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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8. 2024

도시 청년, 무작정 시골에 오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1일차~3일차 

1.

올해 2월, 대학교를 졸업하게 된 나는 앞으로가 막막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2024년이 지나가면 어떡하지. 불안을 없애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실천하는 것이었다. 행동해야 불안하지 않다. 일단 올해는 반드시 바다에서 헤엄을 치며 지내리라 다짐했기에 해녀학교에도 지원서를 넣었고, 워킹 홀리데이 비자 신청도 해두었다. 취업을 하는 대신 다른 곳으로 떠나 새로운 생활을 해보고 싶었고,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동물의 숲 라이프"라는 목표에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2.

열정 하나만 믿고 해녀 학교에 합격했다가 덜컥 붙어버렸다. 꿈에 그리던 제주 입도라니. 1초 정도 신났지만 정말 1초뿐이었다. 그 이후는 완전히 새로운 걱정과 새로운 불안뿐이었다. 가서 먹고, 자고, 나를 감당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해 나가려니 막막했다. 독립 못하겠어요,라는 약한 마음이라기보다 해녀 학교와 가까운 곳에 일단 일자리가 없었다! 숙식을 제공받으려면 일에 제약이 너무 많이 발생했다. 학교 근처 기숙사를 이용하자니 출퇴근이 문제였다. 일만 따로 구하고 보자니 정규직만 뽑았다.


4개월만 지내다 올라와야 함. 비건이므로 취사가 가능해야 함. 해녀 학교와 거리가 멀지 않아야 함. 숙식과 생활비를 모두 충당할 수 있어야 함. 일련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모 다이빙 샵에서 근무 연락을 받았지만 학교와 거리가 멀어 등하교가 문제였다. 현실적인 장애물이 너무나도 많았다. 낭만을 쫓아 살겠다곤 했지만 낭만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것들이 무지하게 많았다. 어디에 가든 책임감 있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그러기 전에 내가 나를 책임져야 했다.




3.

사실 원래 계획은 제주에서 진행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합격하고, 농촌살이 기간 동안 해녀학교를 병행하는 것이었는데 보기 좋게 틀어졌다. 올해는 제주 지자체에서 농촌 살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았다. 와, 망했는데. 왜 올해부터 정책이 바뀐 것인지 모르겠다. 신이 나를 돕는 건지, 놀리는 건지.


그러다가 다른 지역으로 농촌에서 살아보게 될 기회가 생겼다. 신은 자기를 돕는 자를 돕는다더니, 필요할 때는 척척 길을 내어주신다.


그리하여 나는 땅 끝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인천 터미널에서.





4.

차도 면허도 없이 무작정 시골로 향했다. 솔직히 자차가 없어서 어떻게 가야 할지도, 가서 진행되는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하지만 차가 없어도 괜찮다는 말에 용기 내어 가보기로 결심.


첫날은 도착해서 입소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HidUoKPNCoU

틈틈이 유튜브로 영상을 남겨보고자 이것저것 촬영했다.

촬영하면서 느낀 건, 내가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기보다 커트감인지 아닌지, 카메라 앵글이 잘 나오는지 아닌지를 체크하다 보니 현타가 온다는 점이다. 유튜브 어떻게 하는 거지. 인생을 보여주기 위해 쇼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사진도 잘 안 찍는 내가 영상이라니.

하지만 영상 편집 정도는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았고, 이 기회에 연습해 본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사실 나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내 대안적인 삶의 방식 (반농반어 이야기, 자급자족 이야기, 동물의 숲 이야기, 착취 없는 삶 이야기... )를 너무 흥미롭게 듣고 궁금해하시는 주변 분들께서 유튜브를 해달라고 요청이 많았다. 지식전달이나 재미보다 그냥 힐링을 컨셉으로 가볍게 해 보기로 했다. 힐링되는 삶이 나도 남도 지구도 해치치 않는다는 걸 알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시작해 볼 것이라고 느꼈다. 나같이 가진 거 없는 풋내기도 한다고, 당신들도 시작할 수 있다고 전달하고 싶었다.




5.

둘째 날.

내가 귀촌을 하게 된 것은 자급자족 동물의 숲 라이프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져 보고자 해서였다. 먹을거리 농사를 한 번 지어보려 했는데, 다행히 텃밭을 일구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좋다고 허락을 받았다.

아침에는 OT를 듣고, 오후엔 절에 다녀왔다가 우연히 만난 주민분을 통해 모종 파는 하우스를 소개받아 모종을 사 왔다.



절의 풍경. 갔더니 저런 말씀이 쓰여있길래 맞는 말 같아 한 장 남겨왔다.



오후에는 바로 사 온 모종을 심는 작업에 착수했다. 완전히 놀고 있던 빈 땅을 텃밭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곳이 곧 밭이 될 예정. 돌이 많고 기본적으로 땅이 푹신하고 좋은 땅은 아닌 듯했다.

사온 모종 사진을 안 찍었는데, 상추, 모둠 쌈채소, 고추, 대파, 들깨를 준비했다.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서 고추랑 들깨를 같이 심으면 고추의 병해충을 막을 수 있다길래 들깨를 섞어 짓기로 했다.



자연농법으로 지어보고 싶었는데, 농사 자체가 아예 처음인지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옆에 계신 분께서는 기존에 영농 교육을 1년 정도 받아보셨던 상태라 밭을 가는 폼이 났다.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 농사의 'ㄴ'자도 모르면서 오로지 이론으로만 알던 걸 해보려니 막막했다. 누구는 연애를 글로 배운다던데, 나는 농사를 글로 배웠다. 완전히 글러먹은 아가리 농사꾼이다. 흙을 밟고 만질 기회조차 없는 곳에서 평생을 살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유튜브를 참고했다. 와중에 집중력 도둑맞은 현대인 아니랄까 봐, 누가 지식을 내 머리에다 떠먹여 주지 않으면 깊게 공부할 생각도 않았다. 유튜브라도 열심히 볼걸. 자연농 라이프 스타일만 봤지, 실제로 어떻게 농사를 짓는가는 열심히 보지 않았던 내 과거를 후회했다.


책에서는 천연 액비를 어떻게 만들고, 천연 비료를 또 어떻게 만들고, 무슨 농사를 무슨 농사랑 같이 짓고 하던데 그보다 시급한 건 어떻게 심어야 하는지였다. 그렇다... 나는 맨 땅에 식물을 심는 것조차 처음이다!


해 본 농사라고는 학교 계단에 방울토마토 방치농하기, 중학교 옥상 텃밭 화분에 고추 깻잎 상추 키우기, 스위트 바질 화분 말려 죽이기 뿐이었다. 이런 나라도 잘할 수 있을까. 이랑과 고랑을 만드는 법도, 만드는 이유도, 땅 가는 법도, 땅을 어느 정도로 갈아야 하는지도 전혀 모른 채 일단 갈퀴부터 들었다.


재미삼아 텃밭 채널을 참고해 밭을 만들었다. 나는 자연농으로 해야지,라고 하면서 땅을 고를 생각도 않고 일단 냅다 심어볼 요량이었는데 그래도 땅에 포크질을 한 번 해주고, 잡초 정도는 베어줘야 하는 모양이었다. 땅을 완전히 갈아서 뒤엎는 분도 계셨는데, 그렇게 하면 토양 안에 있던 탄소가 빠져나가고 지력이 갈수록 나빠진다고 들어서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애초에 깊게 파지지도 않았지만 깊게 파는 대신 위에 깔린 돌덩이를 조금 걷어내고, 단단해져 있는 땅을 한 번씩 들썩거려 준다는 느낌으로 작업했다.


잡초가 많아서 양분을 빼앗길까 봐 조금 뽑아주었고, 뽑은 잡초는 땅 위에 그대로 두었다. 밭 같지도 않은 밭이라며 놀림을 많이 들었다.

어쩔 수 없다. 난 아는 게 없으니까.




6.

어제 만들어 둔 밭이 영 마음에 걸렸다. 제발... 저 채소들이 팍팍 자라주어야 내 식비도 조금 아낄 텐데. 쌈채소만 있어도 반찬걱정은 필요가 없었다. 안 그래도 일도 없고 돈도 없는 나를 풀들이 조금이라도 도와주길 바랐다. 제발 말라죽지만 말아달라고 빌면서 밭에 나갔다.


아침에 본 나의 밭.

1평도 채 안 될 것 같은 좁디좁은 밭이지만 멀칭을 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땅이 너무 벌거벗은 느낌이었다. 저대로 두면 토양이 더 좋아지진 않을 게 느껴졌다. 그냥 직감이었다. 자연농의 기본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위적인 개입이 최소화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여 식물이 사람 없이 알아서도 잘 자라는 풀밭을 만드는 것이다.


애초에 식물은 인간이 있기 훨씬 전부터 존재해 왔으니 당연히 사람 손 없어도 잘만 자란다. 심어둔 작물들도 자연스럽게 쑥쑥 자라도록 자연의 상태를 만들어줘야 할 터였다. 풀멀칭을 해주고 싶었는데,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도 막막하긴 했다.


아무튼간에 땅이 말라비틀어지는 건 원하지 않았다. 유기물로 가득한 땅이 되어 상추나 청경채도 자연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커주기를 바랐다. 우선 밭 주변의 잡초를 활용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근처에 뽑아낸 잡초가 쌓여있었다. 아마 옆에서 밭을 갈면서 뽑아두신 잡초인 듯 보였다. 원래 그 땅에 있던 풀을 활용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하여 마침 잘 됐다 싶어 그 잡초들을 도로 멀칭 재료 삼아 덮어두었다.


맨 앞에 보이는 풀밭... 풀멀칭한 나의 밭이다. 오늘 아침 벌거숭이 밭일 때도 저게 뭐가 밭이냐며 놀림을 들었는데 이제는 더 놀림을 들을 듯하다... "완전히 잡초밭이네, 이거" 하실 게 뻔했다. 하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자연농 실험을 해보겠어. 작은 밭일 때 한 번 해보는 거다. 멀칭이 식물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풀들을 땅에 덮어주면서도 조금 불안했다. 나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 무대뽀도 괜찮을까. 다행인 건 자연농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동지가 한 분 계셨다는 것. 그래도 혼자일 때보다 용기가 났다. 그분도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삶을 원해서 자연농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분의 텃밭과 내 밭의 모양새는 조금 다른데, 나도 애초부터 그냥 자연에 모든 걸 맡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볼 걸 그랬나 싶었다. 하지만 해보기 전까진 뭐가 정답인지 모르니까 앞으로 지켜보기로 했다. 자연농도 땅의 상태에 따라 방법이 다 제각각이다. 나는 모종을 너무 깊게 심은 것 같아 걱정스럽긴 하지만...


식물과 대화해 자갈밭에서 20kg짜리 양배추를 만들어냈다는 핀드혼 공동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도 식물과 대화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리틀포레스트 흉내라도 낼 수 있게 도와주라, 내 텃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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