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29.
일 년 중 학교에서 가장 정신없는 달은 3월과 12월이다. 3월은 새로운 학급이 일정한 궤도에 오를 준비를 하느라, 12월은 생활기록부를 점검하고 성적표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성적표 중에서도 특히 괴로운 작업이 있으니 그건 바로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다. 교사들은 일명 '행발'로 부른다.
요 며칠 '행발'을 쓰느라 머리를 쥐어뜯었다. 단 몇 문장으로 아이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나타내야 할 때면 자괴감과 회의감과 오만가지 생각이 고개를 든다. 머릿속에서 나온 문장들을 이리 고쳐보고 저리 고쳐봐도 아이를 있는 그대로 잘 표현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나를 만난 아이의 일 년이 몇 줄에 담겨 집으로 보낼 것을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할 수밖에 없다. 사력을 다하지만 결과물은 썩 맘에 들지 않는 글쓰기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글쓰기 100일이 무색하게 생활기록부 '행발' 쓰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오늘이 제출일이었다. 부족한 어휘 망을 탓하고, 살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아닐 거야 위로하며 이번이 마지막 검토임을 다짐했다. 아, 이젠 정녕 내 손을 떠났다고 믿고 싶다.
내 어린 시절 성적표는 어땠는가. 선생님들이 써 주셨던 문장은 생각나지 않아도 '가정에서 학교로' 란에 씌어 있던 문장은 국민학교 6년 내내 똑같았다. '발표력과 표현력을 길러 주세요'. 숫기 없고 내성적인 큰딸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부모님은 저렇게 쓰셨을까. 학교와 담임을 얼마나 믿으셨기에 이런 내가 성격이 다른 아이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발표력과 표현력은 밖에서 길러지기엔 분명 한계가 있다. 그것은 기른다기보다 아이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넘쳐서 눈에 보이는 것이다. 부모님의 문장을 통해서 그때의 나는 부모님의 눈에 비친 나를 보았던 것 같다. 아이들의 성장은 어쩌면 그 부모의 시선에서 이미 정해진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내 아이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나도 내 부모처럼 이 아이는 마음속에 어떤 아이라고 정해 놓고 바라보는 건 아닐까.