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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30. 2024

고쳐 살고 싶어

착취의 땅에서 자유의 땅으로

 

구멍 난 재류카드와 함께 한국에 돌아왔다. 다시는 일본에서 일 하고 싶지 않았다. 돌아오게 된다면 그 때는 관광비자로 오리라.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사실상 외노자 부려먹기 비자였던 것이다. 순순히 당해줄까 보냐. 괘씸한 마음에 재류 자격을 끝냈다.



일본에서 지내는 마지막 며칠 사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한꺼번에 접했다. 아파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사람들이 집을 못 사는 게 아닌데, 그린벨트를 해제한다는 둥의 뉴스라든지. 지인에 친족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거대한 성착취물 범죄라든지. 역겨웠다. 그 모든 발상이 정상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속이 안 좋았다. 아, 역시 난 한국이 싫다. 정확히는 한국을 더럽히고 있는 기득권이 싫다. 한국은 정상적인 사회를, 정상적인 구성원을, 건전한 사고를 길러내는 데에 실패했다. 아니, 사실은 실패한 적이 없다. 정상적으로 길러내려 했으나 싸패 똘추같은 범죄자 새끼들만 주구장창 생겨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시나리오일 때나 실패라고 하는 거다. 한국은 애초부터 정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적도 없다. 딱 본인들이 한 대로 돌려받고 있을 뿐이다.



성범죄가 발생하면 여성을 통제하고, 피해자를 단도리해왔다. 한국에서 여성은 늘 인간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여성은 언제나 포궁, 맘충, 고깃덩어리였다. 여성은 동등한 시민 사회 구성원이 아니라 남성의 비뚤어진 욕구 해소 도구 쯤으로 여겨진다. 국가는 이런 성범죄를 방조하고도 양심없이 애를 낳으라며 여성을 닦달한다. 애를 낳으면 맘충으로 몰리고, 애가 민폐를 끼친다며 노키즈존을 만들면서 뭘 어쩌라는 건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정말로 민폐를 끼치고 있는 건 약자가 아니라 권력자들이다. 권력을 쥐고 흔드는 자들에게 도덕성이란 것이 결여되어 있고, 문제의 원인과 논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니 국가가 엉망진창으로 무너져 간다. 본인들의 단기적인 이득에만 집착하며 자연을 훼손하고, 동료 시민을 약자로 만들어 착취하고 희생시킨다. 타자의 권리를 빼앗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무식한 자들이 이 땅을 황폐하게 만든다. 착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한국 땅도 메말라 가고 그 속의 내용물-구성원들도 말라 비틀어져간다. 타자의 고혈을 빨아먹는 권력자들만 자기 배를 불린다. 지나치게 부른 배가 자기 숨을 막는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운 좋게도 여러 수영장에서 연락을 받았다. 수영 강사가 될 거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니 하늘이 듣고 '오냐 그래, 너 어디 한번 해봐라' 싶었나 보다. 이런 저런 걱정이 무색하게 첫 방에 면접까지 붙었다. 다음 달부터는 수영 강사로서 연수를 받으러 나간다.


수영 강사라는 경력이 생기게 되면, 호주로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의 기생충같은 권력자들이 동료를 못살게 굴고, 자기 살 터전을 못살게 구는 꼴이 너무나도 같잖았다. 저러다가 착취할 기반이 무너지면 본인들도 죽는다. 피라미드 사회는 사상누각이다. 사다리니 계층이니 하는 건 인간의 착각이다.


돕고 살자는 마인드 없는 망한 개인주의와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망한 집단주의의 대환장 콜라보 대한민국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각자도생, 강약약강, 생존 경쟁 정글이 당연한 섭리라고 여긴다. 그래서 이 지랄 한계를 맞은 자본주의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이라고 믿는다.


이런 정신 나간 착각과 비도덕적이고 비인도적인 사고방식에 장아찌마냥 절여진 인간 군상은 한국인이 유일할 것이다. 부조리하면 바꿔야 한다. 자연은 무법 정글이 아니다. 자연이야말로 진정한 공생공락의 조화를 이루며 아주 질서정연하고 규칙적인 공간이다. 인간이 자연의 균형과 조화를 차마 다 이해하지도 못한 채 가부장적 논리로만 편협하게 받아들이니 이 꼴이 났다. 짐승이라는 말도 짐승에겐 모욕이다. 짐승들도 하물며 남을 착취하거나 자기들 사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이렇게 백해무익한 존재들이 바글거리는 땅이 되었을까. 오죽하면 도망나갔다 돌아와놓고 다시 도망나갈까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하지만 내 진짜 목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순응하며 좋아하는 일로 적당히 돈 벌고 사는 데에 안주하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일로 돈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찌보면 감사한 일이지만, 거기에서 끝낼 순 없다. 그건 내 정의가 아니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물가를 신경쓰지 않고 마음껏 좋아하는 것을 수확해 먹고 싶다. 평화롭게 살고 싶다. 겨우 돈에 허덕이고 싶지 않다. 하루 중 2/3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라고, 니체가 그랬는데 돈 버는 사람은 노예다. 현대판 노예제도에서 벗어나고 싶다.


누구나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권리를 가져야 한다. 그걸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는 인간들이 만들었다. 길게는 몇백 년, 짧게는 몇십 년밖에 되지 않았다. 바꾸려면 바꿀 수 있다. 자본주의 각자도생 경쟁 사회는 하늘의 정언명령이 아니다. 아무도 행복하지 못한 이 정신분열적 시스템을 끝장내고 싶다. 노력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게 괘씸하다, 배가 아프다고 말하는데 반대로 묻고 싶다. 이렇게까지 죽어라 노력해야 겨우 입에 풀칠하는 사회가 어째서 당연한지. 인간은 돈을 굴리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가 아니다. 스스로를 노동 기계, 자본 기계 취급하는 풍토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 나는 빠져나오고 싶다. 돈을 굴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력해지는 사회로부터. 약자를 착취하며 이득을 취하는 비상식적인 사회로부터. 폭력으로 물든 사회로부터.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회로부터.


내가 정말로 되고 싶은 건 땅을 돌보는 사람이다. 바다를 돌보는 사람이고,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다. 세상을 살리는 힐러가 되고 싶다. 그런데 안전하고 맛있고 다양한 먹거리를 길러내는 데에 이만한 땅이 없다. 서양에서는 채소 요리가 이렇게 발달하지 못했고, 특히나 호주는 사막이 많다. 땅이 워낙 넓으니 너른 평야와 대자연을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과 식생이 너무 다르고 지리적 특징도 너무 다르다. 자본주의적 방식을 받아들이면서 살면 외노자는 서럽고, 빠져나와서 살려고 하면 도움 받거나 정보 얻기가 힘드니 막막하다. 게다가 난 한국 땅과 한국 채소와 한국 요리가 좋다. 정말로 먹고 사는 문제니까 먹고 살기 적합한 곳에 자리를 잡는 게 맞다. 나는 떠나고 싶은 게 아니다. 이 썩어 문드러진 사회 안에서 어떻게든 꿋꿋하게 고쳐 살아 내고 싶다. 자연을 벗삼아 여자들이 마음껏 풍요롭게 지낼 수 있는 땅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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