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오키나와에 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오키나와에 왔는데, 이상하게도 행복하지가 않았다. 향수병 걸린 사람처럼 집과 한국을 그리워했다.
지난 한 달동안 나는 그야말로 죽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견뎠다. 글 제목이 생존기인 이유다. 난 이 곳에서 삶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버텼다. 정말 숨만 쉬고 있는 기분이었다.
노동 외의 시간은 말 그대로 노동을 위한 연명이었다. 일 하다 죽으면 안 되니까 먹고, 일 때문에 죽으면 안 되니까 잠을 잤다. 덕분에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많이 먹는 건 아닌가, 하는 자기 검열에서 벗어날 수 있긴 했지만. 역으로 말하면 쓸데없는 걱정 할 여유도 없었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만 살아있었다. 이게 뭐지. 내가 사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했지, 살아만 있고 싶다고는 한 적 없는데. 좋아하는 그림도 한 장 그리지 못했고 좋아하는 취미 생활로 자아실현 할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어째 바라던 생활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진 것만 같았다. 와중에 매장일은 나와 적성에 맞지도 않았다. 서비스 쪽으로 일머리가 잘 돌아가고 센스있고 빠릿빠릿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나는 아니었다. 난 바쁘면 고장났고 한가하면 멍때렸다. 어차피 흐트러질 물건들 각 잡아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일에서 보람도 재미도 느끼기 어려웠다. 사는 자와 채우는 자의 소모전같은 매일이 지루하게 반복됐다.
일은 좀 어떠냐는 한국인 동료의 말에 거지같다고 답했다. 매일 똑같은 일 하고 재미 없어요. 그냥 팔고 물건 채우고.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은 "어딜가나 다 똑같죠" 였다.
그러니까, 그게 왜 당연한데. 보람도 의미도 없는 노동을 위해 그 외에는 그저 연명중인 생활을 매일 반복하는 것이 어째서 당연한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인생을 원해서 내가 여기에 왔던가. 더이상 이 곳에서 지낼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전역을 기다리며 군생활을 버티는 사람처럼 그저 하루 하루 계약 종료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며 버텼다. 난 버티고 있었다. 사는게 아니라 버티기였다.
그 외에 각종 현실적인 문제도 이 곳 생활을 막막하게 만들었다. 버는 돈에 비해 교통비나 식비는 터무니없이 비쌌고 몸 이곳 저곳이 아프기까지 했다. 출근만 했다 하면 무릎이 욱신거렸다. 이러다 하고 싶은 일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관절부터 나가는 건 아닌가 걱정이었다.
며칠 전부터는 온 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기숙사가 비위생적이어서 일어난 일인지, 기숙사에 곧잘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들 때문인 건지, 햇빛 알러지가 생긴 건지, 뭔가 물이나 음식이 맞지 않아 생긴 문제인 건지, 과로때문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얼굴, 귓바퀴, 팔다리가 가려울 때마다 원인을 종잡을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무릎 관절도 그렇고 갑자기 몸이 가렵기까지 하자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닌가 두려웠다. 집에 있을 땐 이러지 않았는데. 아무튼 간에 정상이 아니었다. 이대로 여기에서 더 지내도 괜찮은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날씨도 만만찮게 살인적이었다. 밖을 나서는 순간 건식 사우나 입성이었다. 걸어다니면 아스팔트의 지열이 온 몸을 익혔다. 훈제 구이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태양열에 말 그대로 살이 타들어가듯 했다. 한 번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속도 안좋고 몸도 지쳤다. 너무 더워서 살 수가 없다. 한국에 돌아가면 곧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맞을 수 있다, 가을에 나오는 제철 사과와 고구마를 먹을 수 있다. 그런 생각들로 겨우 힘을 냈다.
처음 먹어보는 채소와 과일도 있었는데, 낯설어서인지 입에도 맞지 않았다. 몽키바나나는 생각보다 내 취향이 아니었고 초면인 열대 채소의 맛은 익힌 오이같은 맛이었다. 입맛이 없는 날이면 고추장이 그리웠다.
사람도 예외는 아닌가 봐
토착, 토종, 신토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사람도 여기에서 절대적으로 예외일 순 없었다. 오죽하면 아프리카를 떠나 피부가 하얘지고 추운 곳에서 지내기 시작하면서 온갖 병에도 취약해졌다는 인간이 기껏 그걸 이겨내고 지금의 땅에 자리잡은 조상의 피를 물려 받은 주제에 오랜 진화에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입맛, 식생, 수질, 기후, 체질... 모든 것들이 연관된 문제였고, 이토록 인공적인 세계로 변했다 해도 자연과 내 몸은 무관하지 않았다. 자유를 찾아 떠난다 해도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일부러 먼 대륙이 아니라 일본을 고른 건데, 아무래도 오키나와는 동남아 열대 쪽에 가깝다 보니 적응이 필요했다.
물론 이 적응에는 근무지의 열악한 노동환경도 한 몫 했다. 바쁠 때만 바쁘고 한가할 때는 한가해서 인력을 더 늘리기도, 줄이기도 애매한 상황. 그렇다고 한 명이라도 빠지면 그 날은 남은 사람들끼리 지옥을 맛 봐야 했다. 무릎이 아파도 눈치가 보여 빠질 수 없는 이유였다.
계약 종료 시점을 앞당겼기 때문에 이제 이 일을 계속하는 날은 고작 2주하고도 절반 남짓. 약 20일만 버티면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9월 부터는 오키나와 남부 난죠시에서 우핑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느낌이라 귀국을 앞당겨야 할지도 심각하게 고민되기 시작했다. 무릎은 무리한 노동 탓인지 갈수록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가려움증도 생겼고, 까진 발등의 상처가 아물면서 특히나 발이 무지하게 가려웠다.
오키나와에서의 자급적 삶이 궁금해서 왔는데 부상만 잔뜩 입고 외노자 신세로만 지내다 돌아가게 생겼다. 솔직히 말하면 고작 한 달이긴 하지만, 타지 살이에 대한 환상도 결국 "환상"일 뿐임을 느꼈다. 혼자 외딴 곳에 살면서 겪는 서러움이나 돌봄의 부재, 자연과 체질의 부조화 등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충분히 실감했기 때문이다. 휴일에 헤엄칠 바다가 있는 건 좋았다. 하지만 바다에 가기도 전에 태양에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고 노동에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으니. 다시금 느끼지만 모든 것이 쉽지 않다.
돌아가서 좋아하는 일을 하자
이 마음으로 지금의 생활을 견디고 있다. 돌아가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고 싶다. 오키나와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솔직히 거짓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왔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생활, 나에게 맞는 일, 적성, 앞으로 살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일 등 삶의 방향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평생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20대 중반에 깨달았으니 충분히 값지고 감사한 일이다.
돌아가면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일이 하고 싶다. 사람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나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하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지치고 아픈 몸을 돌봐서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몸을 제대로 만들어 두어야 뭐든 할 수 있겠지. 일단 더이상 아프지 않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