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Jun 11. 2024

집밥과 스토리

 미니멀을 추구하는 우리 집에서는 주방용품도 최소한으로만 구비하고 있다. 요리에 사용하는 냄비, 웍, 후라이팬을 다 합쳐도 여섯개가 전부다.


 파스타, 국수 등의 면을 삶거나 만두, 양배추, 호박잎 등을 찔 때 사용하는 24cm짜리 깊은 냄비 하나.

 라면, 국, 찌개 등을 끓일 때 사용하는 20cm 편수냄비 하나.

 각종 조림, 볶음 요리 등에 사용하는 웍 두 개.

 계란후라이, 간편한 부침요리에 사용하는 작은 후라이팬 하나.

 고기굽기, 부침개 등에 사용하는 큰 후라이팬 하나.


 원래는 사이즈별로 용도별로 훨씬 많은 냄비와 후라이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사를 할 때 가스레인지에서 인덕션으로 바꾸게 되면서 모든 냄비를 다시 사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당장 급하게 필요한 냄비만 우선 구매해서 사용하다보니 이걸로도 충분했고 일부러 짐을 늘리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이 자꾸 나를 연예인들의 주방으로 안내한다. 홍진경, 정재형, 성시경, 최화정 등. 요리도 요리지만 각자의 개성이 담긴 그들의 주방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평범한 음식을 만들어도 예술이 되는 과정에는 물론 조명과 카메라 빨도 있겠지만 조리도구도 한 몫 한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같은 국수를 먹어도 근사하고 화려해지는 손쉬운 방법 그것은 장비빨이다. 


 1인 화로가 있다면 딤섬 레스토랑에나 있을 법한 대나무 찜기가 있다면 고가의 냄비가 있다면 나의 요리도 달라질 수 있을까? 


 유튜브 속 제품들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다보니 한도 끝도 없이 가격이 올라간다. 이건 아니야. 

출처 : 유튜브 <안녕하세요. 최화정입니다> 영상 캡쳐

  

 요리를 잘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주방도구에도 관심이 많다. 꼭 비싼 물건이 아니더라도 그릇 하나, 물컵 하나에도 그들만의 사연이 있고 취향이 담겨있다. 그들의 요리에는 맛과 모양 뿐만 아니라 스토리가 있다. 


 맛집이 맛집이 된 이유 역시 맛과 멋 뿐만 아니라 그곳에 담긴 스토리 때문이다. SNS 속 사진과 입소문이 만들어 낸 이야기, 유명 연예인이 숨겨진 맛집으로 소개했다는 이야기 등 거기에서 시작된 나의 기대와 설렘이 모두 버무려져 맛있는 한 끼로 기억되는거다. 사실 맛 자체만 놓고 보면 소문난 맛집도 생각보다 평범할 때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집밥의 핵심도 장비나 객관적인 맛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족에게 집밥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며 글을 쓰 듯 요리를 해보면 어떨까. 단순히 삼시세끼를 떼운다는 생각을 버리고 말이다.


 오늘 내가 만든 한 끼는 아이 인생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힘든 일을 마치고 돌아와 위로를 받는 한 끼로 기억될 것이다. 집밥이 소중한 이유는 비싼 조리도구도 고급진 식재료 때문도 아니다. 그 가족만이 알고 있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