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사람에게는 기회가 보인다
피하고 싶던 문 앞에 서는 순간, 뜻밖에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피하고만 싶었던 문이 있었다. 그 문이 열리며 내 인생은 달라졌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대타’라는 이름의 기회였다.
십여 년 전 어느 금요일 저녁, 여의도 선착장 근처를 혼자 산책하고 있었다. 밤공기가 유난히 상쾌하다고 느낀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가톨릭 모임에서 알게 된 가톨릭신문사 주정아 기자였다.
“쓰기로 한 작가가 급한 사정이 생겨서 대타를 찾고 있어요. 평신도 잡지 '평협소식'에 이번 주말까지 원고가 필요해요. 주제는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꼭 써주세요.”
반가운 원고청탁이었지만, ‘신앙 글쓰기’라는 말에 난색을 표했다. 방송원고야 많이 써봤지만, 신앙 이야기는 다른 세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 신심이 부족하고, 써본 적도 없습니다”
정중히 거절했는데, 주 기자는 끈질겼다. 결국 나는 ‘반승낙’ 해버렸다.
신앙심이 깊은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단호하게 자르란다.
“신앙 글은 아무나 함부로 쓰는 거 아닙니다. 특히 신부님에 대해서는요.”
틀린 말은 아닌듯하다. 그런데도 난 그만 글 쓰고 싶은 유혹 앞에 주저앉았다. 신앙 글쓰기가 나의 부족한 신앙심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첫 글은 여의도동 성당 미사 때 들은 '최선웅' 주임 신부님의 강론을 주제로 삼았다. 그 글을 시작으로 인연이 이어졌다. 가톨릭신문 '일요 한담'에 두 달 연재했고, 가톨릭잡지 <참 소중한 당신>에는 '사랑의 커뮤니케이션'을 30회 넘게 실었다. 서울대교구 <서울주보>의 ‘말씀의 이삭’도 한 달 연재했고, 가톨릭평화신문의 <평화칼럼>을 2년 동안 쓰기도 했다. 영어 웹진 <SIGNIS Asia Focus>엔 1년에 네 편씩 고정 기고를 3년 동안 했다.
처음엔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는데, 몇 번 쓰고 나니 그 마음이 무뎌졌다. 때로는 내 신앙생활에 비추어 어쭙잖은 이야기 하면서도, 계속 썼다. 그 긴 여정의 시작이 ‘대타’였다니, 주님의 뜻은 알기 힘들다.
방송에서도 ‘대타’가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DJ가 사정이 생겨서, 하루 대타로 출연했다가 실력을 인정받고 그 자리를 꿰찬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자리를 빼앗길까 봐 대타를 철통같이 막는 사람도 있다. MBC 라디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 쇼>의 김혜영 씨는 방송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결혼식 날에도 면사포 쓰고 방송했고, 출산 후엔 산후부기도 빠지기 전, 마이크 앞에 돌아왔다.
예술계에서도 전설적인 ‘대타 인생 역전’이 있다.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원래 첼로 연주자였다. 시력이 약해 악보를 못 보니까 모든 곡을 외워서 연주했단다. 어느 날 공연 시간에 지휘자가 갑자기 나타나지 못했다. 공연의 모든 악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았다. 단원들이 모든 악보를 외우고 있던 토스카니니를 추천했고, 그는 지휘를 완벽하게 해내며 세계적인 명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쁜 시력이 나를 지휘자로 만들어주었다.”
나도 따라 해 본다.
“부족한 신앙심이 나를 신앙 필자로 만들어주었다.”
모든 대타가 기회로 연결되진 않는다. 준비가 안되면 놓치거나 삼진아웃 당하기도 한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뜻밖의 대타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조건이 아니라, 부족함을 껴안고서라도 기꺼이 그 자리에 서려는 용기다.
내게 부족한 신앙심이 문을 열었듯,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부족함이 길을 열 것이다.
끝내 닫힌 듯한 문 앞에서조차, 인생은 다시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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