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Aug 22. 2024

외노자는 인권이 없나요?

워홀에 환상 갖지 마라

며칠 전 첫 급여가 들어왔다. 지난 달 7월 10일부터 시작해 총 근무 일 수는 17일, 근무 시간은 121.5시간, 휴가는 5일이었다. 워홀은 워킹홀리데이가 아니라 워킹홀리쉿이었던 모양이다. 여기 와서 지내는 시간 내내 일 한 기억 뿐이었다.


그동안 건강은 처참하게 무너져갔다. 무릎에 무리가 와서 매일 통증에 시달렸고, 결국 하루 정도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휴가를 내기도 했다. 제대로 끼니를 챙겨먹을 수 없는 시간에 휴게를 받거나 근무하게 되어 아침엔 먹어두고 자두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고, 몸은 점점 약해져갔다. 채소나 과일값이 하도 비싸서 늘 비슷한 식재료만 가지고 밥을 먹다 보니 영양도 불균형해지는 기분이었고, 입맛도 질려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룸메로부터 독한 인플루엔자에 옮았다. 밤새 열이 나 끙끙거리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급여 통장을 확인했더니 이럴 수가.



내 이 뭣같은 노고의 결과물이 고작 87만원이라니. 장난하나? 정말 쌍욕이 다 나왔다. 급여 통장을 보는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억울했다. 내가 고작 87만원 받자고 121시간을 온 몸이 망가지도록 일을 했나. 노예 취급도 정도가 있지. 외노자는 사람도 아닌가. 내 인권은 어디 있나. 내가 왜 이 고생을 하자고 여기에 왔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힘든 거에 비해 급여가 터무니없이 적었다. 내 노동의 가치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결국 울음이 터져나왔다. 매일 에어컨이 추워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재료나 시간 상 문제로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면역 이상 반응에 건조함으로 인한 피부 가려움증, 과로로 인한 무릎 통증, 독한 인플루엔자까지... 이 모든 것들에 시달려가면서 받은 돈이 고작 87만원?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더는 일 할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내 울음소리에 룸메가 인사과 담당자님을 불러오셨다. 담당자님은 내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면 돌아가는 게 좋겠다며 다독여주셨다.



여기 와서 귀국 항공편을 두 번이나 바꾸는 바람에 항공편에 날려버린 돈이 꽤 컸다. 하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도 와서 들인 생활비, 여행자 보험비 등등. 투자한 돈만 130만원은 족히 되었다. 그러나 두 달 동안 노예처럼 굴러가며 시키는 대로 일하고 건강을 망친 대가로 받은 돈은 고작 87만원. 8월 급여는 중도 퇴사했으니 지난 달 보다 더 적을 것이다. 12일 정도 출근했으니 대충 60만원 정도 받으려나.


금수저도 아닌데 금수저처럼 돈쓰고 흙수저처럼 벌었다. 현타가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워홀이 이런 건가. 젊은 사람 환상 팔아 세금으로 장사하나.  



약해진 몸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퇴사 후 귀국을 결정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핑할 생각이었는데, 감기가 꽤나 독한 놈이 걸렸는지 아침부터 머리가 멍했다. 매번 똑같은 양념에 똑같은 메뉴도 지겹다. 한식이 먹고 싶었다. 매운 비빔장에 비빈 돌솥 비빔밥, 떡볶이, 김치찌개가 그리웠다.


아픈 몸을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회복이 더딘 느낌이었다. 열이 펄펄 끓는데 혼자인게 서러웠다. 아, 인간은 역시 돌봄이 필요하구나. 혼자는 힘들구나. 혼자 하는 타지 생활은 혹독했고, 국가와 민족은 배척과 차별의 이유가 되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왔다가 허망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사실 글을 업로드하지 않은 동안에도 느낀 것이 많았다. 일단 나는 제대로 된 내 자리를 잡고 싶어졌다. 또한 혼자 지내보니 도저히 혼자서는 나를 잘 보살피는 게 어렵다는 것도 느꼈다. 그동안 부모님이 수행해준 돌봄 노동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느꼈다. 자기 목숨 유지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자식 목숨까지 유지했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철 들기 위해서 이 많은 돈을 투자하고 이 고생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전 16화 본격 오키나와 생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