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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n 06. 2024

저녁식사와 자유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을 고른다면? 내 경우는 저녁이다. 저녁식사, 뒷정리, 샤워, 숙제 봐주기 등 남아 있는 할 일을 끝내고 빨리 쉬고 싶은 나와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가장 많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창가를 서성이는 아이.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아이의 마음도 함께 설레는 모양이다.


 "엄마, 나갔다 와도 돼?"

 "이제 곧 저녁먹을건데 먹고 나가."

 "조금만 놀고 올게. 다녀와서 먹으면 되잖아."


 다녀와서 밥먹고, 샤워하고, 숙제까지 하려면 시간이 넉넉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척 눈감이 준다. 일 년 중 밖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날은 생각 보다 많지 않다는 걸, 아이 인생에서 친구들과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은 생각 보다 짧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신난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놀이터로 향하고 곧 친구를 만나 마음껏 목청을 높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창가에서 바라본 놀이터 모습


 아이를 혼자 놀이터에 보내기 시작한건 1학년 때부터였다. 처음에는 험한 세상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되어 30분도 되지 않아 아이를 뒤쫓아 나갔다. 그런데 내가 나가서 도움이 되는 일이 없었다. 내가 없을 때는 낯선 친구들과도 곧잘 놀던 아이도 편한 엄마가 나타나면 엄마와 놀려고 들었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으니 초조한 마음에 아이에게 계속 집에 가자며 재촉했다. 그럼 아이는 입이 삐죽 나와서는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의 시간은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괄하면서.


 "엄마, 이제 나오지마. 나 혼자 놀고 올 수 있어."


 아이쪽에서 먼저 선전포고를 해왔다. 엄마에게도 분리불안이 있다고 한다. 아이는 엄마에게서 독립하고 싶어하는데 엄마가 아이를 놓치 못하는 경우. 문제가 되는 건 엄마의 불안이다. 엄마의 불안은 엄마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아이에게 불안을 해결해달라고 매달려서는 안된다.


 그래. 한번 믿어보자.


 손목시계를 채워주며 7시까지는 올라오라고 단단히 이른다. 그리고 창가에 앉아 아이의 해맑은 모습을 바라본다. 잘 놀고 있구나. 목이 마르면 관리사무소에 들려 물을 마시고 화장실이 급하면 주민공동시설에 가고. 어떤 날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낯선 이웃이 아들이 참 예의가 바르다며 아들과의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아이의 세계는 내가 걱정했더 것 보다 훨씬 단단하고 단정했다.


 이제 나는 놀이터에 가고 싶다는 아이를 쿨하게 보내준다. 할 일이 태산인제 언제까지 놀거냐며 잔소리를 하거나 빨리 들어오라고 아이를 재촉하는 대신 나만의 자유를 즐긴다. 나 혼자 저녁식사를 하며 든든히 배를 채우고 잠시 뒹굴거리거나 책을 읽으며 에너지를 비축한다. 아이와 남편이 먹을 식사는 데우기만 하면 되게끔 준비해놓고 말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에 아이와의 한바탕이 일어나기 전 잠시 숨을 돌린다. 아들을 통제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싶은 내 자신을 통제하며 잠자리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팩도 하나 올려놓고 호사를 누린다.  


 아이는 자유롭게 놀아서 좋고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니 좋고.


저녁밥상을 차려두고 덮개로 덮어둔다.


 실컷 놀고 돌아온 아이는 평소보다 집중력이 높아진다.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고 온 덕분이다. 책을 집어들어 한참을 읽고 자기도 빨리 끝내고 싶은지 수학문제집 풀이도 척척이다. 그럼 나도 남편과 아이가 먹은 그릇은 잠시 모른척하고 아이 곁에 앉아 숙제를 봐준다. 숙제를 마친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자기가 봐도 지저분한지 시키지 않아도 샤워를 하겠다고 옷을 벗는다. 그럼 슬쩍 아이를 샤워실에 들여보내고 그 사이 저녁먹은 그릇을 정리한다.


 아이를 내 마음대로 통제하려 할 때마다 벌어지는 싸움도 이런 날은 조용히 넘어간다.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마무리 된 하루는 잠자리까지 이어진다. 서로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고 따뜻한 눈빛을 나누며 기분좋게 잠이 든다. 매일 매일이 오늘만 같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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