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아리 Nov 28. 2024

괜찮은 학생 뒤엔 언제나 괜찮은 학부모가 있었다.

선생님은 어떤 학생을 만나고 싶을까요?

아이와 나. 내가 항상 더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이유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어떤 선생님을 만날지 기대하는 만큼, 혹은 어쩌면 그보다 더, 선생님도 어떤 학생을 만날지 기대한다. 어떤 학부모를 만날지 기대한다.


선생님이 만나고 싶은 학생은 어떤 학생일까?

공부를 잘하는 학생?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학생?

조용한 학생?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믿고 따라오려는 의지를 가진 학생을 원한다. 다시 말해, 선생님을 신뢰하는 학생을 만나고 싶다.


공부를 못해도, 친구와 종종 갈등이 있어도, 시끄럽고 산만해도, 교사의 지도를 따르고 개선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진짜다. 그 어떤 학생도, 특히 1학년은 더욱이, 모든 면에서 완벽한 학생은 없다. 그러나 문제를 개선하려면, 교사의 지도를 따라야 하고, 그러려면 교사에 대한 신뢰가 우선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신뢰도는 언제나 학부모들의 교사에 대한 신뢰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학부모가 교사를 믿고 존중하는 만큼, 학생들도 교사를 믿고 신뢰한다. 쉽게 말해, ”너네 선생이 뭐라니?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없다.“는 부모 뒤에 교사의 지도를 따르고 문제 행동을 개선하려는 학생도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선생님이 만나고 싶은 학생은 언제나 선생님이 만나고 싶은 학부모의, 자녀이다. 괜찮은 학생의 뒤에 좋은 학부모가 없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물론 아쉽게도 참 괜찮은 학부모 아래 덜 성숙한 학생은 종종 있었다.)




3월이면 학부모 총회를 한다. 1학년이니만큼 많은 학부모님들이 참석한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반짝이며 내 말에 연신 끄덕이며 무언의 긍정을 보내는 학부모와, 팔짱을 끼고 어디 한 번 너의 교육관을 들어나보자며 비스듬한 자세로 앉아있는 학부모가 있다.


신기하게도, 그 학부모들이 나를 보는 눈과, 그 학부모들의 자녀들이 나를 보는 눈이 참으로 닮았다. 수업 시간에 앉아 있는 모습이, 학부모 총회에서 내가 하는 말을 듣는 학부모의 자세와 놀랍게도 일치한다.


몇 해 전 3월, 학부모 총회에서 참으로 단정해 보이던 학부모 한 분이 총회가 끝난 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가 많이 부족하니 잘 부탁드린다며, 많이 가르쳐달라는 말을 남기고는 가셨다. 실제로 아이는 꽤나 산만했고, 학습적으로도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1학년이 끝나갈 무렵, 그 아이는 누구보다 괜찮은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 아이가 성장한 덕분일까? 내가 잘 가르친 덕분일까? 나는 확신한다. 교사의 지도를 따르겠다는 확신을 보여준 학부모님의 의지 덕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