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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서 다행이야

은퇴부부의 베트남 자유여행 7

by 심웅섭

호이안에서 마지막 날이다. 워낙 평화롭고 좋은 곳이라서 더 머물려고 했는데, 문제는 날씨다. 처음 도착하고 이틀간은 쨍하고 맑더니 그 후로 계속 흐리거나 비가 내린다. 겨울철이 우기라고는 알고 왔지만 이런 날씨가 계속되니 좀 흔들린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남쪽의 푸꾸옥과 달랏은 맑은 날씨, 건기란다. 아무리 베트남이 아래위로 길다고는 해도 한쪽은 우기이고 한쪽은 건기라니 재미있다. 사실 달랏은 이미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강추하는 바람에 베트남 여행 목적지의 제1순위였다. 당연히 들러야 할, 혹은 오래 머물 곳이니 먼저 달랏으로 가기로 했다. 항공편과 슬리핑 버스 중에 고민하다가 슬리핑 버스로 마음이 기울었다. 가장 큰 이유는 경비, 항공료가 두 사람이 10만 원 남짓에 공항까지 오가는 택시비를 합치면 대략 15만 원선인데, 슬리핑 버스를 타면 둘이서 5만 원이면 해결된다. 13시간의 버스 탑승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뭐 누워서 자고 간다니까 체험 삼아 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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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탑승을 위한 홈스테이 픽업시간이 오후 세시 반, 네 시간쯤 남았다. 비교적 가까운 곳에 걸을 요량으로 아내와 구글맵을 켜고 집을 나섰다. 가까운 목공마을이 있다는 걸 책에서 보고는 집주인에게 물어서 목적지로 설정했으니 잘못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구글에서 보여주는 거리는 1.8km, 40분 정도 걸으면 도착이다. 스마트폰을 왼손에 들고 지도와 골목을 일치시켜 가며 걷는다. 이미 스페인에서 여러 번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어렵지도 낯설지도 않다. 조금 걸어가니 가죽공방이 눈에 띈다. 가족이 운영하는 듯, 한 남자가 커다란 소가죽과 설계도면을 펼쳐놓고 열심히 재단을 하고 있고 또 다른 남자는 가죽 조각을 열심히 털어내고 있다. 아들로 보이는 사내아이는 그런 아빠의 손놀림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고 아내로 보이는 두 여인은 즐겁게 떠들면서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정겨운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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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어가면 특이한 다리를 만난다. 투본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하나 놓여 있는데 특이하게도 상판이 철판 조각들을 덧대어 만들었다. 폭은 3m쯤으로 차가 다닐 수 없는, 오토바이와 사람을 위한 다리다. 그런데 철판조각들이 덜렁거려서 오토바이 한 대만 지나가도 소리가 요란하다. 사실은 목공마을을 들르자고 계획한 것도 멀리서 이 다리를 보고 나서다. 아내와 도자기 마을을 갔다 오면서 멀리서 철판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궁금해했던 차였다. 다리를 건넌다. 약간의 흔들거림도 느껴지지만 그래도 무서울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소음이다. 오토바이가 제법 자주 오가는데 그 시끄러운 소리를 피할 데도 없이 들어야 한다. 한 번은 재미있지만 다시 듣고 싶지는 않다. 이따가 돌아올 때 다시 들어야 하나, 아내와 함께 걱정을 하며 다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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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자 구글맵은 한적한 마을길로 안내한다. 아니 도대체 이런 곳에 무슨 목공마을이 있을까, 궁금해하던 차에 허름한 목공공방 하나가 눈에 띈다. 음, 본격적인 목공마을이 나오려나보다. 저 공방은 예고편이겠구나. 대충 눈길만 휙 주고 길을 재촉한다. 사실은 아침을 먹기 전이라 제법 출출하던 참이었다. 11시에 숙소에서 나왔으니 뭐라도 먹었으면 싶은데, 아내가 목공마을 가서 먹자고 우기는 바람에 빈 입에 나선 참이다. 마을길이 끝나자 이번엔 논두렁길이다. 논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선 논들은 모두 텅 비어있다. 추수를 하고 쉬는 농한기인 모양이다. 그런데 저 멀리 논 한두 개에서 트랙터가 바삐 움직이고 사람들도 여럿이 모여서 뭔가를 하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우리나와 써레와 비슷한 농기구도 보이고 제법 커다란 괭이를 멘 사람들도 보인다. 모두들 논을 갈고 써레질하고 논두렁을 매만지는데 한결같이 환한 표정에 깔깔 웃고 떠들며 일하고 있다.


논두렁을 벗어나 낌봉 마을에 도착했다. 구글맵은 여기가 목적지란다. 마을입구에도 낌봉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목공공방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옳다구나,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있겠지. 마을 길로 들어섰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하나씩 눈에 띈다. 집들은 고만고만, 대부분 정원을 가꾸고 꽃을 기르고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열대지방의 화려한 꽃들도 보이고 잔잔한 노란 꽃들, 무궁화도 보인다. 열심히 생울타리를 전지 하는 아저씨, 꽃나무 잎을 정성스레 따주는 아주머니도 눈에 띈다. 가난한데 행복해 보인다. 가난과 불행, 돈과 행복은 서로 동의어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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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쉼도 할 겸, 작은 홈 카페에 들렀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달달한 연유커피, 카페 쓰어 농을 두 잔 시켰다. 주인 아들인 듯한 젊은이에게 목공마을을 물어보니 500m쯤 가면 된단다. 뭐 그 정도야 하는 마음에 마을 끝까지 걸었다. 개들이 마구 짖어대는 걸로 봐서 외지인들이 드나들지 않는 곳이다. 조금 더 걸으니 마을이 끝나고 넓은 투본강이 우리를 맞는다. 목공마을은 없다. 구글맵이 틀린 것인지, 홈스테이 주인이 찍어 준 낌봉마을이 잘못된 건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어쨌든 목공마을은 없다. 그러나 애초부터 목공마을이 목적이 아니었으니 불만은 없다. 궁금하던 철다리를 건넜고 농부들의 농사일하는 모습도 봤고 시골마을의 속살도 봤으니 불만이 없다. 게다가 하루치 운동량도 채웠으니 그로서 족하다. 돌아가기로 했다. 강을 따라 걷다 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베트남 말로 뭐라고 하는데 거기 길 아니니 돌아가라는 뜻인 듯, 베트남 와서 일주일쯤 되니 대충 알아듣는 수준이 돼 버렸다.


다시 마을 입구, 작은 식당이 눈에 띈다. 소의 넓적다리를 입구에 턱 하니 매달고 팔고 있어서 눈에 띄던 식당이다. 위생상태로 보아 별로 믿음이 가지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굳게 믿는 마음으로 아내 뒤를 따라 자리를 잡았다. 쌀 국수가 35,000동, 대충 1800원쯤이다. 두 그릇을 시켰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주변을 둘러본다. 수로 위에 띄워놓은 작은 배 한 척이 눈에 띈다. 작고 제법 오래돼 보이는데 아무리 봐도 특이하다. 대나무로 프레임을 짠 것까지는 알겠는데 문제는 표면처리다. 반투명의 반들거리는 피부가 배를 감싸고 있다. 플라스틱인가, 그러나 플라스틱으로 대나무로 얽은 배에 딱 맞춰 작업을 할 수는 없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건 가죽으로 보인다. 흠, 물소가죽이겠구나, 주인 남자에게 다가가서 손짓발짓에 소 울음까지 해가며 물소가죽이냐고 묻는다. 그렇단다. 그러나 100% 확신은 안 선다. 내 마임으로 과연 정확하게 뜻이 전달됐을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더 물으려는데 아줌마가 자꾸 배를 탈 거냐고 묻는 통에 대화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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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퍼 보, 소고기 쌀국수가 나왔다. 진한 고기국물 육수에 쌀국수가 서너 젓가락, 거기에 소고기가 몇 조각. 익숙한 비주얼이다. 반찬으로는 맵고 신맛의 고추 소스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채소들이 곁들여졌다. 레몬처럼 생긴 초록색 과일즙을 먼저 짜 넣고 채소를 국수에 얹어 먹으란다. 시키는 대로 조미를 하고 한 숟가락 떠 넣는 순간, 우리 부부는 눈을 마주쳤다. 진한 고기국물이 기분 좋으면서도 상큼함에 살짝 매콤한 국물맛에 깜짝 놀라 눈이 마주친 것이다. 아니 이렇게 허름한 시골집에, 겨우 2000원도 안 되는 퍼 보가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야? 이건 그야말로 반칙이 아닐 수 없다. 구글맵에 9점짜리 평점을 받은 곳도 아니고 유튜브나 여행안내서에 소개된 맛집도 아니고 그저 지나다가 배가 고파서 들른 허름한 시골식당, 더구나 믿음도 가지 않는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이런 맛을 내다니. 아내가 한 마디,


"이거 어디 맛집에 올려야 하는 거 아녀?"


그래, 여행이 유명한 곳만 찾아다니는 게임은 아닐 터, 좀 헤매면 어떤가. 그 헤맴 끝에 뜻밖의 맛집도 찾아내고 소소한 구경거리도 즐길 수만 있다면 그만이지. 남들이 모르는 맛집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성공, 오늘은 길을 잃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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