이루지 못한 로망에 가까웠다. 고급 그릇과 알콩달콩 주방 일을 함께 하는 부부의 모습.
지난 십 년 동안 친정엄마의 로망을 대신해서 살았음에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한 이유는 한 번도 살림을 나의 일부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전업주부를 전문직이 아닌 일종의 임시직으로 생각했다. 계약직 같은 것.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내 손길이 덜 필요할 때가 되면 사표를 던지고 다시 내 일을 찾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날만을 기다리며 십 년이란 세월을 살림에 매진하는 동안 어느새 이 일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상의 사소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거기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일.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 속에 사소한 도전과 창의성이 발휘되고 있다는 사실. 나만의 취향으로 점점 물들어가는 하루하루. 나는 내 살림을 사랑해 보기로 했다. 진정한 독립의 순간이 온 것이다.
남편에게는 근무복이 있고, 아이에게는 교복이 있고, 나에게는 앞치마가 있다.
독립은 내 취향의 앞치마를 구입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왜 하필 앞치마였느냐하면 옷은 그 사람의 태도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결혼식이 있어 원피스를 차려입고 구두를 신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우아하고 점잖은 행동을 하게 된다. 편안한 트레이닝복에 모자를 눌러쓴 날은 앉는 자세나 말투에도 편안함이 묻어난다. 앞치마는 집안일에 대한 나의 태도와 의지를 반영한다. '엄마'이자 '아내', '주부'라는 타이틀을 걸고 진지하게 집안일에 임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이자 엄마이자 아내가 되는 순간으로의 전환을 표현하는 의식이다. 일터와 휴식 공간의 구분이 없는 전업주부에게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는 순간과 가족을 위해 일하는 시간의 구분은 굉장히 중요하며 그 구분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나에게는 바로 '앞치마'인 것이다. 회사 유니폼을 입는 순간 아빠가 아닌 과장으로 변신하고, 교복을 입는 순간 철없는 아들이 아닌 학생으로 변신하듯 앞치마를 입는 순간 나는 온전한 나에서 '엄마', '아내', '주부'로 변신한다.
이십 대 시절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었다. 어학연수나 유학을 갈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직접 돈을 벌며 어학공부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선택한 것이다. 아직 일본어가 서툴었던 탓에 처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주방 일이었다. 집에서는 설거지 한 번 도와준 적 없었지만 나는 이 일이 꽤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유니폼으로 제공된 베이지색 상하의와 초록색 앞치마가 마음에 들었다. 타국에서 온 외국인이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에게도 사이즈가 꼭 맞는 유니폼을 제공해 주는 것이 고마웠고, 이 나라가 나를 내치지 않는다는 마음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매일 유니폼을 세탁하고 곱게 접어 가지고 다녔다.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국생활이 녹록지만은 않아서 눈물로 밤을 새우고, 외로움에 당장 집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유니폼이었다. 우울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탔다가도 유니폼을 입으면 고객과 동료들을 마주해야 했으므로 억지로라도 미소를 띠었고, 기분이 엉망이어도 일을 망칠 수 없다는 책임감으로 재료를 손질했다. 라면 하나 제대로 끓여본 적 없었지만 유니폼을 입으면 생전 처음 보는 아스파라거스나 아보카도 같은 야채들을 금세 손질했고, 파스타나 샐러드도 뚝딱 만들었다. 설지는 또 어떻고. 혹시나 어렵게 얻은 자리에서 쫓겨나 기라도 할까 더러운 접시가 눈에 띄기가 무섭게 놀라운 속도로 깨끗이 씻어버렸다. 덕분에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동료들은 스케줄표를 짤 때 너도나도 나와 함께 일하기를 희망했고 어느덧 그들만의 사적인 모임에 나를 초대할 만큼 마음을 열고 환대해 주었다. 한 번은 일본의 한 잡지사에서 내가 일하는 매장을 취재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 동료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매장 대표로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하고 일본 잡지에 실린 적도 있었다. 촬영이 예정되어 있던 전날 밤 가장 공들인 일은 피부관리나 헤어 메이크업이 아닌 유니폼을 빨고 다리는 일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그때 나를 버티게 한 건 단정하고 몸에 꼭 맞는 유니폼이었다. 그 옷을 입고 있을 때면 나는 자유롭게 세계를 누비는 씩씩하고 밝은 이십 대 청년으로 완벽히 변신할 수 있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균형을 추구한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불균형을 이루면 마음이 불편하다.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는데 이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은 생각을 바꾸는 것 혹은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생각과 행동 중 어떤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덜 수고로울까? 행동이다. 생각을 바꾸는 데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반면 행동은 지금 바로 바꿀 수 있다. 우울한 기분으로 출근했다가도 유니폼을 입고 억지도라도 미소를 띠는 순간(행동 변화) 그 일이 할만한 것으로 변했던 것처럼 말이다.
집안일이 너무 하기 싫고 무기력해지는 날이면 일단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 서보자. 내 몸에 잘 맞는 앞치마가 나를 일으켜 세울 테니까. 기왕이면 내 취향이 듬뿍 담긴 예쁜 앞치마라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