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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D Jun 24. 2021

네 살 딸을 잃어버린 날

발레슈즈가 준 교훈


2021년 3월 5일을 기록하다



불과 어제 있었던 이 사건에 대해서 글로 남겨야 하는지에 대해 잠시 고민도 했지만 쓰기로 했다.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하고 언제고 열어 상기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제 4살이 된 딸 J에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 문화센터 수업을 등록했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걱정도 됐지만 언제까지 곰이 동면하듯 지낼 수만은 없었다.

소규모 수업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그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어제는 J가 문화센터 방송댄스 수업을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사실 J는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춤을 배운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공동육아를 하고 있는 쌍둥이 언니의 딸 S는 춤과 노래를 즐기는 타고난 흥부자꾼인데, 넘치는 에너지 발산을 위해 방송댄스 수업에 등록했다고 했다.


5세부터 참여가 가능한 수업이었지만, 1월생인 J가 일주일에 한 번 신나게 엉덩이만 요리조리 흔들고 와도 좋겠다 싶어 함께 등록하게 되었다.


이날은 조카 S의 유치원도 첫날이라, 하원 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도 들르지 못하고 두 아이를 황급히 교실로 들여보냈다.






개강 날이라 문화센터 복도는 교실을 찾는 엄마와 아이들로 꽤나 붐벼 서 있을 틈이 없었다.


그나마 교실 출입문에 자그마한 유리창만으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엄마들은 손바닥만 한 유리창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는데, 돌아가며 아이가 잘하고 있는지 한 번씩 들여다볼 수 있는 게 다였고, 그나마도 엄마들이 눈치를 보며 서로 양보하고 있었다.


복잡한 복도에 서 있을 수 없어 쌍둥이 언니와 서로 교대로 살피기로 하고 바로 옆 카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가서 교실 안을 힐끔 쳐다보았는데 조카 S가 안 보이는 것이다.

'왜 없지?' 하며 혼잣말을 했는데 앞에 서 있던 엄마가 아이 한 명이 화장실을 갔다고 말해주었다.


어쩐지 맨 뒤에 서서 엉덩이를 잡고 있길래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는 듯 보였었다.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 보니 문화센터 직원분이 S의 손을 잡고 나오고 있었다.

직원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다시 교실로 들여보냈다.


아이만 참여하는 수업을 처음 해보는 터라 아이들만 있는 수업에서는 이런 상황에 직원분이 도와주시는구나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뒤 몇 번을 언니와 교대로 교실을 들여다보니 처음엔 어수선하던 수업이 분위기가 꽤 잡혀 곧잘 따라 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대견스러웠다.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 쌍둥이 언니에게 아이들을 데려 오겠다고 이야기하고 교실 앞으로 갔는데 사건은 이때 시작되었다.


이번엔 J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언니들을 따라 하다 힘들어 한쪽 구석에 앉아있나 싶어 작은 창으로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잠깐 사이에 어딜 갔단 말인가? 수업에 방해가 될까 싶어 잠시 망설이다 문을 열었다.



강사님은 "무슨 일 있나요?" 물었고,


나는 "제 딸이 안 보여서요."라고 대답했다.



잠시 쉬는 시간을 주었는데, 아이들 몇 명과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우르르 나갔다 왔다는 것이다.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화장실로 뛰어갔다.

칸 마다 문을 열며 이름을 불러 봐도 J는 없었다.


혹시 화장실을 데려간 직원분과 엇갈렸을까 싶어 데스크로 뛰어가, 화장실 데려간 아이가 있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눈앞이 하얘지고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J는 똘똘했지만 이제 막 네 살이었다.


애써 정신줄을 부여잡고 이름과 나이, 인상착의를 적어 방송을 부탁하고 무작정 뛰었다.

마트가 떠나가라 이름을 부르며 혹시 모를 구석진 곳까지 샅샅이 살폈다.


검정 상하의 추리닝을 입은 네 살 여자아이를 보셨냐고 지나가는 사람, 서 있는 직원을 일일이 잡고 모두 물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귓 가에는 J를 찾는 방송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뛰어지지 않았지만, 뛰고 또 뛰었다.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을 J를 생각하니 눈에서 눈물이 절로 흘렀다. 층마다 구석구석 돌고 돌아도 J는 없었다.



짧은 순간에 나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시 문화센터로 돌아가 보니, 쌍둥이 언니는 조카 S의 손을 잡고 J의 이름을 부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2층인 문화센터에서 무빙워크를 타고 혼자 다른 층으로 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직원 아무에게나 CCTV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하고, 다시 찾아보기 위해 강의실 복도를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그러고는 교실마다 안을 들여다봐가며 찾아 헤맸다.


댄스 수업을 했던 맞은편 교실을 들여다보는데, 분홍색 발레복을 입은 여자아이들 사이에 검정 추리닝을 입은 아이 한 명이 서서 발레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다.



J였다.



나는 이미 정신이 나가 있었기 때문에 수업 중에 교실로 들어갔다.


"J야! 너 왜 여기 있어?"


J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수업 중에 당황한 발레강사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했으나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J의 손을 잡고 복도로 나오니 여기저기서 찾았다는 소리가 들렸고, 쌍둥이 언니도 한 걸음에 달려왔다.


그 자리에 서서 나는 안도의 눈물이 펑하고 터져버렸고, 옆에 선 J는 영문도 모르고 우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 쌍둥이 언니가 남편한테까지 연락을 했는지 막 도착을 했다.






찾았으면 되었다.

제일 잘못한 사람은 나였다. 복도가 복잡하든 어쩌든지 그 앞에 내내 서있어야 했다.


어떻게 낳았는데 귀하고 소중한 내 딸을 잃을 뻔했다.


걱정이 되어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다른 엄마들도 함께 딸을 찾아주었고, 문화센터 직원에 점장님까지 모두 J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했다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서야 알았다.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J에게 왜 발레반에 들어가 있었냐고 물었더니, 원장님이 그리로 가라고 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J는 검정 추리닝 차림에 분홍색 발레슈즈를 신고 있었다.


자유복에 실내화가 준비물이었는데 실내화가 없어 발레슈즈를 신겨 들여보낸 것이다.


실내화는 아직 배송 중이었고, 쌍둥이 언니가 여분의 실내화가 있다고 챙겨 온 신발이 바로 발레슈즈였다.


발레슈즈를 신고 복도에 서있으니, 누군가가 첫날이라 발레복을 준비 못하고 발레슈즈만 신고 온 줄 알고 발레교실로 J를 들여보낸 것이다.


J는 선생님이 이리 오라고 하니 가서 성실히 발레를 따라 한 것일 뿐이었다.


이렇게 되려고 보니 여러 가지 상황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하필 왜 발레슈즈를 챙겨 왔냐고 쌍둥이 언니에게 소리를 쳤고, 자기는 한 소리 들어도 싸다며 거듭 사과를 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1분이 1년 같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에 J를 재우면서, 만약 아직도 찾지 못했다면 이렇게 따뜻한 집에서 누워있기는커녕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을 텐데 하며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말 안 듣는다고, 밥 잘 안 먹는다고 혼을 내는 일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했을까?


그냥 이렇게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존재 자체가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고, J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이번 경험을 통해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평소에 안전 민감증이며, 살피고 또 살피는 성격이다. 그런 나도 이렇게 호되게 혼났다.

혼나도 싸다고 생각한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이런 일이 절대 생기지 않도록 대비를 재차 하게 되었다.


수업은 취소했고, 경찰청 안전드림 앱에 J의 신상정보를 업데이트했다.

똘똘한 J는 엄마 이름, 주소, 엄마 휴대폰 번호까지 모두 외우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소용없었다.


엄마인 내가 더 기민하게 살피고 방심하지 않는 것만이 최악의 상황이 생기지 않게 해 줄 것이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운 딸을 바라보며, 이렇게 함께 있음이 감사하고 또 감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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