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으로써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학군지” 라는 단어를 사실 재작년까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아이들 교육 이야기가 나와 이야기하던 중, 한 친구가 “그래도 너는 학군지에 살고 있으니 애가 주변에 밀려서라도 부지런 떨지 않아?”라며 물어와 알게된 그 단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찾아봤었다.
학군지
- 학군이 좋은 곳. 통학 가능 거리의 초중고 학교들에 재학생과 교사의 수준이 높고 학습 열의가 뜨거운 곳. 동시에 학원 등 사교육이 활발하고 접근 가능한 지역
학군이라는건 학교를 의미하지만 요즘 분위기로는 학교보다는 “이름난 학원/학원 선생님“을 대변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한 차례 이사를 하긴 했지만, 그 동안 아이를 키워온 지역은 의도치 않게, 소위 학군지로 일컬어지는 지역들이었다.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주셔야 하니 다니기 좋은 길목에 집을 얻었던 것 뿐인데 내가 사는 동네에서 경험한 게 서울 학군지에서의 육아였구나... 싶었다. 내가 엄청난 열혈 엄마는 아니지만, 우리 동네 자체가 나름의 경쟁과 정보가 보이지 않게 오가는 지역이라는데에는 동의한다. 그 동안 아이를 키우며 고민했던 몇 가지에 대해 짧은 경험과 생각을 정리해 본다.
#1. 영어(언어) 교육은 목적과 아이의 성향이 중요하다.
우리 아이는 지방에서 친정 부모님이 키워주셨던터라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어린이집 정보 탐색에 그렇게 열심히는 아니었다. 당시에도 내 주변의 친구나 선배, 동료들이
3세부터 시작되는 다국어 놀이학교 등을 보내는 경우들도 있었는데 환경 상 우리에게 고려 사항은 아니었다. 친정 부모님은 의사표현도 못 하는 아이를 보육 시설에 맡길 수 없다고 하셨기에, 감사하게도 우리 아이는 36개월이 되어서야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지역에 살지 않았던 터라 어떤 어린이집을 보낼지 고민이었는데, 키즈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엄마에게 나름 그 동네에서 인기 있는 어린이집 정보를 들었고, 거짓말처럼 그 날이 신청 마지막 날이라 온라인으로 신청을 하고 대기했다. 뒤늦은 신청에 애석하게도 대기 1번이라는 연락을 받고 침울했는데, 다음날 한 친구가 이사를 가서 자리가 났다는 연락에 막차를 타고 그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천주교 산하 수녀님들께서 운영하시는터라 셔틀이 없어 엄마가 아침 저녁 라이드를 해 주셨는데,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다 좋았던 곳이다. 생활 예절을 특히나 잘 지도해주신 원장 수녀님의 교육 스타일도 마음에 들었고 선생님들도 천사같은 분들이셨다. 우리 아이는 지금도 그 시절 기억이 남았는지 이따금 이야기하곤 한다. 맞벌이 엄마/아빠 밑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참으로 호사스러운 유아기 시절이었다. 아이는 6살이 되어 서울 집으로 옮겨왔는데 이때부터 우리 부부는 아이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하는가를 놓고 자주 토론을 했다.
“영어 유치원 vs. 일반 유치원”
거의 무상에 가까운 일반 유치원과 꽤 큰 교육비를 집행해야 하는 영유 중 어디를 보낼 것인가?에 대한 남편과의 상의가 이어졌고, 남편과 나는 영유를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계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살려면 언어는 기본”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좀 더 크고 난 다음 본인 의지에 맞춰 언어를 공부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언어는 다른 문화를 접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으로 어린 시절부터 노출을 시켜보자는 결론이었다. 미국에서 몇 년을 지냈던 남편과 유학을 포기했던 내 입장에서, 우리보다는 넓은 세상에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영유로 노선을 정하고 난 다음에도 고민할 것은 많았다. ‘어떤 환경과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유치원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후속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하는데, 영유마다 제각각 특색이 있는지라 실제 방문해서 교실과 급식/선생님 등 전체적인 환경과 분위기를 보고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동네에서 괜찮다고 소문난 영유를 수소문하고 설명회를 돌아보았고, 학습형과 놀이형 정도로 분류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7살까지 다녔을 때 아이가 외국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쓰는 모습을 바라는가?’ 라는 관점에서 비교를 했다.
우리 동네의 학습형 영유 설명회의 초점은 “대치동 영어학원 입학“에 맞춰져 있는 듯 했다. 7살까지 영유를 나오면 대부분 초등 입학을 하면서 영어학원 대치동 네임드 영어학원으로 진학하는 코스를 따라가는 분위기 속에서, 학습형 영유들의 커리큘럼을 마치게 되면 그 학원들의 레테를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설명회 말미의 주요한 Selling point였다. 반면, 놀이형의 경우는 아이들이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재미를 느끼게끔 하는데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 했고, 좀 더 다양한 액티비티를 꾸리고 있었다. 나와 남편은 (우리가 분류하건대) 놀이형에 속하는 영유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놀이형이라고 해서 학습을 안 시키는 것은 아니었으나 굳이 비교를 해 본다면 Essay Writing에 대한 집중 훈련의 정도와 시험에 대한 노출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판단되었는데, 우리 아이의 성향에는 좀 더 열린 분위기에서 정해진 틀과 경쟁에 대한 노출은 조금 미뤄 놓고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익히게 하고 싶었던게 그 이유였다.
써 놓고 보니, 학습형을 다소 부정적으로 기술한 것 같지만, 적지 않은 투자가 들어가는 만큼 대치동 메인스트림으로 입성을 원한다면 그에 맞춘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영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영유를 졸업하면 그 다음을 배워 나갈 영어학원을 찾아야하는 시스템을 따라야 하고, 그 중 소위 이름 있는 영어학원을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모든 부모들의 목표일텐데 레테를 통과해야 하는게 기본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사실 타당한 것 같다. 우리아이도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영어학원 두어 곳에 레테를 치뤘는데, 한 곳에서 Writing 점수에서 평균을 밑도는 성적표를 받았었다. Writing 채점 기준은 짜여진 구조 안에서 콘텐츠는 주관적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로 남편은 그 점수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지만, 내심 ‘우리의 교육 방향이 맞았나?’라는 내적 흔들림과 2년 동안 투자한 금액이 생각이 안 났다면 솔직히 거짓말일 것이다. 잠깐의 충격?은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영유를 선택‘한 이유가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 수단으로 언어를 가르쳐주자는 목적이었으니 학원에서의 레테 때문에 일희일비 하지 말자는 나름의 합리화를 하며 이후에도 회화식 영어 교육 기관을 찾아 꾸준히 보내고 있다.
작년 우리 가족은 남편이 공부한 지역들을 둘러보며, 미국 서부 여행을 다녀왔다. COVID-19등의 여파로 아이가 영어 공부를 시작하고 처음 가 보는 영어권 여행이었다. 어떤 모습을 보일 지 내심 관찰자의 관점에서 주의깊게 살펴 보았는데 스스럼 없이 현지에서 만나는 아이들이나 어른들, 지인의 가족 등과 편하게 영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언어는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하고 몇 해 동안 꾸준히 공부시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특히 아이가 해변가에서 만난 할아버지/로컬 공항에서 만난 아저씨/호텔 데판야키 레스토랑 같은 테이블에서 같이 밥을 먹은 현지 사람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들이 우리 부부에게 “당신 아이가 한국인인 줄 몰랐다. 영어를 너무 잘 해서 그냥 미국 아이인줄 알았다.” 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고 들려주니, 남편과 나는 그 동안 쓴 교육비가 아깝지 않다고 웃을 수 있었다. 우리 아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걸 좋아하는 성향이다. 아이가 외향적이고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 수용 가능하다면 가급적 일찍 외국어를 가르치는게 좋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ChatGPT가 이렇게나 영어를 잘 하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직접 커뮤니케이션 하며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 하는 것은 통역을 거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데 이견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2. 초등 저학년, 맞벌이 부부에게 집과 학교/학원의 짧은 거리는 소중하다.
보통 유치원은 아침 9시에 등원하고 나면 영유는 오후 3시 정도, 일반 유치원 돌봄을 하면 퇴근할 무렵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이 시스템에 변화가 생긴다. 그리고 맞벌이 부부에게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시스템을 짜는건 또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우리 아이는 COVID-19 시기 입학을 했는데, 당시 나는 너무나 바빴던 시기라 입학식 하루 겨우 휴가를 냈을 뿐 저학년 시절에는 아이 하교 픽업은 감히 바랄 수도 없었다. 바쁜 아침 아이 등교라도 같이 하는게 그나마 낙이었는데, 그나마도 아이 학교가 아파트 안에 있었던 터라 가능했다. 손잡고 등교 시키고 출근하면서도 5분이라도 늦어지는 경우에는 속으로 조바심이 났지만 그럼에도 걸어서 2분이면 정문에 도달할 수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고, 그 덕에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등교를 했던 것은 아이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1학년은 급식을 먹고 바로 하교를 한다. ‘아이가 학교에 가자마자 집에 오는 것 같다.‘던 선배들의 하소연이 구구절절 피부로 와 닿았다. 우리 동네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1학년 시절 특이한 문화가 있었다. 하굣길 아이들, 그리고 엄마/아빠들 사이의 네트워킹이 그것이다. 아이들은 책가방을 던져놓고 놀이터로 뛰어가고 엄마/아빠들이 뒤를 따른다. 팬데믹 시국이라 남편이 전적으로 우리 아이를 케어했는데 다행하게도 재택하는 아빠들도 동네에 몇 분 계셔서 남편은 동네 엄마/아빠들과 안면을 트며 학부모 간 소셜 네트워킹에 참여했다. 친구들이 점차 중요해지는 나이이니, 학교/학원이 끝나면 친한 친구들 집에 놀러가는 일도 점차 많아졌다. 그 시절 친구 관계가 평생을 갈까? 라는 물음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맞벌이 부부에게는 등하교 시간을 조금이라도 같이 하고 아이가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마련해 줄 수 있는 여유는, 집과 학교가 가까우니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렇게 나름의 네트워킹을 하고 나면 각자 헤어져 학원을 가는 체제로 저학년 스케줄이 정착되어 갔다. 학원은 셔틀 픽드랍이 되긴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 셔틀을 타는 것도 힘들 수 있으니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들부터 학원을 탐색하게 된다. 아직은 보육이 필요한 초등 저학년이었지만 팬데믹 등으로 방과후가 제대로 열리기 전 시기였어서 집과 가까운 곳에 학원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초품아가 부동산 시장에 왜 그렇게 중요한 키워드였는지 잘 느끼지 못했었는데, 아이를 키워보니 얼마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미친 집 값에 대한 정부 정책과 소위 투자자라고 일컫는 다주택자 무리들에 진심 분노하게 되지만;;;) 맞벌이 부부일수록 집과 가까운 곳에 믿을만한 교육 기관들이 포진해 있는 환경의 소중함은 더 크게 와 닿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3. 수학 선행, 얼마나 앞서 가는 것이 좋을까? 아이가 커 갈수록 아이의 의견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아이가 1학년이던 시기, 우리 가족은 좀 더 서울의 중심부로 이사를 했다. 이전 동네는 정말 관심과 열정이 있는 소수의 엄마들이 대치 수학/영어학원으로 라이드를 했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그저 아파트 놀이터에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사를 오고 보니 이 동네에서 수학 선행을 안 한 아이는 (과장해 보자면) 우리 아이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굳이 대치동으로 가지 않더라도 대치 직영 학원들이 대부분 자리를 잡은 터라,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웬만한 학원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그럼에도 관심 있는 부모들은, 같은 학원이어도 대치동으로 라이드를 하고 있었다.
‘초등 저학년, 수학 선행을 시작할 것인가?’
영유를 보낼 지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 부부는 다시 논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일단 내린 결론은 저학년 때에는 굳이 교과 선행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디딤돌이나 최상위 등 문제집을 풀려서 진도를 빼는 의미를 찾기 어려웠고, 4-5학년 때 고등과정에 들어가는 목표로 수학 선행을 시키는 의미 또한 찾기 어렵다는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어떤 책에서, ‘(어떤 분야든) 아이가 영재라면 부모가 나서지 않아도 그런 경우에는 반드시 선생님이 이야기해 주니, 영재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피식 웃음이 나긴 했으나 전적으로 동의가 되기도 했다. 내 아이가 더 잘 할 수 있고 더 잘 될 수 있는데, 부모가 정보가 부족해서 그 길을 못 찾아주는게 아닐지? 라는 불안과 걱정을 먹으며 괴물이 되는 곳이 사교육 시장이 아닌가 싶었던 이유도 있다.
쓰고나니... 엄청 중심 잘 잡은 엄마처럼 잘난척 하며 영어 외 아무런 교육을 안 시킨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교과 선행 수학이 아니라 창의 수학을 보내기 시작했다. 수/도형의 원리 등을 가르쳐 주는 수학 학원은 개념을 잡아주자는 목적이었다. 그렇게 아이가 초등 1학년부터 영어 학원 외 창의 수학 수업이 추가로 시작되었다. 그 외 많이 노출시키고 싶었던 것은 사실 예체능이었다. 공부도 자기자신에게 남는건 맞지만, 영어를 가르쳤던 것처럼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건 예체능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 1회 수학과 주 2회 영어, 그 외 시간들은 피아노와 미술, 그리고 각종 체육 훈련으로 채워졌다.
초등 저학년에서 선행이 필요하랴? 싶지만, 초등 중학년에 접어들면 ‘수학 선행’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3학년도 어린데...‘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동네 부위기 상, 그 정도에 교과 수학을 시작하지 않으면 이후 선택할 수 있는 학원들이 급격히 적어지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아이의 학업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도 3학년부터는 교과 수학을 선행을 시키기 시작했다. 사실, 4학년까지의 교육 과정은 쉽기 때문에, 3학년에 선행을 시작하고 두어달 정도면 4학년 과정까지는 무난하게 끝났다. 이후 5학년 과정 중 약수/배수의 벽을 건너는데 조금의 힘듦이 있고 그 외 초등 과정은 대부분 무난하게 지나가는 듯 했다. 통상적으로 동네 선행 수학 학원들에서 운영하는 커리큘럼은 보통 초등 시기 중등 과정을 끝내고, 중 1부터 고등 과정을 시작하는 정도이다. 그 정도면 강남 지역 자사고나 전사고 등에서도 내신을 따라가면서 수능도 대비할 수 있다는 계산인데, 막상 내가 경험해 보니 아이가 얼마나 받아들이느냐?가 결국은 관건인 것 같았다.
동네 분위기 상 상대적으로 조금 늦게 선행에 뛰어들었음에도, 1년도 되지 않아 중등 수학 선행에 빠르게 들어가고 ’아이가 참 잘 따라온다. 더 시켜도 좋겠다.’는 선생님의 피드백에 (중심을 잡자 하지만) 기분이 좋아져 수학을 더 시켜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속도면 초등 6학년 시작과 함께 고등 수학도 들어갈 수 있는 스케줄이었다. 선생님과의 상담 후 고무된 상태로 아이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도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어 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막상 아이는 ‘사실, 너무 힘들고 재미가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진도 나가는 걸 잠시 쉬고 싶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아이의 말을 어디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지? 혼란이 왔다. 나도 박사 공부까지 해 보았지만 ’공부는 원래 다 힘든 것인데?‘라는 T 엄마다운 생각이 올라온다. ’지금 아이가 느끼는 건 찰나의 힘듦일 수 있고 더 동기부여를 시키고 Push하면 KMO 준비도 해봄직 하겠다‘는 욕심이 일렁였다. 그리나 아이는 어느덧 자라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제법 논리적으로 펼치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 기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아이는 자기 주장이 제법 확실한 편이기 때문에 설득되지 않는 일을 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 충돌로 이어지는 상황을 몇 번 겪어보니, 아이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는 것으로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지금 아이는 어떤 마음 상태일까? 내가 선행을 시키고 있는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돌아왛ㅅ다.
동네 빡센 중학교에서도 잔존감을 잃지 않게 준비 시키고, 영재고/특목고 진학 가능성을 마련해 두는 것
초등부터 시작하는 수능 대비 (남자 아이들은 언제든 연필을 잠시 내려놓는 시기가 온다고 하지 않는가...에 대한 막연한 불안)
공부를 통해 힘들어도 노력해서 그 힘듦을 이겨내고 무엇인가를 해봤다고 느끼게끔 하는 것
앞의 두 가지 목적은 예전 내가 피식 웃었던 읽었던 책에 쓰여 있던 촌철살인의 문장. ‘아이가 영재면 엄마아빠가 아닌 선생님이 알아본다.’던 그 내용처럼 내가 몰아대지 않아도 속도 조절을 하면 주변에서 우리를 더 채근하며 시킬 방법을 강구하자 연락해 올 것이니 고민할 포인트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근원적으로는, ‘제도권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먼저 준비를 해 놓는 것이 아이의 행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매움의 속도를 조금 줄인다고 할 때 선생님이 얼마나 붙잡는지, 그리고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놓고 판단할 문제였다. 세 번째 목적이 좀 더 근본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동기부여 되는 시기를 기다려야 비로소 본인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문득 그게 꼭 ‘공부’를 통한 것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가 아닌 다른 경험’을 통해 그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었다. 나도 남편도 어린시절 그저 해 볼 수 있는게 공부 외에는 무엇이 더 있는지 몰라서 일단은 거기 매진하며 짜여진 시스템 안에서의 목표를 세우고 성취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지만, 나의 아이는 운동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그런 열정을 쏟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와 남편이 살아온 길보다 더 재미있고 다이나믹한 삶을 사는 것도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와 우리 부부보다는 세상을 넓은 관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다른 경험들을 시켜주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의 선행 속도는 조금 줄이는 방향으로 아이와, 그리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정리했다.
사실, 아이가 아무 저항 없이 부모가 설계하는 대로 따라와 준다면 동네 분위기 상으로도 좀 더 선행의 시간표를 짜임새 있게 다듬으며 정규 교육과정을 소화해 나가는 가속도를 붙여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속도 조절’에 대해 요구해 왔을 때에는 여기에 응해줘야 하는 것 같다. 주변에 보면 초4에 이미 중등 수학 과정을 마무리하고 고등과정에 들어선 친구들도 몇몇이 있다. 특히 방학 등에 대치동 특강에 갈 때면 ‘지금 내가 아이 교육에 너무 느긋한 것이 아닐까’ 라는 막연한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다만, 모든 일이 그렇듯 아이도 어느덧 커 가는 나이이기 때문에 좀 더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아이와 부모 모두 기꺼이 선행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길 수 있을 때 탈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타고 안 타고는 선택일 뿐이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 파도를 기꺼이 맞이해서 즐기지 않으면 파라다이스가 아닌 고통이 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의 파라다이스가 같을 이유도 없다. 그저 아이가 그리는 자신만의 파라다이스가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고 거기에 가는 길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믿고 필요한 지원을 해 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고 새삼 깨닫는다.
어떻게 살아도 정답이 없는 세상,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대이니 나의 아이는 나보다는 기존의 틀을 깨고 ‘본인이 진짜 원하는 삶’.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며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해 보자 다짐하는 나날이다. 그리고 그러려면 부모가 먼저 획일적인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만의 관점을 갖는 것도 필수 조건인 것 같다. 성인으로 가정을 일구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도 참 어려운 요즘인데, 나의 아이가 자기만의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어야 하는 정말 어려운 숙제의 무게도 점점 무거워지니, 워킹맘으로써의 인생 참... 쉽지 않다 싶다.
(푸념으로 끝맺음을 하게 될 줄이야..;;;;;; 나중에 보고 고쳐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