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18.
나의 줌 프로필 사진은 아이들과 같이 읽고 있는 책이 바뀔 때마다 다르다. ‘푸른 사자 와니니'를 읽을 때는 아프리카 초원이었다가 ‘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읽을 때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 지금은 뿔이 잘린 코뿔소와 펭귄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표지 그림이다.
줌으로 수업하는 날 1교시는 온작품읽기 시간이다. 9시가 되자 아이들이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책을 들고 입장한다. 읽기 전에 손에 책이 들려 있는지 확인하는 건 필수, 그날그날 마이크 상태가 좋거나 읽고 싶은 사람이 소리 내어 낭독하고 다른 사람은 눈으로 같이 읽는다. 큰따옴표가 나오면 누군가 끼어들어 대사를 주고받는다. 오늘 분량을 읽은 후엔 두 세 문장으로 줄거리를 쓴 후 채팅으로 보낸다. 우리 반 아이들은 줄거리 간추리기에 도사가 되어 간다.
아이들은 등교 수업에서 책 읽기를 더 좋아하지만 우리는 한 학년에 10개 학급이 넘는 과밀학교라 전면 등교는 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기 전에 정말 손에 들고 있는지 보여달라고 할 때마다 의심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미안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정말 줌 수업에서 우리에게 없는 것은 '어쩔 도리'이다.
온작품읽기 시간이 되면 나는 PPT 화면을 미리 띄워 놓는다. 목차가 써진 화면에서 오늘 읽은 챕터를 진한 색깔로 변화를 준다.
“우리는 천천히 가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아이들의 활자에 대해 보이는 집중력과 읽는 속도는 제각각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D는 새로운 책을 받으면 못 참고 그 자리에서 읽어 치우고 우리가 함께 읽을 때 등장인물의 목소리로 참여한다. 이렇게 소리 내어 읽지 않으면 끝까지 읽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각자 어디까지 읽어 오도록 과제를 내주는 방법도 써 봤지만 이렇게 함께 읽어 나갈 때 아이들 만족도도 높았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함께 읽고, 같은 지점에서 멈추며 문장의 뜻을 음미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 이야기한 '책은 멈추기 위해 읽는 것'이라는 말을 들려주면서.
지난주에 새로 받은 책은 루리 작가의 ‘긴긴밤’이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주인공에게 닥친 불행한 일들을 읽더니 “선생님, 걱정돼서 못 읽겠어요.” 한다. 다 읽으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주인공을 염려하는 건지 자기가 감당할 슬픔을 짐작하는 건지 모르겠다. “작가들은 왜 이렇게 불행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까?” 하면 어른스러운 답을 내놓는 아이들이다.
“삶이 이런 거라고 가르쳐 주는 것 같아요.”
“주인공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여주려고요.”
“실제로 다 하기 어려우니까 간접 체험시키고 우리도 잘 살라고요.”
매일 천천히 조금씩 나아가는 것. 그것은 식물을 들이고 글쓰기를 시작한 나에게 필요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나는 분명히 성장하고 있다.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