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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D Jul 11. 2021

제주 공동육아의 루틴

지금에 집중할 수 있는 단순함으로



“으앙~~ 어엄~~~마~~~”




비상이다!


새벽 3시, 딸 J의 울음소리가 집안 전체로 울려 퍼진다. 어둠 속에 다급히 애착 가제수건을 찾아 J의 손에 쥐어준다.


잠시 그치는가 싶더니 더 목청껏 울어댄다.

맞은편 방에선 울음소리에 놀란 조카 S도 따라 울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공동육아를 하고 있지만 당연히 밤에는 각자의 집에서 잔다. 그러나 한달살기를 하면서 공동육아 한 집살이가 되어버렸다. 낮잠시간에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잠든 새벽시간이다.

이모부, 이모 할 것 없이 돌아가며 안아보아도 J의 울음은 쉬 그치지 않는다.


아무리 아이 키우는 같은 부모이고 자매라 해도 미안함이 밀려온다. 이렇게 한번 잠에서 깨고 나면 아이들을 다시 재우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피곤은 한데 잠은 저 멀리 달아나고 만다.


아직 두 돌이 채 안된 J의 새벽의 이유 없는 울음은 원더 윅스라고 밖에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 원더 윅스(Wonder weeks)란 아기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급성장하는 시기로 평소보다 더 많이 울고 보채는 시기를 말한다. 부모라면 그 누구라도 겪게 되는 이 시기가 어서 지나가기를 함께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육지에서나 섬에서나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SNS 속 제주 라이프를 즐기는 연예인처럼 우아한 삶을 기대한 건 아니었으므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우리 모두는 새벽에 한바탕 깼다가 다시 잠들어 아침 8시에 일어난다.


아직 잠이 덜 깨 누워 있는데 문 밖으로 잠이 없는 조카 S가 종알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후 우리 방으로 우다다다 달려와 J를 신나게 깨운다. 둘은 서로 깨우고 깨우는 신기한 사이이다.


이렇게 제주의 아침은 시작된다.

길게 쭉 뻗은 거실로 나와 우당탕탕 100미터 달리기를 해도 말리는 사람도 혼내는 사람도 없다.


집이었다면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제주의 집에서는 가능했다.


눈만 뜨면 아이들은 신이 났다. 장난감이 없어도 새로운 집은 미지의 놀이동산이었다. 그 모습에 우리 자매도 제주에 잘 왔다는 마음인 것이 눈빛만으로 통한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전날 생선구이기에 구워놓은 고구마와 압력밥솥에 구운 달걀, 시리얼 등으로 간단히 조식을 먹는다.


J는 껍질 벗기는 재미와 쫄깃한 달걀흰자의 매력에 빠져 참 잘도 먹는다. 우리가 제주에 있는 동안 달걀을 거의 5판 정도는 먹지 않았나 싶다.


물론 감귤은 기본 세팅이다.

조카 S는 고사리손으로 귤껍질을 살살 벗겨 한 개씩 떼어내 오물조물 먹다가 감질이 나는지 한 입에 다 넣어버린다. 앉은자리에서 서너 개를 먹는다. 이천 원이면 어디서든 한 바구니 가득 담아 살 수 있다.


호텔 조식이 부럽지 않게 하루를 시작다.






식사 후 형부는 재택근무에 들어가고 이제 아이들과 우리의 시간이다.


여기에서 우리란 아이 둘, 엄마 둘, 그리고 홍콩 이모를 가리킨다.

홍콩 이모는 홍콩에서 유학 중인 대학생 사촌동생으로, 학기 중에 홍콩 시위가 심해져 잠시 귀국했다가 출국하지 못하고 한국에 머물고 있다. 더불어 J의 아빠는 연말인지라 한 주 뒤에 연차를 내서 오기로 되어있었다.



아이들과 움직이는 것은
생각보다 욕심을 내려놔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하루에 한 곳만 가기로 했다.

겨울이기도 했고 아이들의 컨디션을 고려해야 했으므로, 2박 3일 놀러 와 최대가성비 놀고 가야 하는 관광객 모드는 내려놓았다. 한달살기는 우리에게 일탈이었지만 일상의 연장이었다.


제주라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되도록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해보기로 했다. 한달살기 오기 전에 무료입장 또는 할인이 되는 카드를 미리 만들어와서 여러 번 유용하게 쓰기도 했다.



식사 후  나갈 채비를 한다.

차의 뒷좌석에 나란히 카시트 두 개를 설치해 아이들을 앉히고 그 사이에 홍콩 이모인 뽕이 이모가 앉는다. 엄마 둘은 앞좌석에 앉아 서칭과 운전을 교대로 한다.


집 근처엔 좋은 곳이 많이 있었다.

하루 한 가지만 하더라도 다 못할 정도로 무궁무진한 제주였다.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고, 휴양림과 숲길, 감귤농장, 국립 박물관 등 근처의 볼거리를 찾아다녔다. 조금 거리가 있는 곳은 차 한 대를 추가로 렌트해 아빠들과 함께 다녔다.


겨울의 제주는 오랫동안 밖에 머물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한 군데 둘러보고 맛집에서 훌륭한 점심 한 끼를 하기도 하고, 간단히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었다.


제주의 일상은 가족과 주말을 보내는 평범한 하루와 비슷했지만 확실히 장소가 주는 특별함이 있었다.






외출 후 4시쯤 돌아와 잠시 쉬었다 저녁 준비를 한다. 관광지이다 보니 제주의 물가는 비싼 편이라 주로 집밥을 먹게 됐다. 그렇다고 육지처럼 배달음식이 활성화된 것도 아니었기에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제주의 밥상은 우리에겐 특별했는데 쌍둥이 언니가 준비해온 야심작 생선구이기 덕분이었다.

집에서는 연기와 냄새로 자주 먹기 힘들었던 생선을 아이들에게 실컷 해주겠다는 계획이었다.


집 근처 시내의 마트에서 자주 구입하게 되었는데 신선함에 놀라고 가격에 또 놀라게 되었다.

당시 육지의 마트에서는 중간 크기의 해동 삼치 한 마리에 8천 원 내외였다. 제주의 마트에서는 할인 전 가격도 아닌 정상가의 생물 삼치가 3천 원이었다.


우리는 베란다에 생선구이기를 두고 거의 매일 생선을 구웠다.

살짝 씻어 굵은소금을 뿌려 잠시 재워두었다가 생선구이기에 올려두면 끝이었다. 열선이 위아래로 있어 30분이면 기름은 쫙 빠지면서 노릇노릇하게 맛있게 구워져 나왔다. 육지에서는 비쌌던 제주갈치부터 고등어, 삼치, 백조기, 옥돔, 도루묵, 이름 모를 생선들까지 다양한 생선을 맛보았다. 질리지 않고 원 없이 생선을 먹었던 한 달이었다. 물론 어른도 아이들도 평소보다 두 배로 밥을 많이 먹었다.






엄마 둘이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아빠와 뽕이 이모는 아이들과 놀아준다.

식사 후에는 돌아가며 설거지 담당을 맡고, 남은 인원은 거실 정리와 아이들 목욕을 맡는다.

개킬 빨래가 있다면 그것 또한 챙겨야 한다.


제주에서 힘들었던 것은 가사노동이 많았다는 점이다.


3대 이모님으로 통하는 식기세척기, 건조기, 로봇청소기와 같은 문명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는 점도 한 몫했다. 건조기와 로봇청소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두 가족의 한 끼 설거지 양은 어마어마했다. 제주의 물이 좋아서인지 그릇을 닦고 닦아도 미끄러웠다. 그러다 보니 설거지 시간이 오래 걸려 힘들었다.


그래도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놓으면 건조한 집안의 습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함께 한 가족들이 나누어하지 않았다면 제주까지 와서 가사노동만 하다 돌아오지 않았을까 싶다.



식사와 정리를 마치고 나면 저녁 9시 정도이다.

겨울이라 해도 짧고, 제주의 밤은 더욱이 칠흑같이 어둡다. 창밖으로는 이웃집 창문의 불빛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하는 수 없이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데 무게와 부피 때문에 책을 몇 권 가지고 오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근처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었지만 한 달 동안 도서관에는 가지 못했다.

아쉬운 데로 자장가를 들려주며 오늘 어땠는지 내일은 뭐할지 대화를 주고받다 잠자리에 든다.


밤 열 시가 되기 전에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이때부터는 비로소 엄마들의 시간이다.



제주의 하루는 대부분 이렇게 저물었다.


비록 집안일은 늘었지만 삶이 더 단순해진 느낌이었다. 아날로그적인 삶을 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제주 한달살기가 좋았던 이유 중 한 가지는

무엇을 꼭 해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지금에 집중할 수 있는 단순함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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