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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D Jul 10. 2021

제주의 첫 우리 집을 소개합니다!

한달살기 신고식을 치르다



"나 무지 튼실하게 지어졌지?"



제주에서 머물 우리 집의 첫인상이었다.

황토와 나무로 튼튼하게 지어진 복층의 통나무집!


앞마당에는 누런 잔디밭이 널찍하게 펼쳐져 있고 제주답게 담벼락도 대문도 없다.

현관으로 올라가는 몇 개의 나무계단 옆으로는 빨간 집 모양의 기울어진 우체통이 나 좀 세워달라 말을 걸고 있었다.


우리 두 가족이 한 달 동안 지내기엔 너무나 훌륭한 독채였다.

현관문을 열자 강풍에 문이 훽하고 열려 깜짝 놀랐다. 제주의 바람이 실감되었다.

쌍둥이 언니는 문을 잽싸게 잡은 상태로 서둘러 들어가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 중문을 열자 중간중간 집을 받치고 있는 통나무 기둥이 나오고,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의 향이 콧 속으로 들어온다.


우리 한 달 동안 산림욕 하는 건가?

다 둘러보기도 전에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1층에는 침대방 두 개와 화장실, 널찍한 주방이 있고,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자 손님을 위한 방과 화장실이 보인다. 언젠가 전원생활을 한다면 꿈꿔 볼 그런 집 같았다.



“와! 너무너무 좋다!!”



흥분한 나의 반응에 쌍둥이 언니가 대답한다.


“나 일주일 동안 집만 치웠다!”


쌍둥이 언니네 가족이 제주로 먼저 떠나고, 일정이 남아있는 우리 가족은 일주일 뒤에 제주로 출발했다.

정확히 말하면 쌍둥이 언니는 한 달 살기, 나는 삼주 살기를 했다.


오랜 기간 비워져 있던 집을 정비하느라 딱 봐도 힘들었을 것 같았다.

먼저 출발한 쌍둥이 언니는 제주에 도착해서 많은 것들을 준비해두었다. 이때부터는 신입 제주댁으로 변신하게 되는데, 도착해서 자신의 양말 바닥을 찍어 내게 사진으로 전송했다. 언니의 까만 양말 바닥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쌍둥이 언니가 제주에 도착한 날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한국인에게 의식주만큼 중요한 것이 와이파이일 것이다. 기존에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속도가 너무 느렸다.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형부를 위해 인터넷 속도를 업그레이드하는 일이 제주살이의 첫 임무였다.


아무리 남쪽하더라도 거센 바람이 부는 주의 추위는 대단했다.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것 중 하나가 난방이었는데 기름(석유) 보일러로 되어있었다.


쌍둥이 언니가 도착한 첫날, 비워져 있던 집을 데우기 위해 보일러를 작동시키자 계기판에 바로 깜박깜박하며 불이 들어왔다. 연료 부족이었다. 세탁실 옆에 보일러실이 있었다. 기름보일러 통 옆에 연료가 얼마큼 남았는지 볼 수 있는 투명한 호스가 달려있는데 2~3센티 정도의 유가 남아있었다.


보일러 옆에 붙어있는 00 석유에 전화를 하자 주유소에서 볼 수 있는 기름차(탱크로리)가 마당에 도착하고 19만 원을 주고 한 드럼을 채웠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고 쌍둥이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기름 넣은 지 3일밖에 안되었는데 또 연료 부족에 불이 들어왔어.”


사용법을 잘 모르는 데다가 사람이 없는 2층의 보일러까지 모두 작동되어 연료가 빨리 닳은 것이었다.

결국 해외에 계시는 큰어머니께 연락을 해 2층의 보일러 잠그는 법을 여쭈어보고 집 밖을 한 바퀴 돌아 밸브를 찾아 잠갔다.


그날부터 우리 가족이 도착할 때까지 옷을 껴입고 살았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들과 한 달을 살아야 하는데 기름을 안 넣을 수 없기에 내가 도착하기 전 또 한 드럼을 넣었다고 했다. 한 말이 20리터, 한 드럼이 200리터인데 많이 쓰긴 했다. 쌍둥이 언니는 보일러 연료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내게 아주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저녁과 아침 한 시간만 보일러를 틀고 한 달 내내 옷을 껴입고 살았다.


천정이 높은 복층의 집은 좀 춥긴 했다. 이때 바리바리 싸온 온수매트가 빛을 발했다.

기존에 있던 온수매트 1개와 챙겨 온 것 까지 3개의 매트로 옹기종기 모여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돌아오기 일주일 전 알게 된 사실인데, 큰어머니와의 통화에서 거실에 있던 에어컨인 줄만 알았던 것이 냉난방기라는 걸 알았다. 미리 알았더라면 공기라도 좀 훈훈하게 데웠을 텐데...






우리가 해외에서 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하나하나 직접 해결해나가며 새롭게 적응한다는 것은 참 묘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제주살이는 어설프게 시작되었다.


아이들과 함께이기에

순간순간 행복하고 순간순간 힘들었다.



그럼에도 비가 오면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소리를

집 뒤편의 이름 모를 높은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려 쏴하고 내는 소리를

가끔 그 길로 줄 지어 뛰어가는 말발굽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맞아, 여기 제주잖아.

그것만으로도 되. 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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