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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D Jul 11. 2021

우리에게 함박눈을 선물한 날

제주 한달살기를 마치며


겨울 제주의 밤은 일찍 온다.

오후 다섯 시 반이면 금세 어둑해져 집 주변이 온통 캄캄하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고요한 엄마들의 시간이 온다.


저녁식사 후에는 집안일을 나누어하게 되는데 주로 아빠들이 설거지와 뒷정리를 담당했다.

그러면 쌍둥이 언니와 나는 쓰레기봉투를 차에 싣고 함께 외출을 했다. 제주도는 클린하우스라는 정해진 곳에 종량제 및 분리수거 쓰레기를 배출해야 한다. 처음엔 이걸 몰라서 쓰레기를 차에 싣고 동네를 뱅글뱅글 돌기도 했다.


그러고는 동네 마트에 들러 마감 세일하는 방어회 한 접시를 싼 가격에 사 오기도 하고, 동문 야시장을 구경하기도 했다. 제주의 밤은 왠지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쉬웠다. 우리는 싱싱한 회 한 점에 한라산 소주 한 잔을 기울이기도 했는데 이 순간만큼은 섬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시간엔 주로 오늘 어땠는지 내일은 어떤 일정을 보낼지 이야기했다.

어떤 날은 어릴 적 추억을 안주 삼는 날도 있었는데 빠듯했던 일상을 떠나오니 이런 여유로운 일탈의 시간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들은 옹기종기 모여 여러 가지 것들을 함께 나누었다.


한 달이 다 될 무렵에는 벽에 전지를 붙여 그동안 다녀온 곳을 모아 <제주 발길, 제주 맛길>로 정리하기도 했다. 하루는 2020년 새해를 제주에서 맞으며 한 해를 돌아보고 잘한 일, 아쉬웠던 일, 감사한 일을 기록하고 이야기했다. 또 2020년 자신의 키워드를 뽑아보고 버킷리스트, 가져야 할 것, 버려야 할 것을 적었다.


2021년이 되어 사진으로 이 다짐들을 읽으며 이룬 것이 별로 없음을 재차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지만 제주가 아니었다면 함께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 해를 계획할 수 있었을까?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본다.


원래 집을 떠나 여행을 가면 엄마들은 더 바쁘고 힘들다.

그렇더라도 함께 오늘을 얘기하고, 내일을 같이 그릴 수 있는 서로가 있어 즐거웠던 날들이었다.




제주에서 한달살기를 마치고 떠나던 날



그동안 한 번도 내리지 않았던 눈이 원 없이 펑펑 내렸다.

아이들 썰매를 태우겠다고 2인용 썰매를 3개나 사 가지고 왔다가 다시 가져가는 참이었다.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집에 못 오는 줄 알았다. 아이들은 난생처음 눈을 만져보며 신기해서 눈이 휘둥그레 졌다. 공항으로 가는 콜택시를 기다리며 아쉬움에 작은 눈사람도 함께 만들어보았다.


그렇게 잘 가라고, 또 오라고, 인상 깊은 제주의 마지막 날을 선물해주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아이들은 제주에서의 한 달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기억이 안나는 것은 당연하다. 사진을 보여주어야 제주에 함께 갔었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그때의 좋았던 느낌, 감정만큼은 아이들의 온몸에 남아있을 것이다.


나중에 우리 비행기 타고 어디 갈까?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제주도라고 답한다.

마치 비행기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제주도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면 개고생 200%를 확정 예약 짓더라도 우리는 다시 떠날 것이다.



아이들과 즐거웠던 제주의 낮도

엄마들에게 주어진 오롯한 제주의 밤도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지금

그때의 일탈이 일상 속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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